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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연 50억 이상혁 “한국 e스포츠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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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009년 출시된 PC 온라인 배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는 한 달 이용자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 인기 게임이다. ‘롤’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롤 최강자’를 뽑기 위해 매년 한 번씩 개최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총상금 50여 억원, 전 세계 시청자 수가 80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다.

해외서 더 유명한 e스포츠계 메시 #온라인 배틀 ‘롤’게임 세계 1인자 #팀 최다 우승 견인 … SKT와 재계약 #“중국·동남아, 1위 한국 바짝 추격 #연구·투자 없인 곧 따라잡힐 것”

롤 게임에서 부동의 세계 1인자인 이상혁(22) 선수는 명실상부한 한국 e스포츠의 아이콘이다.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도 ‘페이커’라는 그의 닉네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선수의 경기 승률은 72.9%(391전 285승 106패)로 한국은 물론 중국·미국·유럽 등 전 세계 게이머들이 그를 우러러 본다.

이 선수가 속한 e스포츠 구단 SKT T1이 전 세계 롤드컵 최다 우승팀(3회)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해외 팬들은 ‘페이커’를 e스포츠 업계의 마이클 조던, 리오넬 메시에 비유한다. 팬들이 이 선수의 게임 장면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면 순식간에 조회 수 수백만 건을 돌파한다.

세계 최정상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이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 SKT T1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인 페이커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머로 '롤계의 메시', '롤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린다. 오종택 기자

세계 최정상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이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 SKT T1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인 페이커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머로 '롤계의 메시', '롤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린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SKT T1 연습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최근 중국·동남아 등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서 조만간 따라잡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자신의 경기 성적만큼이나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대한 고민과 과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했다.

‘페이커’는 매일 연습실에 나와서 하루에 10시간씩 동료 선수들과 게임 연습을 한다. 낮 12시까지 연습실에 와서 퇴근하는 시간이 보통 새벽 4시라고 한다. 경기 중 선수들과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훈련 기간에는 합숙 생활을 한다. 1년에 한 달 정도 빼고는 이 같은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한다고 한다. 작은 PC방 같이 꾸며진 연습실 한쪽 벽면은 이 선수와 T1 선수들이 그간 받은 우승 트로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서울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늘 성적 상위권을 유지하는 모범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각종 PC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즐겼던 그가 롤 게임에 입문한 것은 2012년이었다. 게임 리그에서 줄곧 1, 2위를 차지하면서 유명해진 이 선수는 SKT T1에서 입단 제의를 받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프로게이머로 정식 데뷔했다.

7년 차 프로게이머인 그는 지난달 친정팀 SKT T1과 재계약을 했다. 구단 측은 연봉과 계약 기간 등 세부 조건을 비공개로 부쳤다. 2년 전 그의 연봉이 30억원(업계 추정치) 정도였던데다 경기 상금, 인센티브 등까지 더하면 이 선수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5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국내 프로야구 최고 연봉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에게 재계약한 이유를 물어봤다.

"T1 구단은 연습 환경, 선수 건강까지도 세세하게 챙겨줘서 부족한 점이 없었다. e스포츠 업계에서 명문 구단이라고 다들 얘기한다. 기회가 되면 새로운 구단이나 해외로 옮겨가서 활동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겠지만 아직은 T1이라는 마크가 내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페이커의 압도적인 기량과 상품 가치를 알아본 중국, 유럽 구단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선수를 영입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그는 "2014년부터 외국에서도 이런저런 제안이 들어왔지만 여러 가지 다 따졌을 때 남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팬들은 페이커가 외국 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친정팀에 잔류한 것을 두고 '국위선양'이라고 치켜세운다. 이 선수는 "제가 한국을 좋아하고 애국심이 있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국위선양이 구단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니었는데 과찬"이라고 말했다.

이 선수는 경기할 때 표정 변화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e스포츠에서는 침착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침착함이라는 게 연습에서의 성적, 여기서 비롯되는 자신감,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많은 관계자가 저보고 '연습량이 최고'라고 인정해준다. 연습 게임에서도 한 판, 한 판 플레이할 때마다 배우는 게 있다. 처음엔 e스포츠 경기장의 수많은 사람 앞에서 무엇을 하는 게 어렵기도 했다. 특히 T1이 최고의 팀이 되면서 부담감도 생겼는데 가능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숫자로 보는 e스포츠

숫자로 보는 e스포츠

그는 "전통 스포츠의 경우 체력 소모가 크니 하루에 3~4시간 이상 연습할 수가 없는데 e스포츠는 머리를 쓰는 것이라서 좀 더 많이 연습해서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운동, 스트레칭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프로게이머 이상혁(22) 선수는

-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롤)에서 닉네임 '페이커'로 활동
- 고등학교 자퇴 후 2013년 SKT T1 구단 소속으로 프로게이머 데뷔
- 2013년, 2015년, 2016년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우승
- 2017년 미국 '더 게임 어워즈' 최우수 e스포츠 선수상 수상
-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시범 종목 롤 게임에서 은메달

이 선수는 이미 성인이 될 무렵부터 자신을 스스로 '노장'이라고 표현했다. 빠른 손놀림과 두뇌 회전이 중요한 만큼 게이머들의 최전성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게이머들이 아무리 오래 해도 20대 후반에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직 수년 뒤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고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시간 날 때마다 독서를 하는 그는 최근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한다. 이어 "게임과는 직접 관계가 없지만 인문·교양 서적을 즐겨 읽는다. 내용은 다르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도 재미있게 읽었다" 고 덧붙였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게임을 일찍 시작한 데다 인터넷도 제일 빨랐던지라 우리가 e스포츠 강국이었는데 최근에는 중국·동남아 등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서 조만간 따라잡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SKT T1 연습실에서 그는 자신의 경기 성적만큼이나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대한 고민과 과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했다. 오종택 기자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게임을 일찍 시작한 데다 인터넷도 제일 빨랐던지라 우리가 e스포츠 강국이었는데 최근에는 중국·동남아 등의 추격이 만만치 않아서 조만간 따라잡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SKT T1 연습실에서 그는 자신의 경기 성적만큼이나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대한 고민과 과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했다. 오종택 기자

경기 때문에 외국에 자주 나가는 그는 e스포츠 업계에서의 한국의 입지와 명성을 늘 체감한다고 했다. 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그는 일본과 중국 등에서 팬미팅을 열기도 했다.

"해외에서 한국 하면 많이 떠올리는 것이 K팝과 아이돌, 그 다음이 게임인 것 같다. '한국의 e스포츠'는 이미 외국에서도 익숙한 하나의 문화가 됐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게임'하면 '외계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스타크래프트, 롤 등 어떤 게임을 해도 늘 휩쓰는 게 한국인들이니까….물론 지금도 한국이 여전히 인구 대비 게이머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이젠 중국과 동남아도 만만치 않다."

전 세계 e스포츠 산업 전망

전 세계 e스포츠 산업 전망

그는 "전 세계에서 롤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이라며 "중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국가가 우리나라 e스포츠 코치들을 데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우리나라도 e스포츠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많이 해서 국가 차원에서 e스포츠 전략과 발전 방안 같은 것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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