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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이대로 물러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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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 ‘휴전’을 선언하자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확대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에서다.

이날 만찬은 음식도, 내용도 트럼프에 맞춰졌다. 메인 메뉴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시 주석이 준비해 온 ‘선물’도 테이블에 올랐다. 미국산 상품 1조2000억 달러어치를 추가로 사겠다는 약속이다. 시 주석은 미국이 요구한 140여 개 안건에 응답하는 데만 30분을 썼다.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된 만찬은 밖에서 들릴 만큼 큰 박수로 마무리됐다.

포성은 멈췄지만 전운은 가시지 않았다. 90일간의 휴전이 종전을 향해 가는 휴전이 될지, 더 큰 전쟁을 위한 숨 고르기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단 멈추는 게 각자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두 정상이 이같이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휴전이 더 급한 쪽은 시 주석이었다. 시 주석은 중국 기업·지방정부를 상대로 부채와의 전쟁을 벌이던 중 예기치 않은 무역전쟁에 휘말렸다. 그러다 보니 돈줄을 죄지도, 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했고, 마지막 보루로 여기던 소비마저 부진해지자 전략을 가다듬을 시간이 절실했다.

휴전이 없었다면 내년 1월부터 미국으로 수출하는 2000억 달러어치 상품에 대한 관세가 10%에서 25%로 오르게 된다. 나아가 중국산 제품 전체로 관세 부과가 확대되면 중국 경제는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관세 때문에 중국 수출길이 막혀 쌓여 있는 농산물·에너지 등 재고 일부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농민·노동자 등 지지층을 달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무역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5월 중국은 이번처럼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을 늘리겠다고 제안하며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거절했다. 상품 좀 더 팔자는 게 아니라 중국의 산업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였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 주석과 만난 지 48시간 만에 전선의 장수를 전격 교체했다. 대중 강경파이자 통상 협상의 달인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미 협상단 대표로 임명했다. 예고한 관세 폭탄을 모두 터뜨려야 미국의 협상력이 올라간다고 믿는 진정한 '중국 매파'다. 온건파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내려왔다.

전열을 정비해 제대로 붙겠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상대의 굴복을 받아낼 때까지 압박하는 게 트럼프 스타일이다. 그러나 시 주석 입장에선 ‘중국 제조 2025’ 같은, 일국의 산업정책을 바꾸라는 요구에는 응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미·중 패권 전쟁이 10년 이상 갈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힘을 얻는 이유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