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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어려운 게 왜 문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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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교육의 목표는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 인간은 ‘사람다운 사람’이기도 하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 이’를 뜻하기도 한다. 고고하고 이상적으로 표현됐지만 어쨌든 그 목표는 다르지 않다.

수능은 어차피 상대 등수 가리는 과정 #수시에 대한 신뢰 부족한 게 더 큰 문제

대학의 목표는 더 좁다.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그 사람은 남이나 과거보다 우월한 사람이다. 1970년대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수험생의 2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니 고등학교 때 늦게 정신을 차려도 대학을 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두가 대학에 간다. 남보다 나아지기가 그리 쉽지 않다. 연세대학교 모종린 교수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진학자는 졸업정원제가 도입된 1981년 11만 8229명에서 2006년 32만 9976명으로 179.1%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SKY대학 입학정원은 1만5913명에서 1만1256명으로 29.3% 감소했다. 이 때문에 4년제 대학 진학자 가운데 SKY대학 진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1년 13.5%에서 2006년 3.4%로 크게 줄었다.

전체 고교 졸업자 역시 1973년 10만 5587명에서 2006년 56만8055명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SKY대학 진학자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3.5%에서 2.0%로 줄었다. 2006년 이후에도 이같은 흐름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예전 과외가 고교 때 집중됐다면 지금은 유치원부터 자녀를 영재로 키우려는 노력이 범상치 않다. 언제 어느때 건 ‘좋은 대학’은 정해져 있고 자녀 수는 줄어드니 이런 노력이 쉽게 사그라들긴 어려울 것이다.

얼마전 치러진 대입 수능 국어의 31번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만유인력의 원리를 묻는 문제가 국어 시험에 나왔으니 ‘역대급 불수능’, ‘학원으로 가란 말이냐’는 불평이 하늘을 찔렀다. 수능 최저기준을 맞추지 못할 것이란 불만도 컸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역대 수능에서 항상 있었다. ‘국어 31번’이 그 동안의 문제보다 조금 더 어려웠거나 낯설었을 뿐이다. 정답자가 20%가 안 된다고 하니 수능 등급에 미치는 영향도 더 적을 것이다.

사실 우리 대입의 근본적인 고민은 ‘수능 국어 31번’이 아니다. 수시와 정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제도가 가장 큰 문제다.

현 정부는 초기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까지 대입개편공론화위원장으로 불러냈지만, 초대 교육부 장관의 경질과 대입제도를 임기 내 손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마무리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나 고교학점제 같은 대입과 밀접한 정책은 다음 정부로 미뤄졌다. 이래도 저래도 욕먹기 마련인 대입 제도를 아예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숙명여고 사태’에서 보듯 전체 정원의 70%를 넘는 수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그냥 놔둘 순 없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실력’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는 정시에 비해 수시의 평가기준은 2000가지 이상의 전형방식이 있다고 할 만큼 난해하다. 내 아이에게 주어진 기준이 뭐가 될지도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공부 말고도 이런 저런 스펙을 쌓는데 시간과 돈이 적지 않게 든다. 숙명여고 사태는 그 일단일 뿐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대입에 한가지 방식만을 쓸 순 없다. 한가지 방식은 고교 서열화 등 이런 저런 폐단을 낳는다. 그렇다 해도 수시 70%는 너무 과도하다. 왜 합격했는지, 왜 떨어졌는지를 설명해주지 않는 대입제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흔히 팔자를 고칠 방법으로 세가지를 든다. 대입과 결혼, 취업이다. 하지만 결혼과 취업도 대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대입은 사회의 출발점이자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입 수시 비중을 축소하면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더 활발히 하게 할 방법은 진정 없을까.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