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제자리 찾기③]‘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무책임 정부, 문제해결하려면 대화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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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제자리 찾기

 29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1만명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아울러 자유한국당은 사립유치원의 시설사용료 수입을 인정하는 법안을 다음 달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래싸움’에서 나타나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들의 몫이다. 유치원이 당장 언제 없어질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는 유아들과 내년에 어디로 옮겨야할지 걱정인 학부모들이 부지기수다. 이에 중앙일보는 유치원 갈등의 정확한 현상과 원인, 대안을 3회로 나눠 살펴본다.

①‘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정부‧유치원 기싸움에 애끓는 학부모들
②'개인사업자냐 비영리기관이냐'…사립유치원 법적 쟁점은
③‘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무책임 정부, 문제해결하려면 대화부터

“문 걸어 잠그고 말조차 섞지 않겠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장의 말이다. 그는 “정부가 제시한 공공성 강화 대책을 수용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태도가 매우 강압적”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지난달 ‘3자 대화(교육부·한유총·전문가)’를 제안했지만 유은혜 사회부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사립유치원이 정부의 대책을 먼저 수용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사이 한유총은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지난 26일 한유총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공공성 강화 방안 중 회계의 투명성이나 안전한 급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감하고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유총 이덕선 위원장은 28일 “교육부와의 대화나 만남 등이 특별히 진전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여전히 사립유치원과의 협상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런 교육부의 심리를 ‘인질 협상’에 비유했다. 그는 “정부가 사립유치원을 마치 ‘인질(유아)’를 잡고 있는 범죄자로 생각하고 백기투항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셔 열린 예산결산특벽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대답하고 있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과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뉴스1]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셔 열린 예산결산특벽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대답하고 있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과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뉴스1]

 실제로 교육부는 여전히 복지부동이다. 지난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한유총과 대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 의원의 질의에 유 부총리는 “지금은 적절치 않은 시기”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한유총은) 어떻게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것인지 정부 정책에 호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이른바 국가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과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국공립과 동일한 회계시스템을 적용하고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금이 아닌 보조금으로 바꿔 횡령죄 처벌이 가능토록 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측은 “정부와 여당 말대로 하면 사립은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유총은 “‘박용진 3법’이 통과되면 ‘폐원하겠다’는 원장이 다수”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덕선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토론회 '사립유치원 이대로 지속가능한가?'에 참석해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덕선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정책토론회 '사립유치원 이대로 지속가능한가?'에 참석해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 보니 전문가들은 먼저 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정부 입장만 강요할 게 아니라 사립유치원이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교육학계의 원로인 이원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금처럼 정부가 입을 꾹 닫고 있어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사립유치원장이 진정한 교육자로 헌신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고 하루 빨리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학춘 동아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도 “사립유치원과 정부 사이엔 큰 입장차가 있다”며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정부가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는 “그동안 사립유치원 문제를 방조하고 키워온 정부의 책임이 크기”(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때문이다. 배 교수는 “법적 지위는 사립학교지만 실제론 구멍가게처럼 주먹구구로 운영됐다”며 “비리는 분명한 문제지만 정부가 미리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실제로 정부는 1980년대 ‘유치원=개인사업’이라며 시설 규정을 완화하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원장이나 교사도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다. 그 결과 1980년 861곳에 불과했던 사립 유치원은 1987년 3233곳으로 급증했다. 그러다 2012년 누리과정 시작과 함께 정부가 학부모의 원비를 대신 내주면서 재정이 직접 투입됐다. 하지만 사립유치원 측은 “원비만 정부가 대신 내줄 뿐 시설 등 모든 투자는 개인의 몫”이라고 항변한다. 개인사업과 공공적 측면이 혼재된 상황에서 갑자기 ‘유치원=학교’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이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학춘 교수는 “제대로 된 사립유치원은 공교육으로 편입하고 나갈 분들은 폐원할 수 있게 행정적인 편의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짜 교육자만 남겨두고 개인 사업으로 여겨왔던 이들은 퇴로를 열어줘 옥석을 가리자는 뜻이다. 배상훈 교수는 “유치원장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서 업자로 남고 싶으면 학원을, 교육자가 되고 싶으면 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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