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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 태평양 전쟁 자원 입대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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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2차대전 참전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통령 #부자집 아들로 명문 고교 다닌 만큼 의무도 다해 #진주만 공격받자 예일대 합격 상태에서 해군 자원 #위험한 뇌격기 조종사로 태평양전쟁 최전방 참전 #일본 군함 공격하다 추락했지만 잠수함에 구조돼 #부친 프레스콧도 예일대 졸업 뒤 1차대전 달려가

조지 HW 부시(94) 미국 41대 대통령(재임 89~93년)이 10월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미국 언론은 부시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미국 대통령이자 2차대전 참전 용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를 제목으로 뽑기도 했다.

1944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당시의 조지 HW 부시 중위. 20살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1944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당시의 조지 HW 부시 중위. 20살 때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부시는 장남인 조지 W 부시(72)가 43대 대통령(재임 2001~2009년)이 되면서 부자 대통령의 기록을 남겼다. 차남인 젭 부시(65)는 플로리다주 주지사를 지냈다. 생전에 미국을 대표하는 공화당 정치 명문가를 이룬 셈이다. 이러한 부시 가문의 정치적 성공은 잘 알려졌다. 성공이란 결과를 되새김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헌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조지 HW 부시의 경력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1924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 명문 사립고교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마치고 군 복무 뒤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뒤 전 가족이 텍사스로 이주해 석유사업을 벌이다 성공을 거둔 다음 정계에 입문해 1964년 텍사스주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승승장구한 것으로만 보이는 그의 경력에 이런 쓰라린 경험도 있다. 그 뒤 사업을 정리하고 정치에 전념하면서 1967~71년 텍사스주를 지역구로 연방하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첫 선출직 공직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재임 1969~74년) 행정부를 시작으로 연방정부나 공화당의 고위직을 맡았다. 1971~73년 유엔주재 대사를 지냈으며 1973~74년에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미국 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왼쪽)와 아들인 43대 대통령인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가 함께 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미국 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왼쪽)와 아들인 43대 대통령인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가 함께 하고 있다. [사진 트위터]

제럴드 포드 대통령(재임 1974~77년) 행정부에선 1974~75년 제2대 베이징 연락사무소장을 맡았다. 베이징 연락사무소장은 미국이 중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공식 수립하기 전인 73~79년 한시적으로 존재한 것으로 수교를 위한 협상, 연락을 맡았다. 77~79년 마지막 연락사무소장을 지낸 레너드 우드콕은 79년 미국과 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초대 주중 미국대사(79~81년 재임)가 됐다.
부시는 1976~77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으면서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여세를 몰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재임 1981~89년)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돼 8년간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1988년 대선에서 당선해 41대 대통령(재임 1989~93)을 지냈다.

여기까지는 부시의 화려한 성공 이력서다. 그 뒤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섰던 청년 부시의 패기와 희생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부시는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당시 필립스 고교 학생이었다. 6개월 뒤인 1942년 봄 필립스 고교를 졸업한 직후 미 해군에 입대했다. 예일대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의 필립스 고교나 영국의 이튼, 해로, 덜리치 등 명문 사립고교에서는 대부분 여유 있는 집안 출신의 학생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르친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하는 정신 교육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너희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혜택을 받고 성장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명문 고교에 들어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졸업 뒤 항상 최선을 다하며 남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국민과 국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2011년 2월 생전의 조지 HW 미국 41대 대통령(오른쪽)이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부시와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는 정파와 상관 없이 서로 존경하고 신뢰했다. [UPI=연합뉴스]

2011년 2월 생전의 조지 HW 미국 41대 대통령(오른쪽)이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부시와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는 정파와 상관 없이 서로 존경하고 신뢰했다. [UPI=연합뉴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출신들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숱한 희생을 치른 것도 이러한 교육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학교마다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오지 못한 동문의 이름을 새긴 기념물이 있다.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 출신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교육을 받는다. 청년 부시는 그렇게 해서 기꺼이 군에 입대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부시는 2차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11월 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HW 부시 미국 41대 대통령과 지난 4월 17일 별세한 영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 2012년 6월 미국 프리미엄 영화 채널인 HBO가 부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시사회를 여는 자리다.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던 두 사람은 올해 봄과 가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AP=연합뉴스]

11월 30일 세상을 떠난 조지 HW 부시 미국 41대 대통령과 지난 4월 17일 별세한 영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 2012년 6월 미국 프리미엄 영화 채널인 HBO가 부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시사회를 여는 자리다.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던 두 사람은 올해 봄과 가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AP=연합뉴스]

부시는 미 해군 항공모함의 뇌격기(어뢰를 투하해 적의 군함을 공격하는 폭격기) 조종사로서 태평양 전선 최전방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항공모함에서 비행기를 이륙하고 착륙하는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다. 여기에 뇌격기는 바다와 가까운 저공으로 비행해 적함에 접근한 뒤 어뢰를 투하한 뒤 급상승하고 선회해 돌아오는 게 임무를 반복한다. 이는 당시 미 해군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 중 하나였다.
1944년 9월 부시가 몰던 뇌격기가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1000㎞쯤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 인근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해상에 추락했다. 낙하산으로 간신히 탈출해 해상에서 4시간 동안 표류하다 마침 인근을 지나던 미 해군 잠수함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그는 당시 입은 부상으로 전상자들이 받는 퍼플 하트 훈장 수훈자가 됐다. 1945년 중위로 명예 전역했다. 부시는 미국의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다.

전쟁 영웅이 된 부시의 군사 경력은 부시 집안 분위기에선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별세한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프레스컷 부시(1895~1972)는 예일대를 졸업한 뒤 1917년 군대에 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프랑스에 파병돼 서부전선에서 근무하면서 전방 포병 장교와 후방 정보 요원 교육 담당을 번갈아가며 맡았다. 1919년 대위로 전역한 뒤 기업과 은행에서 일하다 정계에 뛰어들었다. 1952~1963년 코네티컷주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인 조지 HW 부시는 재산과 명예, 교육 기회를 물려받으면서 이에 상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도 함께 이어받았다.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20세의 나이에 태평양 상공에서 뇌격기를 몰며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참전용사로서도 기억될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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