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고 집에서 나와 별 보고 집에 들어갑니다.”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자신의 일정표부터 꺼내 들었다. 그의 일정표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와 면담 계획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유 의원은 “지금까지 90명 정도의 의원을 일대일로 만나왔다”며 “7시 30분에 토론회 두 곳, 8시에도 한 곳을 다녀왔고 방금까지도 의원들을 만나고 왔는데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11일 치러지는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유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3수생'이다. 2016년에는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고, 2017년에는 홍문종 의원에게 양보하며 중도 하차했다. 유 의원은 “최근에 나를 지지하는 표가 늘어나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보좌진은 “나경원 의원의 4ㆍ4ㆍ2 전술(오전 4명, 오후 4명, 저녁 이후 2명 의원을 접촉)이라면 우린 40ㆍ40ㆍ20전술로 유권자를 모두 만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본인이 원내대표를 해야 하는 이유라면.
- 난 변호사 생활을 했다. 국회 입성해 4선 하는 동안 대변인, 외교통일위원장 등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해양수산부 장관을 했다. 입법ㆍ사법ㆍ행정을 두루 거쳤다. 국정운영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당이 수권정당이 되려면 이런 경륜이 중요하지 않을까.
- 현재 당 상황을 어떻게 보나.
- 당 지지율을 보자.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당 지지율이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당이 야당으로 역할 제대로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외교 분야의 정부 정책을 집중 타격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 김병준 비대위 체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 선출되지도 않은 비대위가 당협위원장을 교체하는 건 주어진 권한을 초과하는 일이다.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을 멈추고 전당대회를 차질없이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 시작하는 추경호 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하고는 또 윤상현 의원이 연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의 법적인 문제점’ 토론회에도 들렀다. 최근 한국당은 두 전직 대통령 불구속 재판 촉구안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불구속 재판 결의안엔 찬성하나.
- 박 전 대통령의 인신이 풀린 상태에서 (재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기소 사안 중 일부가 형이 확정돼 기결수(旣決囚)가 됐다. 기결수 신분에서는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단결해서 이런 일 발생하지 않게 해야 했다. 지금 결의안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이 (탄핵안 통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사후약방문처럼 보인다.
- 반문연대, 보수 단일대오를 이루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 보수층을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종이 한장이라도 가져와야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로 뭉치는 건 명분이 약하다. 자칫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이 모여 있으면 폐해가 더 많을 수도 있다.
- 바른미래당 의원의 복당엔 동의하나.
- 의원 빼내기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한다면 야권공조는 물 건너간다. 당대 당 통합, 야권 대통합같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는 게 맞다.
선거 운동을 위해 의원회관을 다니는 사이 경쟁 후보인 김학용, 나경원 의원을 마주쳤다. 원내대표 선거일(11일)을 앞두고 후보 모두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김학용 의원은 “형님, 우리가 이럴 성격이 아니잖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나경원ㆍ김영우ㆍ김학용 의원 등 경쟁 후보를 평가해달라.
- 나만이 상록수처럼 당을 지켰다. 어렵고 힘들 때도 변함없이 말이다. 당이 휘청거리자 나 몰라라 훌쩍 떠난 후보가 있으며, 어떤 후보는 떠나지 않았으나 오락가락하며 어정쩡했다.
현재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는 나경원 의원과 김학용 의원의 양강 구도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유 의원은 김영우 의원과 함께 2중 후보로 분류된다. 유 의원은 “전수조사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 비박ㆍ복당파는 김학용 의원을, 친박ㆍ잔류파는 나경원 의원을 민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 선거운동을 하며 의원 90명 정도를 만났다. 자신이 어느 계보, 계파에 속했다고 말하는 의원은 만나지 못했다. 보스가 지시를 내리면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게 계파정치, 계보정치다. 우리 당에 더는 계보정치는 없고, 그런 게 있다면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화석화된 과거 이분법으로 현재의 역동적인 당 상황을 재단하는 건 오류다.
유 의원은 2016년 5월,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 선거 때 119표 중 7표밖에 얻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당시 정진석 의원은 69표를, 나경원 의원 43표를 받았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 등의 만류에도 출마를 강행해 친박의 외면을 받은 게 저조한 득표 원인이었다.
- 2016년 원내대표 선거 때는 한 자릿수 득표에 그쳤는데.
- 20대 총선 직후라 초선 의원들이 나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여기에 소위 '오더 정치'가 횡행했고, 당시 총선에서 패배한 책임을 물어 친박계가 돼서는 안 된다는 흐름도 강하게 작용했다. 만약 의원들이 서로 아는 상태에서 후보의 능력을 보고 투표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유 의원은 황교안 전 총리의 입당설 등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원 중 한 명이다. 황교안 전 총리와 당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 새로운 인물 수혈을 강조했다. 황 전 총리를 염두에 둔 건가.
- 황 전 총리는 능력과 자질을 이미 검증을 받은 상황이고, 범보수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당에 들어와 힘을 보탠다면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당의 갈증도 풀 수 있다.
- 전당대회 나올 것 같나.
- 원내대표 선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여건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면, 또 본인의 결심이 확고해지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과감히 출마할 거라고 본다.
인터뷰 중 그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약 10분 후 자신의 방에서 나온 그는 “이완구 전 총리의 전화였다”며 “원내대표 선거가 걱정돼 전화하셨는데, 최근 저를 지지하는 표가 많이 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을 확신하고 있다, 내가 1강 후보로 올라섰다”고 덧붙였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