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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문명기행

신화를 읽으면 승자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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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중앙선데이 부국장

이훈범 중앙선데이 부국장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장구한 시간에 비해 짧디짧은 그 서술에 패자의 변명이 끼어들 틈은 없다. 상상력의 그림자가 드리운 신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패자의 역사는 승자의 월계관을 장식하는 꺾인 나뭇가지일 따름이다.

신화에 패자 역사는 승자의 장식물 #중국은 극적 요소 적은 패권 다툼 #길가메시는 하늘·땅 대립의 절정 #전·후기 판도 따라 바뀐 가야 신화

신화 속에서 승자와 패자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외부세력의 침입이 적었던 지역의 신화는 극적인 요소가 적다. 중국이 그렇다.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전설이 자연스레 역사로 이어진다. 그렇다 보니 전설을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마저 있을 정도다. 이 시기에 ‘판천(阪泉) 전쟁’ ‘탁록(涿鹿) 전쟁’ ‘공공(共工)과 전욱(顓頊)의 전쟁’을 비롯한 여섯 번의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신화다운 지극한 과장으로 포장되지만, 대체로 개연성 있는 내부 파워 게임 또는 제후들의 패권 다툼이다. 신과 반신(半神) 또는 인간의 연합 또는 대결 구도가 아니다. 혼돈을 1만8000년 동안 도끼로 찍어 하늘과 땅을 가른 뒤 지쳐 죽어가면서 자신의 신체로 삼라만상을 만들어낸 천지창조의 신 반고(盤古)가 있긴 하지만 기록상으로 삼황오제보다 훨씬 이후에 등장하는, 후대에 추가된 신일 뿐이다.

외부세력과의 다툼이 큰 의미를 차지한 지역의 신화는 신과 인간, 즉 하늘과 땅의 연합 또는 대결 구도가 보다 두드러진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비옥한 땅을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메소포타미아의 신화가 그렇다. 수메르인들에게 창조의 근원이었던 ‘남무(바다)’는 ‘안-키’ 즉 하늘과 땅을 낳는다. 자웅동체인 안과 키는 ‘엔릴(대기)’를 낳는데, 엔릴은 부모를 분리시켜 어머니 키를 아내로 삼는다. 아버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지상에 군림하는, 하늘과 땅의 적대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중립적이던 하늘과 땅의 관계가 대립적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원전 28세기 길가메시 대에 와서는 그 대립 관계가 절정에 이른다. 반신반인인 길가메시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다. 길가메시의 힘이 너무 커지자 천신(天神) 아누가 그를 견제하기로 한다. 모신(母神) 아루루가 아누의 모습을 본떠 점토로 힘센 야만인 엔키두를 만들어 지상에 보낸다. 그러나 힘 빼기 전략에 넘어간 엔키두는 길가메시에 굴복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이어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를 유혹하지만 거절당하고, 아버지인 아누에게 하늘의 황소를 보내 길가메시를 혼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황소를 죽여버리고, 분노한 신들에 의해 엔키두는 죽음을 맞는다.

여기에서 엔키두는 우르크에 도전한 다른 부족의 지도자일 가능성이 높다. 길가메시의 부족과 엔키두의 부족은 메소포타미아 남부 도시 우르크를 놓고 전쟁을 벌이다 전략적 연합을 해서 다른 부족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두 사람의 모험이 그것이다. 그들이 물리친 숲의 괴물 훔바바는 산악지역의 부족, 하늘의 황소는 황소를 토템으로 삼은 부족을 일컫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후기 가야를 이끌었던 가라국(대가야) 유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기의 맹주였던 가락국(금관가야)을 대체하면서 신화도 바꾼다. [이훈범 기자]

후기 가야를 이끌었던 가라국(대가야) 유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기의 맹주였던 가락국(금관가야)을 대체하면서 신화도 바꾼다. [이훈범 기자]

우리의 고조선 신화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환인을 졸라 인간세계에 내려온 환웅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외부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되겠다고 찾아온 호랑이와 곰 또한 호랑이와 곰을 각각 토템으로 삼고 있던 토착 부족들일 것이다. 첨단 청동기를 소유한 환웅의 외부세력은 하늘을 숭상하는 문화적 배경을 볼 때 북방 유목민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곰을 숭상하는 토착 부족과 손을 잡고 지역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이제 가야로 돌아올 차례다.

“천지가 개벽한 뒤 이 지방에는 아직 나라 이름이 없고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 9간(干)이 백성을 통솔했는데 모두 1만호 7만5000명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산과 들에 모여 살면서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첫머리다. 9개의 씨족으로 구성된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늘이 내게 명하기를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셨다. 너희들은 산봉우리 정상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고 노래하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대왕을 맞이하게 되리라.”

9간이 신탁(信託)에 부응해 사람들을 이끌고 노래하고 춤을 추니 하늘에서 내려온 자주색 줄 끝에 붉은 보자기로 싼 금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각각의 알에서 동자가 나와 여섯 가야국의 왕이 되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수로(首露)가 가락국의 수로왕이다. 우수한 철기문화를 소유한 김수로의 집단이 북쪽에서 내려와 김해 지역을 접수하고 청동기 단계에 머물러있던 9간 사회를 통합한 것이다.

후기 가야의 맹주인 가라국 신화는 다르다. 조선 성종 때 노사신 등이 펴낸 『동국여지승람』은 신라 문장가 최치원이 편찬했다는 『석이적정(釋利貞傳)』과 『석순응전(釋順應傳)』을 인용해 가라국 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가야산신인 여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에 감응해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으로 별칭이라 하였으나 가락국 옛 기록의 여섯 알 전설과 더불어 허황한 것으로 믿을 수 없다.”

가락국과 가라국의 시조가 형제가 된 것이다.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멸망한 가락국 지배세력의 일부가 고령 가라국으로 들어와 토착세력과 연대한 것일 터다. 가라국 시조가 형이 된 것은 나라를 잃고 피난한 집단에 비해 토착 지배세력의 힘이 강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알이 아니라 산신의 자식으로 바뀐 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이주 세력이 아니라 이미 토착 지배세력이 된 지 오래된 상황이라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다. 불교 팔정도(八正道)의 첫째인 정견(正見)이 신의 이름에 들어간 것처럼 불교적 윤색의 가미가 특히 그렇다.

가야 신화의 장소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지봉은 접근로 공사 중으로 이 까칠한 방문객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석봉의 글씨라 전하는 구지봉 표석을 못 본 아쉬움은 남지만 신화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는 데 부족할 건 없었다.

이훈범 중앙선데이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