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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오지에 학교 16개 … ‘히말라야 약속’ 지킨 엄 대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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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호 22면

[스포츠 오디세이] 창립 10주년 맞은 엄홍길휴먼재단

네팔 룸비니순디에 지은 휴먼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엄홍길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네팔 룸비니순디에 지은 휴먼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엄홍길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앞두고는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어요. 히말라야 신께 ‘제발 살아서만 내려오게 해 주십시오’ 기도했더니 ‘너 이놈아, 욕심이 과하구나. 내가 너를 데려가려고 했으면 벌써 데려갔지’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내 성공만 비는 기도가 바뀌었죠. ‘제 꿈을 이뤄 주신다면 등반 중에 죽은 동료·셰르파의 가족을 돌보겠습니다. 제가 죽으면 누가 이런 일 하겠습니까’로 말이죠.”

등반 중 숨진 셰르파 동네에 첫 학교 #16번째 학교는 교육 타운 조성 추진 #7000명 후원자들 힘으로 꿈 이뤄 #오른 발목 못 굽히는 6급 장애인 #산 오를 때 무리하면 절대 안 돼 #네팔 인재 키우는 게 ‘인생 17좌’

지난달 3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엄홍길휴먼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이 열렸다. 전국에서 온 450여 명의 후원자가 자리를 꽉 채웠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엄홍길 대장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8년 5월 만든 단체다. 2007년 5월 로체샤르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엄 대장이 그해 말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서 받은 특별공로상 상금(5000만원)을 종자돈으로 냈다.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휴먼스쿨 사업은 2010년 팡보체를 시작으로 15개 지역에서 알찬 열매를 맺었다. 16번째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 유치원-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타운으로 만들 계획이다.

해발 4000m 팡보체에 1호 휴먼스쿨

2007년 로체샤르에 등정해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이룬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2007년 로체샤르에 등정해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이룬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엄 대장은 “산만 보이던 게 산 밑이 보이고, 거기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히말라야 오지에서 평생 짐꾼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다. 16좌 완등의 의미를 담아 16개 학교를 짓겠다’는 결심을 했죠. 10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건 7000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의 힘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5일 개교한 국립등산학교(강원도 속초) 초대 교장을 맡았고, 2018 스포츠영웅 최종후보(6명)에도 올랐다. 지난 6일 서울 장충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 대장을 만났다.

후원자들이 정말 많고도 다양하네요. 그 인맥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하~. 혼자 산에 다니던 때가 그립습니다. 제 삶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재단 일로 연결됩니다. 하룻밤에 약속 몇 개를 소화하고, 제 얘기를 다룬 영화 ‘히말라야’는 여섯 번이나 봤어요. 한국 사회는 얼굴 보고 밥 먹고 해야 정이 생기는 법이잖아요.”
‘엄홍길’ 이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내 후원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구나’ 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엄홍길재단은 약속을 지킨다, 확실히 다르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죠.”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진 박무택 대원의 아들과 함께한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진 박무택 대원의 아들과 함께한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네팔에서는 거의 신일 텐데 마음이 높아지지는 않았나요.
“초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네팔 사람이 다 됐어요. 휴먼스쿨 착공식이나 준공식 때 아이들과 부모들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후원금 모으고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갑니다. 좋은 기운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1호 휴먼스쿨(팡보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학교라면서요.
“해발 4000m에 있는 팡보체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관문입니다. 1986년 에베레스트 도전 때 셰르파였던 술딤 도르지가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 팡보체엔 홀어머니와 결혼 3개월 된 아내만 남았어요. 그 곳을 거쳐 갈 때마다 그와 가족들이 떠올랐어요. 1호 휴먼스쿨은 당연히 팡보체에 지어야 했습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두려운 생명체

1호 휴먼스쿨이 들어선 팡보체에서 아이와 인사하는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1호 휴먼스쿨이 들어선 팡보체에서 아이와 인사하는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엄 대장은 6급 지체장애인이다. 오른발 엄지는 동상으로 잘라냈고,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 때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앞뒤로 굽혀지지 않는다. 쪼그려 앉기 힘들고, 오래 걸으면 발목이 퉁퉁 붓는다. 좌골 신경통으로 인해 고산 등반 때 너무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처럼 험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떨까.

미국 유학 중인 딸이 아빠처럼 산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나도 8000m급 올라갈래’ 하면?
“딸은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강해요. 히말라야 16좌 하고 싶다고 하면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밀어줄 것 같습니다. 대신 등반에 필요한 노하우는 전수해 줘야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창호 대장이 얼마 전 사고를 당했고, 박영석·김형일 대장도 2011년 목숨을 잃었는데요.
“사실 저도 크레바스 속에 냉동인간 돼 있는 게 맞아요. 동료를 잃으면서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새 생명을 히말라야 신이 내려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로 보이고,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후배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고, 저는 또 다른 가치를 설정해서 살고 있는 거죠.”
고산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전’과 ‘도전’은 양립할 수 없는 건가요.
“도전하기 위해 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 위험하냐는 정도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절대 욕심을 내거나 무리수를 두면 안 됩니다.”
지난 6일 휴먼재단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 [김경빈 기자]

지난 6일 휴먼재단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 [김경빈 기자]

엄 대장이 도전하는 ‘인생 17좌’는 휴먼재단이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학교를 짓고, 그 아이들의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고, 네팔을 끌고 나가는 인재로 육성하는 게 향후 10년의 목표”라고 말했다. 엄 대장은 이번 주말 다시 네팔로 떠난다. 15번째 학교인 둘리켈 휴먼스쿨 준공식이 기다리고 있다.

굵기 다른 장딴지 … 1998년 안나푸르나 정상 앞두고 욕심내다 사고

엄홍길 대장의 양쪽 장딴지

엄홍길 대장의 양쪽 장딴지

엄홍길 대장의 양쪽 장딴지는 굵기가 확연히 다르다. 왼쪽은 호리병처럼 굵지만 오른쪽은 일반인과 비슷하다.(사진)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때 사고로 오른 발목이 으스러졌고, 이 때문에 오른 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엄 대장은 “욕심이 부른 사고”였다고 했다.

세 차례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하고, 네 번째 갖은 고생 끝에 7600m 지점까지 올라왔다. 저 앞에 정상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정상에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엄 대장은 “드디어 정상이 보입니다. 한번에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무전을 친 뒤 출발 30분 만에 사고를 당했다. “기침도 크게 못할 만큼 조심스럽고 겸손했던 제가 한 순간 마음을 놓은 겁니다. 결과는 참혹했죠”라고 그는 회고했다.

2006년 로체샤르 등정은 반대였다. 정상 150m를 남기고 날씨는 쾌청했고, 컨디션·장비 모두 완벽했다. 잠깐 쉬는 엄 대장의 얼굴로 찬바람이 쌩 불어왔다. 정신을 번쩍 차려 정상을 보니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 대장이 “안 되겠다. 철수다” 하자 함께 있던 동료와 베이스캠프는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엄 대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갔으면 눈사태로 다 죽었을 겁니다. 욕심은 등반가의 눈을 가립니다. 등반가 뿐만 아니겠죠.”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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