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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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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옳고 그름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저 허튼소리를 하는 게 소설가의 본업이라고 여긴 한 소설가의 상상력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올 1월 작고한 SF 소설가 어설라 K 르 귄과 그가 창조한 ‘게센(Gethen)’이란 행성에 사는 게센인 이야기다. 1969년 작 『어둠의 왼손』에 담겼다.

르 귄이 게센인에 다다른 과정은 이랬다. “게센인들은 호전성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호전성을 조직으로 꾸미지는 않았다. 게센인에겐 군대와 전쟁이 없었다. 전쟁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려는 내 마음은 남자가 없는 세상에 도착하게 되었다. 남자 자체가 없는 세상, 늘 남자인 존재, 자신을 증명하려는 존재가 없는 세상…. 그렇다면 어떤 때 여자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반대도 가능할까.”

르 귄 스스로 움찔할 만큼 파격적 상상이었다. 결국 귀결점은 자웅동체인 존재였다. 대부분의 시간에 성이 없다가 한 달에 한 번 잠시 열기에 빠질 때만 성이 생기며 어떤 때는 여성이었다가 어떤 때는 남성도 되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게센성(인간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17~35세의 모든 사람이 ‘출산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선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묶일 일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산다.”

“게센인들은 타인을 남자나 여자로 보지 않는다. 새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 우리가 맨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제가 여가부 장관으로 처음에는 안 오고 싶었다. 너무 무서웠다. 이렇게 예민한 상황이어서”라고 말했다.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의 극한 대치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남성·여성을 나누고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그런다”고도 했다. 어제는 올해 3분기 출생아 수가 8만 명대를 턱걸이해 3분기 기준 역대 최소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합계 출산율로는 0.95명이었다.

우리는 두 문제가 그다지 멀리 떨어진 게 아님을 안다. 아우성과 구호는 난무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는 것도다. 르 귄의 게센인을 떠올린 이유다. 소설 속에서 지구인에 해당하는 남자 주인공이 게센인 지인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내게 여자는 게센인보다 낯설게 다가온다. 어쨌든 당신과 나는 한 가지 성은 공유하지 않았느냐.”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