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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최저임금 1호 적발···내년 1월엔 '더 센 폭탄'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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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연봉 5700만원의 현대모비스가 최저임금법 위반 시정명령을 받은 것에 대해 재계에선 '제도상의 허점'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현대모비스 본사. [연합뉴스]

연봉 5700만원의 현대모비스가 최저임금법 위반 시정명령을 받은 것에 대해 재계에선 '제도상의 허점'이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현대모비스 본사. [연합뉴스]

현대차그룹 계열사이자 세계 7위의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모비스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최저임금법 위반 시정 명령을 받았다. 문제가 된 직원은 입사 1~3년 차의 정규직으로 연봉은 5700만원에 달한다. 고액연봉임에도 최저임금(올해 시급 7530원)에 미달한 건 제도상의 허점 때문이다.

현대모비스는 옛 현대그룹 관행대로 기본급의 100%를 격월에 상여금으로 지급하는데, 매월 지급하지 않는 임금은 최저임금 산정대상에서 제외된다. 여기에 단체협상에서 주휴일을 이틀(토·일요일)로 정하면서 최저임금 기준시간도 크게 늘었다. 대법원은 최저임금 대상 임금을 실제 일한 시간으로만 나눠 최저임금 시급에 맞는지 계산하도록 하지만, 유급으로 인정하는 시간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용노동부는 법원과의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것을 고치기 위해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실제 일한 시간과 유급으로 인정되는 시간을 모두 최저임금 계산시간으로 명문화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경영계와 법조계에선 경영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법적 안정성도 무시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경영계, “한계기업 못 버틴다”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 A씨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불명예는 일단 씻게 됐지만 그가 다시 법정에 서지 말란 법은 없다. 내년부터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기준 시간이 많이 늘어나 다시 재판에 넘겨질 수 있어서다.

경영계는 내년 1월 ‘최저임금 폭탄’을 우려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산정기준 시간을 계산할 때 소정근로시간(실제 일한 시간)에 주휴시간(일하지 않았지만 유급으로 산정되는 시간)을 더하는 것을 명문화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 8월 입법 예고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재 법제처 심사 중이다. 빠르면 연말 심사를 마치고 내년 초 시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최저임금법에 규정된 임금의 합을 기준시간으로 나눠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면 형사 처분 대상이다. 징역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문제는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과 법원의 판단이 다르다는 데 있다. 고용부는 실제 일한 시간에 주휴시간을 더한 시간을 기준시간으로 본다. 반면 법원은 실제 일한 시간만 기준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1개월은 평균 4.345주로 이뤄지는데, 주 40시간을 일하면 소정근로시간은 174시간이 된다. 하지만 1주일을 만근(滿勤)했을 때 주어지는 하루의 유급 근로시간(주휴시간) 8시간까지 최저임금 기준시간에 더하면 주 48시간을 더해 기준시간은 209시간이 된다. 올해 최저임금(시급 7530원)을 기준으로 할 때 150만원의 월급을 지급했다면 법원 기준으로는 시급 8620원으로 최저임금을 넉넉히 넘지만 고용부 기준으로는 시급 7177원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한 게 된다.

현대모비스처럼 단체협상에서 주휴시간을 이틀(16시간)로 합의한 경우는 더 복잡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일부 사업장과 자동차 부품업계 등은 단협에서 주휴일을 이틀로 정하고 있어 최저임금 기준시간이 243시간까지 늘어난다. 같은 150만원 월급을 지급해도 시급이 6173원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최저임금에 맞추려면 월 33만원을 더 줘야 한다.
고용부는 1994년 이후 지금껏 주휴시간을 포함한 기준시간으로 행정지도를 해 왔기 때문에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혼란은 없을 거란 입장이다. 여기에 시행령을 개정하면 법원도 고용부 지침에 맞춰 유무죄를 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6월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중앙포토]

지난 6월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중앙포토]

문제는 경기 악화와 최저임금 상승이다. 고용부 주장대로 20년 동안 행정지침이 주휴시간을 포함하도록 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기업들은 고용부 기준시간에 맞춰 최저임금을 지급해 왔다. 하지만 최근 극심한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최저임금까지 오를 경우 버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올해까지는 고용부 행정지침에 불복하고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한계상황에 몰린 중소기업 부담이 늘어난다”며 시행령 개정에 반대해 왔다. 경총은 지난 16일 법제처에 낸 검토의견에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같은 양의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노사 간 ‘힘의 논리’로 협상된 유급휴일 정도에 따라 월 최저임금 부담이 기존 대법원 판결 대비 최대 40%까지 늘어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행령 개정은 범죄 구성요건에 직결되는 만큼 시행령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경총 관계자는 “주휴수당 제도가 산업화 시대 근로자의 임금 보전 차원에서 만들어진 만큼, 최저임금을 올리게 되면 주휴수당을 없애거나 최저임금 기준시간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게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법적 안정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주휴수당의 법적 근거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지만 최저임금법에는 주휴수당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최저임금 산정기준을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하고 있긴 하지만, 상위법에 들어있지 않은 주휴시간을 고용부가 임의로 포함하는 것은 법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종철 김앤장 변호사는 “최저임금법이 실제 일한 소정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시행령에서 유급시간을 포함하는 건 상위법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시행령을 고쳐 최저임금 기준시간을 늘리는 건 한계기업을 사지로 모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정우 화우 변호사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본질적 사항을 명령에 위임할 수 있는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며 “명령·규칙 심사권을 갖는 법원의 해석과 행정부 해석이 상반되는 상황에서 행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논란을 종식하는 방식은 이해 당사자의 한 축인 기업 입장에선 부당한 방식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산정기준 근로시간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하지 않고 직접 최저임금법에 구체화하는 게 헌법에 합치된 입법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주휴일을 최저임금 산정시간에 넣을지를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대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휴일을 최저임금 산정시간에 넣을지를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대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연, “일자리 줄고, 소득 격차 늘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최저임금을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올리면 일자리는 줄고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경연은 최근 발간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소득재분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을 내년 8350원, 2020년 9185원, 2021년 1만원으로 인상한다고 가정했다. 여기에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기준시간에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2019년 9842원, 2020년 1만761원, 2021년 1만1658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저임금이 이렇게 인상되면 일자리는 올해 6만8000개, 2019년 9만8000개, 2020년 15만6000개에 이어 2012년엔 15만3000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또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이 감소하면서 지니계수는 1.23% 증가하고, 소득 5분위 배율(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은 2.51% 증가해 소득 불평등이 악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기준시간에서 주휴시간을 제외하면 일자리 감소분이 23만개 줄고,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도 각각 0.69%, 1.38% 늘어나는 데 그쳐, 소득재분배 및 격차 악화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수용성을 고려해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계산에서 단계적으로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 수혜대상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기본취지에 맞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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