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창립 10주년 맞은 엄홍길휴먼재단
![네팔 룸비니순디에 지은 휴먼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엄홍길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12/08/bfff3dbb-388a-42e3-b971-117993c489c9.jpg)
네팔 룸비니순디에 지은 휴먼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엄홍길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앞두고는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어요. 히말라야 신께 ‘제발 살아서만 내려오게 해 주십시오’ 기도했더니 ‘너 이놈아, 욕심이 과하구나. 내가 너를 데려가려고 했으면 벌써 데려갔지’ 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내 성공만 비는 기도가 바뀌었죠. ‘제 꿈을 이뤄 주신다면 등반 중에 죽은 동료·셰르파의 가족을 돌보겠습니다. 제가 죽으면 누가 이런 일 하겠습니까’로 말이죠.”
등반 중 숨진 셰르파 동네에 첫 학교 #16번째 학교는 교육 타운 조성 추진 #7000명 후원자들 힘으로 꿈 이뤄 #오른 발목 못 굽히는 6급 장애인 #산 오를 때 무리하면 절대 안 돼 #네팔 인재 키우는 게 ‘인생 17좌’
지난달 3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엄홍길휴먼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이 열렸다. 전국에서 온 450여 명의 후원자가 자리를 꽉 채웠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엄홍길 대장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8년 5월 만든 단체다. 2007년 5월 로체샤르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엄 대장이 그해 말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서 받은 특별공로상 상금(5000만원)을 종자돈으로 냈다.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휴먼스쿨 사업은 2010년 팡보체를 시작으로 15개 지역에서 알찬 열매를 맺었다. 16번째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 유치원-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타운으로 만들 계획이다.
해발 4000m 팡보체에 1호 휴먼스쿨
![2007년 로체샤르에 등정해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이룬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12/08/33a8b4cc-62e1-4e19-92e7-618c434588bd.jpg)
2007년 로체샤르에 등정해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을 이룬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엄 대장은 “산만 보이던 게 산 밑이 보이고, 거기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히말라야 오지에서 평생 짐꾼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다. 16좌 완등의 의미를 담아 16개 학교를 짓겠다’는 결심을 했죠. 10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건 7000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의 힘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5일 개교한 국립등산학교(강원도 속초) 초대 교장을 맡았고, 2018 스포츠영웅 최종후보(6명)에도 올랐다. 지난 6일 서울 장충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 대장을 만났다.
- 후원자들이 정말 많고도 다양하네요. 그 인맥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 “하~. 혼자 산에 다니던 때가 그립습니다. 제 삶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재단 일로 연결됩니다. 하룻밤에 약속 몇 개를 소화하고, 제 얘기를 다룬 영화 ‘히말라야’는 여섯 번이나 봤어요. 한국 사회는 얼굴 보고 밥 먹고 해야 정이 생기는 법이잖아요.”
- ‘엄홍길’ 이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 “‘내 후원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구나’ 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엄홍길재단은 약속을 지킨다, 확실히 다르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죠.”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진 박무택 대원의 아들과 함께한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12/08/3a1ac54b-a71e-42d5-9df5-6fbb9c1dea78.jpg)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진 박무택 대원의 아들과 함께한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 네팔에서는 거의 신일 텐데 마음이 높아지지는 않았나요.
- “초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네팔 사람이 다 됐어요. 휴먼스쿨 착공식이나 준공식 때 아이들과 부모들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후원금 모으고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갑니다. 좋은 기운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 1호 휴먼스쿨(팡보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학교라면서요.
- “해발 4000m에 있는 팡보체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관문입니다. 1986년 에베레스트 도전 때 셰르파였던 술딤 도르지가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 팡보체엔 홀어머니와 결혼 3개월 된 아내만 남았어요. 그 곳을 거쳐 갈 때마다 그와 가족들이 떠올랐어요. 1호 휴먼스쿨은 당연히 팡보체에 지어야 했습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두려운 생명체
![1호 휴먼스쿨이 들어선 팡보체에서 아이와 인사하는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12/08/3ef5ffdd-33ab-400a-930c-4799da588601.jpg)
1호 휴먼스쿨이 들어선 팡보체에서 아이와 인사하는 엄 대장.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엄 대장은 6급 지체장애인이다. 오른발 엄지는 동상으로 잘라냈고,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 때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앞뒤로 굽혀지지 않는다. 쪼그려 앉기 힘들고, 오래 걸으면 발목이 퉁퉁 붓는다. 좌골 신경통으로 인해 고산 등반 때 너무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처럼 험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떨까.
- 미국 유학 중인 딸이 아빠처럼 산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나도 8000m급 올라갈래’ 하면?
- “딸은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강해요. 히말라야 16좌 하고 싶다고 하면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밀어줄 것 같습니다. 대신 등반에 필요한 노하우는 전수해 줘야죠.”
-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창호 대장이 얼마 전 사고를 당했고, 박영석·김형일 대장도 2011년 목숨을 잃었는데요.
- “사실 저도 크레바스 속에 냉동인간 돼 있는 게 맞아요. 동료를 잃으면서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새 생명을 히말라야 신이 내려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로 보이고,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후배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고, 저는 또 다른 가치를 설정해서 살고 있는 거죠.”
- 고산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전’과 ‘도전’은 양립할 수 없는 건가요.
- “도전하기 위해 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 위험하냐는 정도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절대 욕심을 내거나 무리수를 두면 안 됩니다.”
![지난 6일 휴먼재단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 [김경빈 기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812/08/33b3e496-04ef-4bfb-8730-6f4fe4f56640.jpg)
지난 6일 휴먼재단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 [김경빈 기자]
엄 대장이 도전하는 ‘인생 17좌’는 휴먼재단이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학교를 짓고, 그 아이들의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고, 네팔을 끌고 나가는 인재로 육성하는 게 향후 10년의 목표”라고 말했다. 엄 대장은 이번 주말 다시 네팔로 떠난다. 15번째 학교인 둘리켈 휴먼스쿨 준공식이 기다리고 있다.
굵기 다른 장딴지 … 1998년 안나푸르나 정상 앞두고 욕심내다 사고

엄홍길 대장의 양쪽 장딴지
엄홍길 대장의 양쪽 장딴지는 굵기가 확연히 다르다. 왼쪽은 호리병처럼 굵지만 오른쪽은 일반인과 비슷하다.(사진)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때 사고로 오른 발목이 으스러졌고, 이 때문에 오른 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엄 대장은 “욕심이 부른 사고”였다고 했다.
세 차례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하고, 네 번째 갖은 고생 끝에 7600m 지점까지 올라왔다. 저 앞에 정상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정상에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엄 대장은 “드디어 정상이 보입니다. 한번에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무전을 친 뒤 출발 30분 만에 사고를 당했다. “기침도 크게 못할 만큼 조심스럽고 겸손했던 제가 한 순간 마음을 놓은 겁니다. 결과는 참혹했죠”라고 그는 회고했다.
2006년 로체샤르 등정은 반대였다. 정상 150m를 남기고 날씨는 쾌청했고, 컨디션·장비 모두 완벽했다. 잠깐 쉬는 엄 대장의 얼굴로 찬바람이 쌩 불어왔다. 정신을 번쩍 차려 정상을 보니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 대장이 “안 되겠다. 철수다” 하자 함께 있던 동료와 베이스캠프는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엄 대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갔으면 눈사태로 다 죽었을 겁니다. 욕심은 등반가의 눈을 가립니다. 등반가 뿐만 아니겠죠.”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