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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한은 넘기고 내용은 비밀… 상습화되는 예산안 늑장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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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잠을 잘 자격이 있습니까.”

자유한국당 장제원 예결위 간사가 2일 오후 국회 예결위 회의장 안 밀실에서 열린 예결위 소소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TV=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장제원 예결위 간사가 2일 오후 국회 예결위 회의장 안 밀실에서 열린 예결위 소소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TV=연합뉴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윈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2일 오후 국회 예결위 3당 간사 회동 직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회가 헌법 54조 2항에 규정된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 기한(12월 2일)을 또다시 어기게 된 데 대한 일종의 반성이었다. 여야는 이날 3당 예결위 간사와 국회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 소수만 참여하는 비공개 ‘소(小)소위’를 열어 전날과 마찬가지로 예산안 심사를 이어갔다.

앞서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결소위)는 국회법 85조의3에 따라 지난달 30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내년도 예산안과 세입예산 부수법안은 1일 0시를 기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그러나 아직 소위에서 처리하지 못한 예산안 관련 안건은 246건에 달한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정식 의원은 “소소위에서 보류 안건을 최대한 줄이면, 3일부터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참여하는 이른바 ‘2+2+2 채널’로 (예산안 심사를)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야 최대 쟁점 분야는 남북협력기금과 일자리 예산, 정부 특수활동비 등이다.

조정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소소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예결위 회의장 내 밀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정식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소소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예결위 회의장 내 밀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예산안 의결이 법정 기한을 넘긴 것도 모자라 기약 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가) 불가피하게 하루 이틀 늦어질지 모른다”고 말했고,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며칠이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예산안도 만 사흘이 지난 12월 6일에 의결됐는데, 올해는 더 늦춰질 전망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는 국회 관행이 심화되고 상습화되고 있다.

예결위 소소위나 당 지도부가 참여하는 비공식 회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방식은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소소위와 ‘2+2+2 회의’ 등은 예산소위와 달리 속기록이 남지 않고, 언론 취재도 허락되지 않는다. 국회법 57조가 ‘소위 공개주의 원칙’을 담고 있음에도, 여야는 소소위를 간사 간 회동으로 규정해 공개원칙을 교묘히 비켜가고 있다. 예산 심사 과정과 관련해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필요하고, 정보 비대칭을 방지하기 위한 공개와 참여가 필요하다”(이원희 한경대 교수, 2013년 5월 국회 예산·재정개혁특위 공청회)는 지적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깜깜이 예산’ ‘밀실·졸속 심사’라는 비판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및 여야 3당 원내지도부, 예결위 간사단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및 여야 3당 원내지도부, 예결위 간사단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한국 국회의 실질적인 예산안 심사 기간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짧다는 점도 부실 심사를 자초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행 헌법상 정부의 예산안 제출 시한인 10월 2일부터 예결위 활동 종료 시한인 11월 30일까지는 대략 60일에 불과하다. 실질 심사는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이뤄지지만, 올해는 소위 개시일도 여야 정쟁 탓에 미뤄져 실제 기간이 9일(지난달 22~30일)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2월부터 회계연도 시작 전인 9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상원·하원 순서로 심사·의결한다. 4월에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일본은 내각이 1월에 예산안을 중의원에 제출하고, 2월부터 중의원 예산위원회의 예산안 심사가 시작돼 3월 31일까지 약 2개월 동안 이어진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산안 처리가) 국회 일정상 시간이 촉박한 데도 선거제 개편이나 국정조사 등이 터져 나오면서 예산안 심사의 밀도를 높이기 힘들었다”며 “외부 충격이 터지지 않는 이상 부실·밀실·늑장 예산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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