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비례제, 최저임금제 실험의 닮음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누구나 출발선에서는 선의와 의욕이 넘친다. 올 한 해 삶의 현장을 어지럽힌 최저임금 인상의 출발점도 실은 더불어 사는 따듯한 사회였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따듯한 선의가 차가운 현실의 바다에 덜컥 뛰어들 때 빚어내는 고통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선의가 있었을 최저임금제도 #현실 마주쳐 의도치 않은 결과 #유권자 선택과 의석수 일치가 #비례제 도입의 명분이라지만 #연줄·편법 공천 민주화 없다면 #정당 지도부 배만 불려주게 돼

요즘 정치권 안팎에서 얘기되는 비례제 선거제도는 최저임금 급속 인상의 실험을 꽤 많이 닮아 있다.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votes)과 그 결과로서의 정당 의석 수(seats)를 최대한 일치시킨다는 연동형 비례제는 그 뜻 자체로는 고상하다. ②그러나 비례제 선거제도가 후진적인 정당 현실과 만나게 되면 고상한 뜻은 겉포장만 앙상하게 남는다. 오히려 비례제는 기성 정당을 지배하는 정치계급들의 특권만 더 늘려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③제도가 부닥칠 현실은 복잡다단하건만 비례제 주창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때와 마찬가지로 제도의 효과를 단선적으로만 낙관하고 있다. ④결국 정치개혁의 초점은 비례제 도입에 앞서 정당 내부의 권력 독과점 구조를 깨는 정당 민주화에 맞춰져야 한다.

비례제와 최저임금제의 첫 번째 닮음꼴인 제도의 선의부터 살펴보자. 삶의 질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요즘 임금노동자의 법정 최저임금을 높여 그들의 고단함을 덜어보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그 자체로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목표다.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의 투표 선택과 의석 숫자를 최대한 일치시킨다는 독일식 비례제의 가치는 충분히 고상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독일식 비례제가 고상한 가치를 순결하게 품고 있다고만 할 수도 없다. 외관상 정당 비례투표와 정당의 총의석수가 일치되도록 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례성은 정당 득표율이 5% 이상인 정당들에 대해서만 허용된다. 5% 봉쇄 조항으로 인해 독일에서조차 투표(votes)와 의석(seats) 사이의 비례성은 적지 않게 왜곡된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더욱이 독일의 비례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치제도 설계에 깊이 관여한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역사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 점령국 미국은 독일에서 선거를 통해 압도적 다수 의석을 거느린 지배정당이 다시는 등장하지 않기를 원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하지만 강력한 미국의 입김이 전후 독일 비례 선거제도와 무관치 않다. 과연 독일식 비례제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만큼 고상했던가.

두 번째 닮음꼴은 비례제가 실제로 도입될 때 마주칠 복잡하고도 후진적인 우리 정치현실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미로처럼 얽힌 시장의 현실(자영업자들의 영세성, 다양한 파트타이머들의 딱한 사정, 최저임금을 밑도는 일부의 생산성 등)과 마주쳐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었다. 마찬가지로 독일식 비례제는 개방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우리의 비례의원 선출과정과 결합되면 오히려 비례의원 공천을 좌우하는 정당 지도부의 배만 불릴 뿐이다.

이미 시민들이 훤하게 꿰뚫고 있듯이 정당들의 비례의원 선출 과정은 낙하산·연줄편법·불법으로 얼룩져왔다. 당원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하는 정의당만이 비교적 민주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정의당의 비례명부 작성과정은 완벽한 분산과 개방형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블록체인의 시대에도 여전히 당원들에게만 열려 있다. 결국 비례제 옹호론자들이 말하는 비례의석 확대는 이미 배부른 고양이에게 또 생선을 안겨주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세 번째 닮음꼴은 단선적이고 희망적인 낙관론이다. 최저임금 인상→소득 증가→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낙관의 연쇄 고리는 현실에서 아직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례제 옹호론자들은 비례 선거제도가 정당들 간의 합의를 촉진하고, 나아가 타협의 정치경제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비례제 선거제도를 통해 독일·스웨덴 같은 선진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단선적 낙관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과연 비례의원을 뽑는 제도의 변경만으로 우리 정치인들이 홀연히 대립과 갈등에서 타협과 협의의 정치로 도약할 수 있을까.

고상한 목표만으로 변화와 개혁이 이뤄지길 바라는 것은 전(前)정치적 실험에 불과하다. 고상한 목표가 현실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꿰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낼 때에만 제도 개혁의 정치가 이뤄진다.

단순히 말하자면 필자는 정당들이 비례의원 후보 선출과정을 과감하게 시민 추첨제로 전환한다면, 또한 의원들이 시민들의 뜻을 상시적으로 반영하는 개방적 대표성이 확보된다면 그때는 기꺼이 비례제 확대에 찬성할 작정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