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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유학생들이 녹색 새마을 조끼입고 공부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버섯농장에서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버섯농장에서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지난 4일 오후 경북 경산시 압량면 버섯농장 비닐하우스. 영어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라고 쓰인 녹색 조끼를 입은 외국인 20여명이 모였다. 동티모르·쿠바·르완다·우간다 등에서 한국에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온 유학생들. 한국의 농촌을 체험하기 위해 버섯농장을 찾은 것이다. 이들은 새송이버섯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이곳저곳을 다니며 버섯 재배 과정을 유심히 살폈다.

매월 1일 새벽 새마을 청소하고 #버섯·딸기따기, 모내기 체험까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새마을 공부 명문 #적폐 옷 벗고 대세로 8년간 500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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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버섯 사진을 찍고, 버섯 수확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얼마에 내다 팔리는지를 농장 주인에게 물었다. 버섯을 따보고, 막 딴 버섯을 칼로 가공하는 체험도 했다. 르완다에서 온 자리캐(30)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새마을 운동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지난 3월 유학 왔다"며 "버섯농장처럼 농촌에서 시작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배워 잘 사는 르완다를 만드는 데 힘을 쓰겠다"고 했다. 동티모르에서 온 이텔타(45·여)는 "새마을 운동을 공부해 동티모르에 새마을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버섯농장에서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버섯농장에서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아프리카 콩고 등 개발도상국 유학생들이 녹색 새마을 조끼를 입고, '새마을'을 공부하는 곳이 있다. 새마을 운동의 시작과 배경, 그 방법 등을 배우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이야기다. '박정희'와 '새마을'이라는 이름부터 생소한 이 대학원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마을 (해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 지원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면서다.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농촌 체험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도대체 어떤 곳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시에서 차로 50여분 대구 방향으로 달리면 경산시에 있는 영남대가 나온다.

영남대 캠퍼스 중심에 있는 천마아트센터 앞엔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벽면엔 페루·쿠바·카메룬·콩고 등 60여 개국 '개발도상국' 국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들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새마을을 공부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2018년 2학기 중인 현재 대학원에는 25개국 유학생 65명이 새마을을 배우고 있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들이 '새마을'을 공부한다고 단기 연수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4학기 과정의 정규 대학원이다. 학생들은 4학기 30학점 이상을 이수한 후 논문을 제출해 석사가 된다. 문용선(48) 대학원 부원장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될 만큼 수준이 높다. 평균 4대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 중인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교육 과정은 새마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은 수시로 농촌을 찾아 모내기 같은 현장 체험을 한다. 말타기 체험, 딸기·버섯 따기, 폐수처리 시설 견학, 사과 선별장 찾기, 비료 생산공장 견학 같은 현장 수업 위주다. 아예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한국의 농촌을 찾는 특별활동이 전공과목에 편성돼 있을 정도다.

전공과목 역시 낯설다. 박정희 리더십의 이해, 새마을정신의 이해, 새마을운동 사례 연구, 농촌개발론 같은 것들이다. 교재는 대학원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쓴다. 논문을 실기 위해 '새마을로지(Saemaulogy)'라는 학술지까지 별도 발행한다.

새마을조끼를 입고 새벽 청소를 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새마을조끼를 입고 새벽 청소를 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유학생들 [사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재밌는 점은 매월 1일 오전 7시 30분 녹색 새마을 조끼를 입고,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대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정한 '새마을정신 실천의 날'로 과거 '새마을 새벽 조기 청소'와 같은 개념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던 주민들처럼 청소 후 학생들은 한자리에 모여 도시락(샌드위치)을 먹는다. 근면·자조·협동 새마을 정신을 조기 청소를 하며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게 대학원 측의 설명이다.

영남대 캠퍼스. [중앙포토]

영남대 캠퍼스. [중앙포토]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생소하지만, 막 생긴 곳은 아니다. 8년 전인 2011년 개설됐다. "박정희 창학정신을 이어받아, 새마을 운동을 전파, 세계 빈곤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잡고서다. 그러곤 8년간 62개국, 529명의 석사를 배출했다.

하지만 보수·진보 같은 정치적 문제에 얽혀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대학원 외부 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영남대 관계자는 "순수하게 새마을을 연구하는 대학원이지만, '박정희', '새마을', 같은 보수의 상징과 같은 단어로 이뤄져 있어 외부 노출을 최소화한 것이다"고 했다.

김기수(60) 대학원 원장은 "UN 등과 세계 빈곤 퇴치에도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 적극 앞장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산=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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