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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추워지는데 보일러 안 와 걱정…일부 지역 택배 대란 원인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J대한통운 (협)전국택배대리점연합 소속 택배기사들이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고용부에 택배연대노조의 배송방해 행위를 중단 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회원들은 노조 소속 기사들이 작고 가벼운 상품만 배송하려 하고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거부하고 있어 대리점 및 비노조 택배기사들이 늦은 시간까지 추가로 배송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뉴스1]

CJ대한통운 (협)전국택배대리점연합 소속 택배기사들이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고용부에 택배연대노조의 배송방해 행위를 중단 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회원들은 노조 소속 기사들이 작고 가벼운 상품만 배송하려 하고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거부하고 있어 대리점 및 비노조 택배기사들이 늦은 시간까지 추가로 배송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뉴스1]

광주광역시 신가동에 사는 A씨는 갈수록 추워진다는 날씨 예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초조하다. AS를 맡긴 보일러의 택배 배송이 미뤄져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대인동에서 커피 체인점을 운영하는 B씨도 늦어지는 택배 때문에 걱정이다. B씨는 당장 써야 하는 커피 원두 배송이 지연돼 사업에 지장이 생길 위기에 처했다.

지난 21일 전국택배연대 노동조합(택배노조) 소속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총파업에 들어가며 일부 지방에서 배송 지연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택배기사는 600여명으로 CJ대한통운 전체 택배기사 1만8000명에 3% 정도지만 이들이 속한 지역이 광주광역시, 울산, 창원 등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어 해당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몇몇 노조원은 22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CJ대한통운 택배 터미널을 시작으로 23일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에 위치한 택배 터미널에서 택배 배달차량을 막아섰다. 경찰의 제지를 뿌리치고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배송만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애가 탄다. A씨는 CJ대한통운 콜센터를 통해 민원을 넣으며 "파업을 하는 건 좋은데 고객 물건을 잡아두면 어떻게 하나. 얼어죽으면 책임질 거냐"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B씨 역시 "이럴 거면 처음부터 접수를 받지 말아야지 고객 상품을 볼모로 뭐하는 짓이냐"고 말했다.

11월22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CJ대한통운 한 택배터미널에서 택배노조소속 택배기사가 택배배달을 막기위해 차량앞에 누워있다. [CJ대한통운 제공]

11월22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CJ대한통운 한 택배터미널에서 택배노조소속 택배기사가 택배배달을 막기위해 차량앞에 누워있다. [CJ대한통운 제공]

택배노조는 지난해 11월 3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아 노동조합의 지위를 가졌다. 이후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불평등 수수료 체계 개선, 근로계약서 작성 등을 주장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지난 10월 29일 CJ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작업자 사망사고가 이번 총파업에 계기가 됐다. 협력사 직원 유모(34)씨는 하차 작업을 하던 중 후진하던 트레일러에 치여 숨졌다.

이에 CJ대한통운 측은 택배기사의 고용 주체는 대리점주이기 때문에 직접 교섭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하도급거래공정화지침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게 부당한 경영간섭을 할 수 없다. 여기서 규정된 부당한 경영간섭 행위는 수급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간섭하는 원사업자의 행위다. 그 행위가 원사업자 자신이나 특정한 자(회사 또는 자연인)의 사적 이득을 위한 것인지, 국민경제 발전 도모라는 공익을 위한 것인지, 수급사업자에게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비용 절감·품질 향상 등 효율성 증진 효과 또는 수급사업자의 경영여건이나 수급사업자 소속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대리점주들도 택배업의 한 주체로서 대리점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했다. 홍우희 전국택배대리점연합 부회장은 "택배기사와 계약하는 건 대리점주인 우리다. CJ대한통운과 직접 교섭하는 건 경영 자율성 침해이자 우리를 무시하겠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택배기사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대리점주와 택배기사의 관계가 갑을 관계로 비치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대리점 입장에서는 택배기사에게 물품을 더 받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홍 부회장은 "하루 처리해야 할 택배 물량이 1000개면 이걸 두 명의 택배기사가 하던 3명이 하던 대리점주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며 "소득에 따라 납품 받는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 적인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는 11월 15일 호소문을 통해 중앙집행집원회 성원에게 서비스연맹에 전국택배연대노조 가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윤 기자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는 11월 15일 호소문을 통해 중앙집행집원회 성원에게 서비스연맹에 전국택배연대노조 가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윤 기자

택배노조가 민주노총에 정식가입됐는지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운송관련 업자는 "택배노조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라고 자칭하는데, 민주노총 안에서도 이를 두고 논란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민주노총 측에 취재요청을 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한 대리점주는 "택배노조가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단체를 앞세워 계속 파업을 하니 이에 대해 딱히 대응할 방법도 찾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과 전국택배대리점연합은 “택배기사가 노동조합법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결정은 위법하니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각각 제기한 소송은 총 40여건인데 현재 4건으로 합쳐져 서울행정법원에서 심리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11월 이미 정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행정소송이 시간 끌기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CJ대한통운에 접수되고 있는 배송 관련 민원 건수. [CJ대한통운 제공]

CJ대한통운에 접수되고 있는 배송 관련 민원 건수. [CJ대한통운 제공]

결국 행정법원 판단이 나올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특히 김장철이나 연말이 다가오며 피해가 더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CJ대한통운 따르면 파업으로 배송이 안 되는 지역에 전화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포항시의 경우 파업 이전인 16일(일) 56건이던 민원이 23일(일)에는 건 509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다른 지역도 비슷했다. 광주 남부 117건에서 627건, 광주 북부 156건에서 693건, 울산 154건에서 571건, 창원 115건에서 496건, 경기도 성남 119건에서 265건, 경기도 이천 209건에서 344건, 동대구 74건에서 195건으로 민원이 늘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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