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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1100년, 찬란하고도 활달한 개방국가 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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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를 대표하는 유물인 불화, 불교 목판, 경전, 청자, 불상, 불감(佛龕·소형 휴대용 법당), 나전칠기, 금속공예품이 대거 출품됐다. [뉴시스]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를 대표하는 유물인 불화, 불교 목판, 경전, 청자, 불상, 불감(佛龕·소형 휴대용 법당), 나전칠기, 금속공예품이 대거 출품됐다. [뉴시스]

미국 보스턴 박물관이 소장해온 은제 금도금 주전자와 받침, 영국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각각 있던 ‘수월관음도’,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에 소장된 ‘아미타여래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고려 문화재 450여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일 개막하는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이하 ‘대고려전’)을 위해서다. 고려 미술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다.

918·2018 중앙박물관 특별전 #외국인도 재상으로 등용한 나라 #국내외 고려 명품 450여점 나와 #불화·조각·공예·목판 등 망라해 #국제도시 개경의 문물교류 주목 #“앞으로 100년간 보기 힘든 자리”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전시품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향후 100년 동안 보지 못할 세기의 전시”다. 평소에 보지 못할 귀한 명품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만날 특별한 기회라는 얘기다.

이번 전시를 위해 협력한 국내외 기관만 무려 45곳에 달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보스턴박물관, 영국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4개국 11개 기관에서 소장품을 가져왔고, 국내에선 해인사,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문화재단 등 34개 기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힘을 보탰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918년에 세워 1392년까지 약 500년간 이어진 국가다. 올해가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다. 건국 1000년이 되던 1918년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여는 전시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국립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고려는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이 형성된 시기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연구가 덜 돼 있었다. 당시 형성된 문화적 자양분을 제대로 살펴보고 되살리자는 뜻에서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고려, 포용과 통합의 왕조

이번 전시는 고려가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정치·문화를 지녔음을 역설한다. 안으로는 옛 삼국의 다양한 인적 문화적 자원을 흡수했고, 밖으로는 중국 본토에 들어선 송(960~1279), 거란족과 여진족이 고려 북쪽에서 세력을 형성한 국가인 요(916~1125)와 금(1115~1234), 몽골이 세운 원(1271~1368)과 두루 교류했다. 외국인을 재상으로 등용할 만큼이었으며, 물적·인적 교류도 활발했다.

전시는 고려 미술이 그런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함께 어우러져 꽃피운 결정체였음을 강조한다. 채해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대규모 고려 관련 전시로는 1995년 ‘대고려 국보전’(호암갤러리), 2003년  ‘고려 다이너스티’(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예술 뮤지엄)전 등이 있었다”며 “과거엔 경전과 나전칠기, 불화, 청자 등으로 장르로 나뉘어 열렸다. 불교 문화, 금속 공예 등 고려 문화 전반을 조망하는 전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것은 국보 19건과 보물 34건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53건이다.

열린 도시, 개경

전시는 ‘고려 수도 개경’ ‘고려 사찰’ ‘고려의 다점(茶店)’ ‘고려가 이룩한 뛰어난 기술과 디자인’ 등 네 가지 소주제로 구성돼 있다. 전시는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이 국제도시였으며 많은 외국인이 찾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1123년 5월 송 휘종이 보낸 2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온 서긍(1091~1153)도 그중 하나다. 사신 서긍은 고려에서 보낸 한 달을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책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에 인쇄된 이 책자도 볼 수 있다.

‘고려의 수도 개경’ 전시실에 놓인 희랑대사 좌상은 이번 전시에서 반드시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다. 희랑대사의 얼굴과 체격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초상조각인데, 그 실재감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10세기 중반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며 우리나라에 유일한 고승 초상 조각이다.

