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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부자 “사랑해” 작별 인사 … 11년 만에 국장, 증시도 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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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H W 부시 1924~2018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타계한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이 5일 국가가 주관하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에서 국장은 2007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장례 이후 11년 만이다.

에어포스원으로 워싱턴 운구 #패배 안긴 클린턴과 퇴임 뒤 우정 #한반도 비핵화 시동 건 주역 #“진정한 친구였다” 전 세계 애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일인 5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의 유해를 워싱턴으로 운구하기 위해 그가 별세한 텍사스로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보냈다. 워싱턴에 도착한 유해는 3일 워싱턴의 의회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돼 이날 오후부터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고 조문이 이뤄진다. 5일 장례식은 워싱턴과 텍사스에서 각각 열린다. 트럼프 부부는 이날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식에도 참석한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병문안한 2017년 당시 모습. [사진 트위터]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병문안한 2017년 당시 모습. [사진 트위터]

부시의 장례식 날엔 뉴욕 증시가 하루 휴장한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측은 1일 “추모의 의미에서 ‘국가 애도의 날’에는 개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 증시는 전직 미 대통령의 장례일에는 전면 휴장하거나 부분 개장하는 전통이 있다. 별도의 거래소인 나스닥도 이날 하루 휴장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최근 며칠간 기운이 급속도로 떨어졌다고 한다. 식사도 중단했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지난달 30일 아침 제임스 베이커 3세(88) 전 국무장관이 그런 그를 찾아왔다. 베이커를 알아본 부시는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라고 물었다. 베이커가 “우린 천국으로 간다”고 답하자 “그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부시는 생전 마지막 말을 아들 부시 전 대통령에게 했다. 아버지 부시는 이날 타계 직전 아들 부시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들이 스피커폰을 통해 “당신은 훌륭한 아버지였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자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89~93년 제41대 미 대통령을 지낸 부시는 24년 6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텍사스주에서 석유회사·원양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했다. 그 뒤 66년 텍사스주 연방하원의원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한 89년은 국제정세가 극적으로 바뀐 한해였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글로벌 리더십이 절실했다. 그는 소련 붕괴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대 시작했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이끌어 결국 92년 소련에서 분리된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 4개 핵보유국(당시)을 협정 이행 의정서에 서명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부시는 한반도에서도 냉전 해빙을 이끈 주인공이었다. 그는 91년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를 결단했고, 이에 힘입어 남북은 그해 12월 한반도를 비핵화한다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할 수 있었다. 핵 보유 금지, 상호 핵 사찰, 핵무기 시험 금지 등을 담은 이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인 이정표가 됐다. 남북은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도 채택했다.

지난 4월 아내 바버라 부시 여사 장례식에 참석한 부시 전 대통령이 신고 온 양말. 그는 생전 문맹 퇴치에 힘썼던 아내를 기린다는 의미로 이 양말을 신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아내 바버라 부시 여사 장례식에 참석한 부시 전 대통령이 신고 온 양말. 그는 생전 문맹 퇴치에 힘썼던 아내를 기린다는 의미로 이 양말을 신었다. [AP=연합뉴스]

부시의 또 다른 업적은 90~91년의 걸프전이다. 부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단으로 점령한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해 국제연합군을 조직해 군사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압승을 거뒀다.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전쟁사에 기록된 걸프전에는 한국을 포함한 33개국에서 12만 명의 다국적군이 참전했다. 91년 초 걸프전 종전을 전후해 지지율이 80%를 넘나들면서 재선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 뒤 불거진 경기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92년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 구호를 앞세운 민주당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부시의 진가는 퇴임 뒤 더욱 빛을 발했다. 당파 정치에 매몰되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면서다. 심지어 자신의 재선을 가로막았던 클린턴과도 국제 이슈에서 거리낌 없이 손을 잡았다. 2005년 부시와 클린턴 두 전직 대통령은 동남아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퇴임한 지도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당시 두 사람이 피해 지역으로 타고 간 비행기엔 침대가 하나뿐이었는데 클린턴이 이를 부시에게 양보했다는 일화가 미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부시가 타계하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부시와 함께 냉전 종식을 이끌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87) 전 소련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부시의 가족과 모든 미국인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그는 진정한 파트너였다”고 추모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는 세계적인 지도자였고, 미국과 유럽의 동맹을 강력히 지지했다”고 애도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그는 영국의 진정한 친구였다”고 추모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아버지 부시, 의심할 바 없는 중국의 오랜 친구’라는 기사로 부시 전 대통령과 중국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아버지 부시 2차대전 조종사로 참전 … 일본 해상서 격추됐다 구조

1944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당시의 조지 H W 부시 중위. [중앙포토]

1944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당시의 조지 H W 부시 중위. [중앙포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할 당시 필립스 아카데미 학생이던 부시는 6개월 뒤인 42년 봄 고교 졸업 직후 해군에 입대했다. 당시 예일대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10개월 훈련을 마치고 43년 6월 당시로선 최연소 조종사가 됐다. 항공모함의 뇌격기(어뢰를 투하해 적의 군함을 공격하는 전투기)를 몰고 58회 출격했으며 네차례 훈장을 받았다. 44년 9월 2일엔 작전 도중 일본 남쪽 1000㎞ 해상에서 대공포를 맞고 격추됐지만 낙하산으로 탈출해 해상에서 4시간 동안 표류하다 인근을 지나던 미 해군 잠수함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당시 입은 부상으로 전상자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다. 그는 일본이 항복한 지 한 달 뒤 제대해 예일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이영희·임주리 기자,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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