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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잃은 게 한” 검찰총장 눈물짓게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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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왼쪽). 문무일 검찰총장은 27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중앙포토] 임현동 기자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왼쪽). 문무일 검찰총장은 27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중앙포토] 임현동 기자

참혹한 인권 유린으로 기록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문무일 검찰 총장 앞에서 생생한 증언을 쏟아냈다. 

문 총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에 앞서 피해자들은 30년 전 겪은 악몽을 떠올리며 울분을 터트렸다. 

"부모도 친구도 다 잃었다 "

피해자 중 한 명인 김대호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1981년 형제복지원에 처음 끌려갔다. 이후 세 차례나 다시 입소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50m 근처 여인숙이 집이라고 했는데도 경찰이 보내주지 않고, 차 안에서 감금하고 구타했다"면서 "그 어린 학생이 무슨 죄가 있나. 죄도 없이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잡아가는 것이 말이 되나. 형제복지원에 잡혀가는 바람에 친구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흙벽돌 지고 올라가고 그랬다"며 강제 노역을 한 일도 증언했다. "군인도 아닌데, 1소대, 2소대 이런 식으로 불렀다. 잘못을 안 해도 단체로 기합을 줬다"면서 "부모도 다 잃어버리고, 배우지 못한 것이 정말 한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체 해부에 활용된 500명, 형제복지원에 잠들었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 [중앙포토]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 [중앙포토]

또 다른 피해자 안기순씨는 "이 자리에 있지 못하고 500명이 넘는 수많은 영혼이 형제복지원에 잠들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안씨는 "좀 더 관심받고 치료와 혜택받았다면 죽지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들은 첫 번째 생을 마감하기도 전에 신체 해부로 활용돼 편안히 잠들지도 못했다. 그분들 영혼을 생각해보는 숙연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만 똑바로 했더라면…" 

1987년 당시 병원을 나서던 피해자(점선내 앞사람)가 복지원 운전기사(뒷사람)와 함께 복지원 소유 봉고차에 타기위해 걸어가고 있다. 당시 경찰관은 건물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있었다. [중앙포토]

1987년 당시 병원을 나서던 피해자(점선내 앞사람)가 복지원 운전기사(뒷사람)와 함께 복지원 소유 봉고차에 타기위해 걸어가고 있다. 당시 경찰관은 건물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있었다. [중앙포토]

부산 오빠 집에 놀러 갔다가 경찰에 끌려간 뒤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는 박순이씨는 과거 허술했던 검찰 수사를 지적했다. 박씨는 "경찰에 잡혀갔지만, 29년 동안 우리를 죽인 건 검찰도 책임이 있다"면서 "그때 조금이나마 똑바로 수사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총장이 늦게나마 선배들의 잘못을 사과해주니 너무 감사드린다"며 "피해 생존자들 모두 문 총장님께서 진상규명에 힘을 좀 많이 써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늦어진 사과, 송구스럽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날 피해자들과 마주한 문 총장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과 발언 자료를 낭독하면서도 목이 메는 듯 발언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했다.
문 총장은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피해자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이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게 너무 늦어서 참으로 송구스럽다"며 "오늘 뵙게 된 게 안타깝고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 우리 사회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문 총장은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가 쓴 '살아남은 아이'를 읽고 피해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당시 형제복지원 수사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가 쓴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초임검사 시절 보고 사건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형제복지원 부산 본원 수사하려 했지만, 부산지검장과 차장검사가 조사를 좌절시켰다"며 "수사 방해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주장하는 등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앞장선 인물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명분으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 410호(1987년 폐지)에 따라 부산에서 1975~1987년 운영됐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장애인과 고아부터 부모가 있는 어린이, 밤늦게 귀가하는 중고생, 대학생 등 일반인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당시 3000여명이 형제복지원에 잡혀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형제복지원에서는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암매장 등이 무분별하게 일어났다. 복지원 공식 집계로만 이 기간 513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피해자 가운데는 의과대학 해부 실습에 팔려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수사 당국의 조사가 시작됐지만,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2016년 사망)는 법원에서 특수감금죄 등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 9월 비상상고를 권고했고,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지난달 비상상고와 함께 사과를 권고했다. 문 총장은 이 같은 권고를 수용해 지난 20일 대법원에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을 다시 판단해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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