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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때 놓친 한은, 등떠밀려 경기 침체기에 금리 올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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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경기보다는 금융 안정을 택했다.

3분기 1500조원 넘어선 가계 부채에 #10월 2% 기록한 물가상승률 근거로 #1년 만에 기준금리 연 1.75%로 인상 #각종 지표가 경기 하강 신호 보내며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급감 불가피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30일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1년만의 인상이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지만 한은은1500조원을 돌파한 가계 빚과 자금의 부동산 쏠림에 따른 금융 불균형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금리 인상은 등 떠밀려 이뤄진 모양새다. 지난 7~8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고 그에 따른 가계 빚이 늘어나며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금리 인상 압력은 커졌다.

 그렇지만 한은은 인상 시점을 잡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에 따른 대외 불안과 ‘고용 쇼크’가 번번히 발목을 잡았다.

 지난달에는 올해와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탓에 금리인상으로 엇박자를 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금통위원 2명의 금리 인상 소수의견 등장에도 한 박자 쉬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9ㆍ13부동산 대책을 비롯한 강력한 부동산과 대출 규제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가계 빚 증가세도 둔화하기 시작했다.

 9~10월 주식과 채권 시장을 흔들었던 외국인 자본 이탈세도 진정됐다. 최근에는 오히려 국내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금리 인상 실기(失期)론’이 빚어진 이유다.

 그럼에도 막판에 몰린 듯한 한은이 금리 인상을 밀어붙인 명분은 있다. 가계 부채는 여전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3분기 기준 가계 부채는 1514조원을 기록했다. 3분기 기준 가계 빚 증가율(6.7%)이 월평균 소득 증가율(4.6%)를 앞지르는 등 금융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 여파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이 2.0%로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치(2.0%)에 도달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18~19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들어 네번째 정책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한은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Fed가 이번에 인상에 나서면 미국의 정책금리는 연 2.25~2.5%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한미 금리차는 다시 0.75%포인트로 벌어진다.

 시장 관계자는 “시장 금리가 정책금리보다 더 높은 상황에서 불거진 통화정책 무용론과 실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 신호가 계속됐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앞으로 한국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 신호가 계속됐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이주열 총재가 1년 만에 칼은 뽑아들었지만 ‘청개구리 금리 인상’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각종 경제 지표가 경기 둔화 혹은 하강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는 중앙은행의 선택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세에 따른 물가상승 부담이나 자산가격 거품(버블)이 뚜렷해야 함에도 각종 경제 지표나 최근 자산 시장의 흐름은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 우려는 짙어지고 있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7개월 연속 하락했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5개월 연속 떨어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한은도 지난 10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9%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2.8%에서 2.7%로 낮춰 잡았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5%, 내년 성장률은 2.3%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소득보다 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부채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소득이 그 충격을 받춰져야 버틸 수 있는 데 현재 경제 상황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급감은 불가피하다”며 “악화하는 내수 상황만으로 따지면 지금은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경기 둔화에 대비한 정책 여력 확보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둬야 한다는 논리에도 “지금은 아닌 듯하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2일 보스턴에서 열린 BABE 연례행사에서 연사로 나섰다. [A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달 2일 보스턴에서 열린 BABE 연례행사에서 연사로 나섰다. [AP=연합뉴스]

 앞으로 한은 통화정책의 방향은 미국의 움직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경기 상황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추가 인상은 어렵지만 미국과의 정책금리 격차가 확대되면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지며 상황이 급변할 수 있어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정책금리가 중립금리 바로 아래에 있다”고 발언하며 긴축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왔지만 Fed가 내년에 최소 2회의 금리 인상을 할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다.

 시장의 시나리오대로 Fed가 금리 정책을 끌고가면 한미 금리 역전폭은 1.2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시장 관계자는 “양국 금리 역전 폭이 1%포인트를 넘어서면 외국인의 자금 유출을 자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는다는 것이 시장의 인식”이라며 “이렇게 되면 경기 둔화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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