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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 잡는 날- 남도 양반 밥상의 마침표 토하젓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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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옴천면에서는 12월이 오면 토하를 잡는다. 논을 개량한 서식지에서 토하를 거둔다. 물에서 갓 들어올린 토하가 펄떡거린다. 손민호 기자

강진군 옴천면에서는 12월이 오면 토하를 잡는다. 논을 개량한 서식지에서 토하를 거둔다. 물에서 갓 들어올린 토하가 펄떡거린다. 손민호 기자

토하(土蝦) : 아는 사람은 아는, 아니 먹어본 사람만 아는 귀한 식재료다. 호남에서는 명성이 자자한데, 호남 바깥에서는 이 민물새우로 담근 젓갈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토하젓 : 남도에서 토하젓이 없으면 양반 밥상이 아니라고 했다. 상다리 휘어지는 남도 한정식도 토하젓 종지가 놓여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한정식의 대표 메뉴 홍어삼합·보리굴비·생고기보다 더 높이 치는 사람도 있다. 특유의 맛도 맛이거니와 토하 자체가 워낙 귀하다.

한정식 밥상에 오른 토하젓. 토하젓 종지가 있어야 제대로 된 한정식 밥상 대접을 받는다. 사진은 강진 한정식 집 '청자골 종가집'의 토하젓. 손민호 기자

한정식 밥상에 오른 토하젓. 토하젓 종지가 있어야 제대로 된 한정식 밥상 대접을 받는다. 사진은 강진 한정식 집 '청자골 종가집'의 토하젓. 손민호 기자

토하는 1급수 계곡물에서만 산다. 옛날에는 동네 개천에도 흔했다지만, 지금은 깊은 산 맑은 계곡까지 찾아가야 살아 있는 토하를 만날 수 있다. 농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물에서는 토하가 살지 못한다. 여태 토하를 “또랑새우”라 부르는 어르신도 있다.

요즘에는 심심산골 계곡을 찾아가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사람이 토하를 키운다. ‘양식(養殖)’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데서나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사람보다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 더 흔한 두메산골에서 토하를 키울 수 있다. 이 예민한 그러나 맛있는 새우를 기르는 마을이 있다. 전남 강진군 옴천면이다. 참, 12월 들머리에 토하 얘기를 늘어놓는 까닭이 있다. 12월은 토하 잡는 달이다. 계곡이 꽝꽝 얼기 전에 잡는다. 우선 마을 얘기부터 하자.

토하 기르는 마을

'옴냇골토하’의 토하 서식지. 논을 개량했다. 가장자리를 따라 놓인 대나무 가지에서 토하가 모여 산다. 손민호 기자

'옴냇골토하’의 토하 서식지. 논을 개량했다. 가장자리를 따라 놓인 대나무 가지에서 토하가 모여 산다. 손민호 기자

옴천(唵川)면은 오지 중의 오지다. 강진 땅 맨 꼭대기 내륙 산악지역에 박혀 있다. 옴천 사람은 옴천을 ‘인삼 대가리’라고 부른다. 인삼처럼 길쭉하게 생긴 강진 땅의 꼭대기에 있어서다. 옴천면은 월출산 동쪽 밑자락 해발 130∼140m 지대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이름에 ‘내 천(川)’ 자가 있는 마을은 물이 많다. 옴천도 그렇다. “옴천은 나가는 물만 있고 들어오는 물은 없다.” 김국혼 옴천면장의 설명이다. 바깥에서 오염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옴천에서 나간 물이 탐진강을 이뤄 남도 들판을 적신다.

이름 첫 자 ‘옴’이 어렵다. 무슨 뜻일까. ‘맑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의미한다. 어려운 한자다. ‘옴’ 자를 ‘암’ 자로 잘못 읽는 사람이 더 많다. 한자 옴(唵)에는 ‘불경 읊을’의 뜻도 매겨져 있다. ‘반야심경’의 첫소리인 산스크리트어 ‘옴(OM)’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름에서 경건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옴천에는 풍수지리에서 이르는 명당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옴’ 자를 쓰는 지명은 옴천이 유일하다.

워낙 깊은 산 속에 틀어박혀서 그런지, 옴천은 강진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이를테면 “옴천 면장 맥주 마시듯이”라는 말이 있다.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옴천 면장이 맥주를 사야 하는데 돈이 아까워 거품만 가득 따라서 줬다는 설이 있고, 맥주를 못 마셔 본 옴천 면장이 거품만 따라서 먹었다는 설도 있다. 두 가지 설 모두 ‘촌사람 옴천 면장’를 비웃는다. “옴천 면장 할래, 목리 이장 할래” 같은 말도 비슷하다. 이장보다 못한 면장이라니. 그 정도로 옴천은 업수이 여겨졌다. 역사적으로도 옴천은 수난의 고장이었다. 옴천 아랫동네에 전라병영성이 설치됐던 조선 시대, 옴천 사람들은 툭 하면 잡혀가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 병영과 옴천을 가르는 고개 이름이 ‘귀활재’다. ‘살아서 돌아간다’는 뜻이 서렸다.

