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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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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지유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지유 사회팀 기자

홍지유 사회팀 기자

피해자 3명은 생후 6·15·18개월의 영아였다. 가해자인 사설 베이비시터 김모(38)씨에게 자식을 맡긴 이들은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는 20대 초반의 어린 부부 혹은 한부모였다. 지난달 말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는 10여 년간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김씨의 학대로 사망한 생후 15개월 여아 A의 부모는 빚 문제와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올해 7월 김씨에게 딸을 맡겼다. 그리고 딸은 지난달 ‘미만성 축삭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문의에 따르면, 이 증상은 자동차 사고나 낙상과 같은 심각한 물리적 충격이 동반될 때 발생한다. 아이가 사망 전 자동차 사고에 준하는 심각한 물리적 충격을 겪었다는 의미다. 생후 6개월의 다른 아이는 “부모가 양육비를 제때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고문을 당했고, 또 다른 아이는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사건이 꼭 일어나야 했을까. 김씨가 아이들을 학대했다 하더라도 2년 전 아이의 몸에서 화상 흔적을 발견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는 이웃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더 철저히 상황을 파악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지 모른다. 그뿐만 아니다. “다리가 아파서 기지 못하고 결석이 잦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경찰에 아동 학대 신고를 했더라면, 정부가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지는 취약 아동들에 대해 실태 조사를 했더라면, 무허가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친부모에게 있었더라면 A는 살아있었을 것이다. A가 반복된 굶주림과 폭행으로 경련을 일으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친부모도, 아동보호기관도, 경찰도, 어린이집 관계자도 사안에 대해 몰랐거나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울타리는 필요하다. 경제적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취약 계층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생면부지의 사설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베이비시터 등록제를 통해 범죄경력조회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고려해봄 직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엄마 아빠들이 맘카페에서 “아이 돌봐드립니다” 게시물을 검색하고 있다. 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범죄 경력이나 정신 병력이 없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홍지유 사회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