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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고영한 모두 기각…양승태 겨눈 검찰 수사 차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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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한 전 대법관(왼쪽)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전직 대법관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고영한 전 대법관(왼쪽)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전직 대법관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도 법원 "의문의 여지 있어" #검찰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에도 차질 올 듯 #검찰 반발에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 비판 거셀 듯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오전 1시 쯤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하여 피의자의 관여 범위와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는 점" 등을 기각 사유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되어 있는 점과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의자의 주거와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를 맡은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본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와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와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을 사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명 부장판사는 1998년 수원지검 검사로 부임한 뒤 서울동부지검과 청주지검 등에서 근무하다 2009년 수원지법에서 법관으로 임용 됐다. 서울중앙지법에는 지난 9월 영장전담 판사를 3명에서 4명으로 늘리면서 합류했다. 두 영장전담 판사 모두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다.

고영한 전 대법관(위 사진)과 박병대 전 대법관(아래 사진)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영한 전 대법관(위 사진)과 박병대 전 대법관(아래 사진)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두 전직 대법관이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할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일선 재판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두 전직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과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소송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10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한 청와대 공관 회동에 참석했고, 다음 해 4월에는 후임인 이병기 전 비서실장을 독대했다. 이때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일제 강제징용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전략 등을 논의했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불러올 수 있는 강제징용 재판 결과에 대해 껄끄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영장심사 과정에서 박 전 대법관은 "이병기 전 실장과의 만남은 강제징용 재판 때문이 아니라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은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로 불리는 2016년 부산 법조 비리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축소를 위해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 지침을 내려 보낸 혐의를 받는다. 다만 고 전 대법관은 이날 법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으면서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범죄 정도가 약하다”며 “청와대와 재판 거래한 적은 없고 법원 조직 보호와 헌법재판소 관계 문제로 한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영장 기각으로 ‘방탄판사단’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서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90% 정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법원이 자기 조직을 어떻게 지키는 지 국민들한테 보여준 것”이라며 “국민들은 재판독립이 아니라 사법부 보호로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법원 내부에선 "법리적으로는 범죄가 되기 어려운 데 대외적으론 법원이 이들을 보호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검찰은 영장 기각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오전 1시에 “대단히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 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들인 박병대·고영한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의 전모 규명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전직 대법관 두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번 수사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소환은 수사 일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김앤장 압수수색이나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추가로 수사할 부분이 있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추가로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직접 만난 사실도 확인했다. 또 옛 통진당 2심 소송이 특정 재판부에 배당되도록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가 배당을 조작한 정황도 최근 포착했다.

 김민상‧조소희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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