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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라던 평창 알파인경기장, 내년부턴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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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최근 내린 첫눈에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알파인 경기장이 흰 눈으로 뒤덮였지만, 슬로프로 올라가는 리프트는 멈춘 채 방치돼 있다. [박진호 기자]

최근 내린 첫눈에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알파인 경기장이 흰 눈으로 뒤덮였지만, 슬로프로 올라가는 리프트는 멈춘 채 방치돼 있다. [박진호 기자]

첫눈이 스키장 슬로프를 하얗게 뒤덮었다.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스키 여제’ 린지 본과 ‘스키 요정’ 미케일라 시프린이 승부를 펼치던 경기장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겨울 스키장엔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와 관광객은 없었다.

“세계 최고” 극찬 받은 알파인 경기장 #올 허가 기간 만료돼 내년부터 불법 #환경부·산림청 “당초 계획대로 복원” #강원도 “북한과 AG 유치 위해 필요” #산림청, 허가 연장 반려 … 입장 팽팽

평창겨울올림픽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스키장”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 얘기다.

더욱이 이 경기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불법 시설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평창올림픽 개최로 인한 국유림 사용신청 허가 기간이 연말에 끝나기 때문이다.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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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자 ‘알파인 경기장은 지역 생존권이 걸려있다’ ‘올림픽유산 알파인 보존은 국가의 사명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경기장 앞에 설치된 리프트는 멈춰있었고,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찾은 시설물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 윤모(48·여)씨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키장이자 올림픽 유산이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다”며 “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려면 또다시 수천억원의 예산이 든다는데 일부 시설은 남겨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이 지금처럼 방치되고 있는 건 지역사회와 체육계· 환경단체·정부 등이 ‘복원이냐 존치냐’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강원도와 정선군 등은 올림픽 유산인 스키장 시설 일부를 유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비와 지방비 2064억원을 들여 세계 최고 수준의 스키장을 건설해 놓고 대회가 끝났다고 곧바로 허무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지난달 19일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에 ‘올림픽 생태·평화 숲 조성계획’을 제출했다. 조성계획을 보면 곤돌라는 남기고 알파인 경기장 정상부에 가리왕산과 북강원도의 주목 1000 여 그루를 심는 등 현재 상태에서 생태 복원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스키장 입구에 있는 기존 시설은 ‘생태숲 평화 교육 전시관’으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북한과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공동 유치하려면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필요한 만큼 시설 일부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강원도 관계자는 “전면 복원을 할 경우 지하매설물 철거 등에 따른 폐기물만 7만여t에 달하고 지형을 원래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35만t의 땅을 또다시 파헤쳐야 한다”며 “전면 복원하는데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또 들어가는 데다 산사태 위험도 있어 전면 복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8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정선 알파인 경기장. [연합뉴스]

2018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정선 알파인 경기장. [연합뉴스]

반면 환경부·산림청은 올림픽 이후 전면 복원을 약속한 만큼 경기장을 전면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은 지난 8월 강원도가 제출한 가리왕산 생태복원 보완계획이 당초 전면 복원에서 곤돌라 및 운영도로 등 일부 시설을 존치하는 것으로 바뀌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환원이라는 목표에 맞지 않는다며 심의를 보류했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도 복원계획을 심의할 예정이었으나 강원도 입장에 변화가 없자 해당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산림청 관계자는 “곤돌라 등 핵심 시설을 철거하고 전면 복원하라고 심의를 보류했는데 그 부분을 보완해야 심의를 할 수 있다”며 “이번에 올라온 계획은 안건 상정 요건이 안돼 중앙산지관리위원회 심의를 오는 21일에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강원도가 지난 10월 말 알파인 경기장 142㏊ 면적 중 71%에 해당하는 국유림(101㏊)의 사용기한을 2023년 8월까지 연장해달라고 낸 갱신 허가서도 반려했다. 산림청의 반려로 알파인 경기장은 내년부터 국유림을 무단 점거하는 불법 시설물이 된다.

환경단체도 알파인 경기장 착공은 복원이 전제였던 만큼 신속히 전면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올림픽을 치른)모든 국가에서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올림픽 시설에 대한) 사후활용 계획을 낸다. 강원도 역시 올림픽 직전인 1월에 전면 복원안을 냈는데 올림픽이 끝난 뒤에 입장을 바꿨다”며 “당초 계획대로 당연히 전면 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둘러싼 환경 훼손 논란은 2011년 7월 평창겨울올림픽 유치 직후부터 불거졌다. 당시 가리왕산은 출발지점과 결승지점의 고도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연장 길이 3㎞ 이상 등 국제스키연맹(FIS)의 규정을 충족하는 유일 지역이라 알파인 경기장 부지로 낙점됐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가리왕산(해발 1561m)이 원시림 및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포함되는 등 환경 훼손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 이후 산림청은 2014년 3월 평창올림픽 개최 이전까지 사후활용 방안이 포함된 복원계획 수립하라는 조건으로 알파인 경기장 건설을 위한 산지전용을 조건부 승인했다.

강릉 하키센터 등 3곳, 결국 강원도개발공사가 관리 맡기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 관리 주체를 찾지 못한 평창겨울올림픽 경기장 3곳을 강원도개발공사(강개공)가 관리하기로 했다.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뉴시스]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뉴시스]

강원도는 최근 열린 올림픽 기념재단 설립 관련 회의에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사진)과 하키센터, 평창 슬라이딩센터 등 3개 경기장을 강개공에서 위탁·관리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강개공은 현재 평창 스키점프센터와 크로스컨트리센터, 바이애슬론센터 등 3개 경기장 사후활용을 맡고 있어 앞으로 총 6개 경기장을 관리하게 된다.

윤성보 강원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내년 상반기에 올림픽 기념재단이 설립된다. 하지만 곧바로 올림픽 시설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2년은 강개공에서 관리하고 안정화되면 기념재단이 맡는 것으로 문체부와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정선=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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