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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음악 듣고 밥도 먹는 수술실, CCTV 설치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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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8)

누군가에게 들었다. 유명 아이돌 가수도 밥을 먹고 똥을 싼다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했다.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가 없단 걸 깨달은 날, 그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슬만 먹고살 거 같은 인기 연예인이 사실은 밥도 먹고 똥도 싼다니!

대부분 나와 같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스타도 똑같은 사람이다. 아직 다 놀란 게 아니다. 또 하나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속 시원히 밝히겠다. 실은 의사도 밥을 먹고 똥을 싼다! 심지어 수술실에서도!

한 병원 관계자가 관제실에서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전국 병원 중 최초로 CCTV 설치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 병원은 수술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촬영 동의 여부를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1]

한 병원 관계자가 관제실에서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전국 병원 중 최초로 CCTV 설치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 병원은 수술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촬영 동의 여부를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1]

사람의 생명이 달린 수술 중에도 의사는 밥을 먹고 똥을 싼다. 충격이 클 것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릴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면 의사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이다. 의사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아마도 분노하게 될 것이다.

인턴의 선곡 따라 교수의 수술 결과 달라져

지금은 없지만 예전 내가 인턴 하던 시절에는 굉장히 불합리한 업무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음악 파일을 구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수술실에서 틀 곡을 전날 밤에 미리 준비해 둬야 했다. 문제는 집도의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인턴 인계 노트엔 교수별 음악 취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선곡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취향을 안다고 모든 사람이 연애에 성공하는 건 아니듯이 밤새 열심히 고른 곡이 항상 교수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누가 이런 음악을 틀었냐. 빨리 꺼!” 불호령이 떨어지면 비상이 걸렸다. 자연히 수술실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되었다. 수술하는 내내 짜증을 부렸다. 숫제 욕을 입에 담기도 했다. 험악한 분위기가 몇 시간씩 이어졌다. ‘넌 왜 하필 이런 곡을….’모든 사람이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째려봤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수술실에서 음악이 왜 필요한지. 무엇 때문에 내가 욕을 먹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술하는 교수의 집중력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클래식이 들려야만 안정된 호흡으로 수술하는 이가 있었다. 반대로 시끄러운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미쓰에이의 ‘배드걸 굿 걸’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칼을 놀리는 교수도 있었다.

수술실에서 음악CD를 트는 의사 모습. 처음엔 수술실에서 음악이 왜 필요한지 의아했으나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악은 수술하는 교수의 집중력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사진 KBS 뉴스 영상 캡쳐]

수술실에서 음악CD를 트는 의사 모습. 처음엔 수술실에서 음악이 왜 필요한지 의아했으나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악은 수술하는 교수의 집중력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사진 KBS 뉴스 영상 캡쳐]

머릿속에 상상해보면 어처구니없겠지만, 실제로 그는 음악의 경쾌함과 손놀림이 비례하는 사람이었다. 음악이 쳐지면 그의 수술도 함께 쳐졌다. 수술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고, 당연히 환자 상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선곡은 그야말로 중요한 요소였다.

본인이 듣고 싶은 음악을 직접 가져오면 될 일이지만, 당시 시대가 그랬다. 높은 분의 취향을 맞춰드리는 게 아래 사람의 직분이었다. 시시비비를 떠나 음악 또한 수술에 중요한 요소임엔 틀림없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수술실. 칼날 한 끗만 삐끗해도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술실. 경건하고 엄숙하기만 해도 모자를 그곳에서, 실제로는 미쓰에이의 ‘배드걸 굿 걸’이 흘러나온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의사도 사람이고 수술도 사람이 한다. 밥도 먹고 똥도 싸는 사람이 한다.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면 가관일 것이다. 내 아버지를 수술하던 도중에 밥 먹겠다며 자리를 뜨는 의사를 보게 될지 모른다. 당연하다. 24시간이 넘는 수술도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밥 한번 안 먹고 똥 한번 안 싸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고작 똥을 싸겠다고 마취 중인 환자를 그냥 두고 떠나는 의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사도 밥 먹고 똥 싸는 사람

수술이란 의사에게는 매일 있는 일상이지만 환자에겐 평생 한 번 겪는 희귀한 일이다. 어떤 이는 수술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사람 목숨을 가볍게 취급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수술 성공률을 높인다면 나는 기꺼이 음악을 틀어달라고 할 것이다. [중앙포토]

수술이란 의사에게는 매일 있는 일상이지만 환자에겐 평생 한 번 겪는 희귀한 일이다. 어떤 이는 수술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사람 목숨을 가볍게 취급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수술 성공률을 높인다면 나는 기꺼이 음악을 틀어달라고 할 것이다. [중앙포토]

수술이란 의사에게는 매일 있는 일상이지만, 환자에겐 평생 한 번 겪는 희귀한 일이다. 어떤 의사는 수술실에서 소독된 장갑을 끼는 순간 어젯밤에 본 드라마의 내용을 얘기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 아버지의 수술 순간에 그러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 의사를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것이다. 의사는 자그마치 사람의 생명을 다루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365일 24시간 그런 중압감에서 살 수 없다. 집중하는 순간과 풀어지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온종일 중압감에 시달리면 손이 무거워진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지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축구장의 골게터도 경기 내내 전력 질주하지는 않는 법이다.

사람들 기대치는 다를 것이다. 내 아버지의 수술실에 아이돌 음악이 흘러나오면, 사람 목숨을 가볍게 취급한다는 생각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생명의 무게를 존중하는, 말하자면 예배당 같은 분위기여야만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러나 의사인 나는, 내 가족이 수술을 받는다면, 두말하지 않고 집도의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할 것이다. 아이돌이든 뭐든.그것이 수술 성공률을 1%라도 높일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 음악이 나오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 논문들도 있다. 사람은 다양하다. 어릴 적에 귀에 이어폰을 꽂아야만 공부가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도 많았다. 걔들이 의사가 되어 수술한다면 어쩌랴? 듣고 싶은 거 틀어줘야지.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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