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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중국까지 들른 이용호, 그가 北 돌아가야 답방 결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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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소개된 시진핑-이용호 회동 장면. [연합뉴스]

9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소개된 시진핑-이용호 회동 장면.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좀처럼 연내 답방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외교 책사인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을 대신해 ‘국제 여론’ 청취에 나선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용호는 지난달 29일 베트남과 시리아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중국 방문 일정(6~8일)이 잡혔고, 뒤이어 몽골(8~9일)까지 방문하면서 꼬박 열흘을 해외에 체류했다. 이용호가 몽골 방문 뒤 귀국했다는 공식 발표는 10일까지 아직 없다.
이를 놓고 김 위원장의 답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민감한 국면에서 북한의 외교 수장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 방문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초 이용호의 평양 출발 때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방문국은 베트남과 시리아뿐이었는데, 갑자기 일정이 잡혔다. 그런 와중에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공식 초청하며 격을 갖췄다.
이용호는 방중을 통해 돈독한 북·중 관계를 국제사회에 재확인했다. 왕이 부장뿐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까지 짬을 내 직접 이용호를 만났다. 9일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용호를 면담하며 “중국 당과 정부는 북ㆍ중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며 “북ㆍ중 관계는 이미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내년 북ㆍ중 수교 7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의 장기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양국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용호의 방중과 관련 “중국은 북한의 경제 건설이라는 새로운 전략노선을 지지한다”며 “앞으로도 북한 내정 불간섭과 북한의 정치적 안정,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지지할 것”이라고 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용호가 중국을 찾은 더 중요한 이유는 중국을 통해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중 정상회담 뒤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100%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혀 양국이 한반도 사안에 대해 긴밀히 협의했음을 과시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이용호의 방중에 대해 “중국을 통해 미국이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임하려는 것인지 직접 들어보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 같다”며 “미국이 금기시하던 제재 완화까지 거론하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해 보내는 러브콜에도 묵묵부답하고 있지만, 이렇게 틀어박혀선 판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게 김 위원장의 또 다른 고민”이라고 전했다. 또 시 주석이 이용호를 직접 만난 것은 시 주석 역시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할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달 8일 김영철 북한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표로 나가기로 했던 고위급 회담을 연기한 뒤로 미국의 회담 요구엔 일체의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내심 협상 대표를 김영철에서 이용호로 바꿨으면 하는 분위기이지만, 이에 대한 반응도 전혀 없다고 한다. 미국 입장에선 대미 외교의 경험이 없는 김영철 보다는 국제 무대를 밟았던 이용호를 원했지만 북한은 미국과의 접촉에서 무응답 모드다.
북한은 이처럼 미국에는 대응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상대로 미국을 읽는 우회전술로 나선 모양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이용호의 보고를 통해 시 주석의 설명과 판단을 전해 들은 뒤 서울 답방뿐 아니라 미국의 비핵화 협상 요구에 대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중국 전문가는 “북한으로선 미국이 좀처럼 제재를 완화해주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도 숨통을 더 터주길 바랄 것이고, 시 주석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친 뒤 귀국을 위해 경유차 베이징에 들른 이용호 북한 외무상. [연합뉴스]

지난 9월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친 뒤 귀국을 위해 경유차 베이징에 들른 이용호 북한 외무상. [연합뉴스]

이용호를 전면에 내세운 김 위원장의 외교술은 최근에도 효과를 봤다. 이용호는 지난 9월 유엔 총회 때 6박 7일 동안 뉴욕에 머물며 20여 개국 장관과 회담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추진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북한 인권 토의가 취소된 것은 이런 이용호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10일 개최하려던 토의는 개최 정족수(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9개국)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무산됐다. AFP 통신과 로이터 통신, 일본 NHK 방송 등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비상임이사국 중 코트디부아르, 카자흐스탄이 반대했다. 비상임이사국 중 적도기니는 반대 혹은 기권했다고 한다. 코트디부아르, 카자흐스탄, 적도 기니는 공교롭게도 이용호가 9월에 양자 회담을 하며 접촉한 나라들이다. 유엔 소식통은 “카자흐스탄 등 일부 비상임이사국의 임기가 2018년으로 종료되고 내년 1월 1일에 새로운 비상임이사국이 들어오는데, 미국은 내년에 다시 북한 인권 토의를 추진하는 게 더 개최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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