고려 왕실 미술품도 눈부시다. 당시 고려 왕실이 최대의 미술 후원자로, 왕실 주도로 회화, 금속공예품, 자기 등 뛰어난 수준의 공예품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불교, 중세문화의 중심

이번 전시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고려의 불교 문화를 조망한 부분이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평화적으로 공존했다. 이 가운데 불교는 국교라는 큰 지지기반 위에서 다양한 경전과 불화 등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주세페 투치’)에서 온 ‘아미타여래도’다. 아미타여래도는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부처가 혼자있는 독존형은 일본 쇼보사 소장 아미타여래도 등 총 6점만이 알려져 있다. 배기동 관장은 “SK그룹 회장인 최태원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이 5000만원을 후원해 이 작품을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인사에 찾아가도 볼 수 없는 고려대장경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대방광불화엄경수창연간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이다.

고려의 찻집을 조명한 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차는 국가와 왕실, 사찰의 각종 의례와 행사에서 고려인의 삶 깊숙이 존재한 문화로, 고려의 수준 높은 문화의 한 면을 보여준다. 정명희 학예연구관은 “고려가 이룬 창의성과 독자성, 통합의 성과와 예술성은 우리 안에 흐르는 또 하나의 유전자”라며 “조선 전기의 진보는 고려시대에 다져진 토양과 자양분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이는 다시 현재로 이어진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고려전을 기념해 15일 한국미술사학회와 함께 학술대회를 열고, 전문가 초청 학술 강연회를 네 차례 연다. 관람료는 성인 8000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4000원.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비어 있는 왕건 자리 … 스승은 기다리는 중

희랑대사좌상 옆 비워둔 북한 왕건상 자리. [연합뉴스]

희랑대사좌상 옆 비워둔 북한 왕건상 자리. [연합뉴스]

‘대고려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희랑대사가 제자 왕건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칠 희랑대사 좌상의 옆자리엔 왕건상은 없고 연꽃 좌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희랑대사는 통일신라 말 고승으로, 고려 건국 시 해인사에서 왕건을 지지해 후삼국의 통일을 도왔다. 당시 해인사가 보유했던 경제력과 군사력은 전세의 판도를 바꿀 만큼 영향력 있었다. 희랑대사는 건국 이후에는 왕건의 스승으로 고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화엄종을 크게 일으켰다.

박물관 측은 당초 이 자리에 왕건상이 놓이기를 기대하며 왕건상을 소장하고 있는 북측에 대여를 요청했다. 왕건상은 1992년 10월 고려 태조 왕건릉인 북한 개성 현릉 외곽에서 발견된 청동상으로, 북한이 출품 여부를 확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빈 자리로 전시됐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왕건상 일단 자리를 비워두되 설치작품의 형태로 꾸몄다”며 “통일을 향한 국민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학예연구관들이 추천하는 ‘이것은 꼭 보세요~!’

건칠 희랑대사 좌상(10세기)

건칠 희랑대사 좌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건칠 희랑대사 좌상.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해인사 소장. 보물 999호. 고려를 개국한 왕건의 스승 희랑대사의 조각상으로 국내 유일한 승려 초상 조각. 해인사 바깥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금동삼존불감(11~12세기)

금동삼존불감

금동삼존불감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73호. 집 모양의 금동제 불감. 불각 형식의 내부에 금동의 삼존불을 봉안한 것이다. 중국 북송과 요시대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은제 주자와 승반(12세기)

은제 주자와 승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은제 주자와 승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미국 보스턴 박물관 소장.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 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려시대 은제 주자. 현존하는 것 으로는 유일하다. 고려 금속공예의 대표작이다.

아미타여래도(14세기)

아미타여래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아미타여래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소장. 2012년 국립박물관 조사로 고려 불화로 밝혀진 작품이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160점이고, 그중에서도 독존 형식의 아미타 여래도는 10점도 채 안 될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14세기)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충남 청양 장곡사 소장. 뛰어난 조형성을 지닌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금동볼. 이 상에는 1000여명의 시주자 명단이 기록된 발원문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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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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