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증후군 해소에만 20년” 미-베트남 수교 이끈 老외교관의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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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트남은 과거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가 화해를 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년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지난 28일 서울 포시즌즈 호텔에서 열린 ‘동북아평화협력포럼’에는 20세기 국제 정치계에서 '빅 피쉬(거물)'로 조명 받았던 인사가 등장했다.1995년 미국-베트남 국교 정상화의 산 증인인 레 반 방(71) 초대 주미 베트남 대사다.

 베트남은 경제 모델이나 미국과의 수교 협상 경험 등에서 북한이 롤 모델로 삼는 나라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 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있다. 베트남은 75년 종전 이후 미국의 금수조치(禁輸措置)로 압박 받았으나 80년대 ‘도이 머이’(개혁ㆍ개방) 정책으로 문호를 트며 급성장했다. 미-베트남은 2013년 포괄적 파트너십을 수립(2013년)했고 양국 무역 규모는 523억 달러(2016년 기준)에 달한다.

미-베트남 수교 협상 후 베트남 외무상 판히엔과 미 국무성 동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베트남 수교 협상 후 베트남 외무상 판히엔과 미 국무성 동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70대 노회한 외교관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북ㆍ미 관계 회복의 시사점을 조언했다. 방 전 대사는 “60~75년 벌어진 흉포하고 파괴적인 전쟁의 후속조치를 해 나가는 건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며 “관계 회복의 핵심에는 '미군 유해 송환 및 전시 실종자 발굴 문제(MIA·Missing in Action)'가 있었다"고 말했다.

인도적 교류를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써 복잡다단한 정치·경제적 난제들을 풀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미측 집계에 따라 베트남 전에서 실종된 미군 1972명의 유해 발굴에 나섰고, 40년 간 145차례에 걸쳐 미군 전사ㆍ실종자 980구의 유해 및 유품이 전달됐다"며 "올해도 4차례 공동 발굴 조사를 실시하는 등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18 동북아평화협력포럼 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방 전 대사. [뉴스1]

2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18 동북아평화협력포럼 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 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방 전 대사. [뉴스1]

 방 전 대사는 "두 가지 큰 난관이 있었는데 양국 관계 개선에 호의적이지 않은 국제ㆍ지역적 환경과 ‘전쟁 증후군’으로 불리는 미국과 베트남 국민의 반목 정서였다. 미국에선 93년 '베트남전 때 미군 포로가 소련으로 빼돌려졌다'는 허위 보고서가 공개돼 미 정부가 이를 검증하는데만 1년을 허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85년 무렵부터 지역 정세에 데탕트 무드가 조성되고 베트남의 진지하고 역동적인 노력으로 미국 전쟁포로·실종자가족연맹의 태도가 우리를 지지하는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정부는 94년 금수조치 해제를 결정했고 두 나라는 이듬해 정식 수교했다.

반 전 대사는 91년 워싱턴에 마련된 베트남의 첫 연락사무소 국장을 거쳐 95년부터 2001년까지 주미 베트남 대사를 지냈다. 2007년 베트남 외교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유정ㆍ권유진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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