요즘 들어 ‘오지’는 긍정적으로도 해석된다. 오염 안 된 무공해 지역으로 말이다. 오지 옴천이 거느린 기록이 있다. 전국 최초로 면 전체가 친환경농업특구로 지정됐다. 현재 옴천면에는 모두 717명이 산다. 전국 3502개 읍·면·동 중에서 5번째로 인구가 적다. 이 정도는 돼야 토하가 산다. 시방 옴천면의 네댓 가구가 토하를 기른다.

옴천면에서만 토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도 토하의 고장이다. 그러나 옴천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옴천에서 잡은 토하로 담근 젓갈은 조선 시대 수라상에 올랐다. 꼬막 앞에 벌교가 붙듯이 토하 앞에서는 으레 옴천이 붙었다. 옴천토하. 이래야 격이 맞는다.

토하 잡는 날

'옴냇골토하' 임정열 대표. 아버지에 이어 20년 전부터 토하를 기르고 있다. 손민호 기자

'옴냇골토하' 임정열 대표. 아버지에 이어 20년 전부터 토하를 기르고 있다. 손민호 기자

옴천면 영산리의 작은 마을에서 펄떡이는 토하를 봤다. ‘옴냇골토하’ 임정열(50) 대표의 서식장에서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임 대표가 막 토하를 잡고 있었다.

서식장은 모를 심지 않은 논이다.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망을 둘렀고, 물을 계속 흐르게 하려고 옆 개천과 파이프를 연결했다. 가장자리를 따라 잎사귀 무성한 대나무 가지만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깨끗한 물만 계속 흐르면 토하가 알아서 자라요. 물에 대나무나 동백나무 가지를 넣어두면 모여 살아요. 토하에겐 아파트 같은 곳이지요. 대신 토하를 잡아먹는 물고기나 벌레를 수시로 잡아줘야 돼요.”

대나무 가지를 털면 토하가 물방울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손민호 기자

대나무 가지를 털면 토하가 물방울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손민호 기자

소쿠리에 담긴 토하. 갓 잡아올린 녀석들이다. 손민호 기자

소쿠리에 담긴 토하. 갓 잡아올린 녀석들이다. 손민호 기자

민물새우라고 다 토하가 아니다. 아래 작은 녀석이 토하다. 위 큰 녀석은 '징거미새우'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민물새우라고 다 토하가 아니다. 아래 작은 녀석이 토하다. 위 큰 녀석은 '징거미새우'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임 대표가 물에서 대나무 가지를 들어 올렸다. 토하가 물방울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소쿠리를 얼른 아래에 갖다 댔다. 펄떡이는 토하로 금세 가득 찼다. 소쿠리에서 꿈틀대는 토하는 기껏해야 새끼손가락 첫째 마디만 했다. 다 큰 놈이다. 중간중간 토하보다 대여섯 배 큰 새우가 보였다. ‘징거미새우’라고 했다.

“민물에서 산다고 다 토하가 아니에요. 징거미새우로 젓갈을 담가 토하젓이라고 속여 파는 사람도 많아요. 징거미새우 새끼도 우리는 구분해요. 옆구리를 보면 세로로 줄무늬가 있거든요. 그걸 일일이 골라내요. 토하 잡는 시간보다 징거미새우 거르는 시간이 더 길어요.”

염장한 토하. 색깔이 검붉게 변했다. 완전히 숙성되면 붉은색을 띤다. 손민호 기자

염장한 토하. 색깔이 검붉게 변했다. 완전히 숙성되면 붉은색을 띤다. 손민호 기자

완성된 토하젓. 젓갈에서 도는 찰기는 고추장 때문이 아니다. 찹쌀죽을 넣는다. 맛이 달고 고소하다. 손민호 기자

완성된 토하젓. 젓갈에서 도는 찰기는 고추장 때문이 아니다. 찹쌀죽을 넣는다. 맛이 달고 고소하다. 손민호 기자

잡은 토하는 바로 염장한다. 임 대표는 신안천일염을 쓴다고 했다. 염장한 토하를 1년 숙성한 뒤 비법 양념을 한다. 고춧가루·마늘·생강 같은 양념에 찹쌀죽을 넣으면 비로소 토하젓이 완성된다. 임 대표는 1년에 토하 100∼150㎏를 잡아 토하젓 200∼300㎏를 생산한다고 했다. 대부분 아는 사람이 사 간다. 600g 1종지가 4만원이다. 비싸다.

토하젓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 비린내는커녕 흙냄새도 없었다. 그저 달고 고소했다. 모락모락 김 피어오르는 뜨스운 밥 생각이 간절했다.

 강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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