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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이후 다시 찾아온 겨울…정선알파인 경기장 운명은

중앙일보

입력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서 본 슬로프와 스키장 시설.박진호 기자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서 본 슬로프와 스키장 시설.박진호 기자

첫눈이 스키장 슬로프를 하얗게 뒤덮었다.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 당시 ‘스키 여제’ 린지 본과 ‘스키 요정’ 미케일라시프린이 승부를 펼치던 경기장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겨울 스키장엔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와 관광객은 없었다.

‘복원이냐 vs 존치냐’ 양쪽의 입장차 좁히지 못해 #해법 못 찾으면 국유림 무단 점거 불법 시설물 전락

평창올림픽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스키장”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 얘기다.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자 ‘알파인 경기장은 지역 생존권이 걸려있다’, ‘올림픽유산 알파인 보존은 국가의 사명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 윤모(48·여)씨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키장이자 올림픽 유산이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다”며 “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려면 또다시 수천억원의 예산이 든다는데 일부 시설은 남겨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 붙어있는 현수막. 박진호 기자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입구에 붙어있는 현수막. 박진호 기자

강원도 스키장 일부 유지해 관광자원 활용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이 지금처럼 방치되고 있는 건 지역사회와 체육계, 환경단체, 정부 등이 ‘복원이냐 존치냐’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어서다.

강원도와 정선군 등은 올림픽 유산이자 극찬을 받은 스키장 시설 일부를 유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비와 지방비 2064억원을 들여 세계 최고 수준의 스키장을 건설해 놓고 대회가 끝났다고 곧바로 허무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지난 19일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에 ‘올림픽 생태·평화 숲 조성계획’을 제출했다. 조성계획을 보면 곤돌라는 남기고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림 등 슬로프 전체를 생태 복원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또 스키장 입구에 있는 기존시설은 ‘생태숲 평화 교육 전시관’으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 밖에도 최문순 강원지사는 북한과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공동 유치하려면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필요한 만큼 시설 일부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강원도 관계자는 “전면복원을 할 경우 지하매설물 철거 등에 따른 폐기물만 7만여t에 달하고 지형을 원래대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35만t의 땅을 또다시 파헤쳐야 한다”며 “복원하는데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또 들어가는 데다 산사태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내린 첫눈에 정선 알파인 스키장이 흰눈으로 뒤덮였지만 슬로프로 올라가는 리프트는 멈춘 채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최근 내린 첫눈에 정선 알파인 스키장이 흰눈으로 뒤덮였지만 슬로프로 올라가는 리프트는 멈춘 채 방치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산림청 “약속대로 전면 복원하라” 

반면 환경부·산림청은 올림픽 이후 전면 복원을 약속한 만큼 스키장을 전면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은 강원도가 지난달 말 알파인 경기장이 들어선 국유림 사용기한을 2023년 8월까지 연장해달라고 낸 갱신 허가서를 반려했다. 산림청의 반려로 알파인 경기장은 내년부터 국유림을 무단 점거하는 불법 시설물이 된다.

환경단체와 진보 정당도 알파인 경기장 착공은 복원이 전제였던 만큼 신속히 전면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의당 강원도당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강원도는 전 세계를 향해 올림픽 이후 생태복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아주 쉽게 뒤집었다”며 “가리왕산 곤돌라 운영에만 연간 13억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설 존치 시 골칫거리로 전락할 우려를 곳곳에서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올림픽을 치른)모든 국가에서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올림픽 시설에 대한) 사후활용 계획을 낸다. 강원도 역시 올림픽 직전인 1월에 전면 복원안을 냈는데 올림픽이 끝난 뒤에 입장을 바꿨다”며 “당초 계획대로 당연히 전면 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본 스키장 시설물. 강원도는 이 건물을 생태숲 평화 교육 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박진호 기자

지난 25일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본 스키장 시설물. 강원도는 이 건물을 생태숲 평화 교육 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박진호 기자

중앙산지관리위원회 심의 30일 정부대전청사서 열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둘러싼 환경 훼손 논란은 2011년 7월 평창겨울올림픽 유치 성공 직후부터 불거졌다. 당시 가리왕산은 출발지점과 결승지점의 고도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연장 길이 3㎞ 이상 등 국제스키연맹(FIS)의 규정을 충족하는 유일 지역이라 알파인 경기장 부지로 낙점됐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가리왕산(해발 1561m)이 원시림 및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포함되는 등 환경 훼손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 이후 산림청은 2014년 3월 평창올림픽 개최 이전까지 사후활용 방안이 포함된 복원계획 수립하라는 조건으로 알파인 경기장 건설을 위한 산지전용을 조건부 승인했다.

산림청 중앙산지관리위원회는 오는 30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제3차 회의를 열고 강원도가 제출하는 알파인 경기장 복원계획을 심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까진 양쪽의 입장차가 극명해 이번 회의에서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다.

정선=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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