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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가 된 '웹툰', 도박광고가 번쩍…결국 방심위 찾은 작가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웹툰 해적사이트 '밤토끼' 로고. 현재 밤토끼는 차단된 상태다.

웹툰 해적사이트 '밤토끼' 로고. 현재 밤토끼는 차단된 상태다.

26일 오후 2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만화 작가들이 서울 목동의 사후 심의기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모였다. '미생' '내부자들' 등 숱한 명작을 남긴 윤태호 작가, 네이버 웹툰 ‘피에는 피’ 등을 연재한 연제원 작가를 비롯해 20여 작가가 방심위를 향해 "방심위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적극 협조하라"고 한목소리로 항의했다.

무엇이 작품 몰입하느라 대개 두문불출인 웹툰 작가들을 방심위 앞으로 불러들였을까. 이를 살펴보려면 우선 웹툰 시장을 봐야 한다. 이들이 절박한 이유는, 웹툰에 관심이 있다면 다들 알고 있듯 ‘해적 사이트’ 때문이다. 이런 불법 복제 사이트는 현재 웹툰 업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공식 플랫폼에 올라온 웹툰을 그대로 복사해 게재하고는,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네티즌에게 불법 온라인 도박, 성인 광고 등 온갖 광고를 노출시켜 광고 수익을 벌어들인다.

예를 들어 지금 곧장 대표 해적사이트 ‘호****’에 접속하면 첫 화면만 해도 번쩍거리고 있는 불법도박사이트의 배너 광고 12개를 보게 된다. 그 밑으로는 수만 건의 웹툰이 무료로 ‘전시’돼 있다. 콘텐트 특성상 웹툰은 복제가 쉬워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손쉬운 '미끼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번쩍이는 불법 도박 배너 광고 아래 미끼가 된 '웹툰'

웹툰 불법유통 해적사이트 '호****' [사진 홈페이지]

웹툰 불법유통 해적사이트 '호****' [사진 홈페이지]

피해 규모를 측정하기에 앞서, 웹툰의 시장 규모는 공식 통계 자체가 없다. 웹툰 점유율이 80%에 가까운 네이버웹툰은 대부분 무료로 웹툰을 서비스하고 광고로 돈을 버는 구조인데(물론 미리보기 수익도 있다), 이 광고 수익을 웹툰 시장 규모에 더해야 할지 등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통상 국내 웹툰 산업 규모를 얘기할 때는 KT경제경영연구소가 2015년 1월 낸 보고서 ‘웹툰, 1조원 시장을 꿈꾸다’에서 전망한 예측치를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2013년 1500억원에 불과했던 웹툰 시장은 올해 8800억원까지 증가한다. 업계에선 해적 사이트들로 인한 피해를 약 20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시장 규모의 20~30%가 해적 사이트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는 얼마나 심각한지 당장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골든타임 2년이 지나면 아예 웹툰 산업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불법 공유가 파괴하는 웹툰 생태계 토론회’에서 한 얘기다.웹툰이 K콘텐트의 문화적·산업적 보고가 된 지금 상황에서, 이를 웹툰 시장의 일로만 치부할 건 아니다.

'밤토끼' 검거 후 나아졌을까…"2년 후 웹툰 없어질 수 있다"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 오원석 기자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 오원석 기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적사이트의 ‘대부’ 역할을 했던 ‘밤토끼’ 운영자가 지난 5월 검거된 사실이다. 이들은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2년6월, 추징금 5억7900만원을 선고받았다. 업계에서는 그간의 선례에 비춰 그나마 중형이라 안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뿐이다. ‘밤토끼’를 대체할 사이트들은 여전히 넘친다. 복제·대체 사이트로 각종 ‘O토끼’ 사이트가 난무하고 있다. 다단계 심의를 거쳐 해적 사이트의 접근을 차단하면, 그것도 잠시뿐 링크만 살짝 바꿔 보란 듯 다시 운영한다. 밤토끼 이후에 웹툰 해적 사이트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는 ‘호****’은 홈페이지가 차단되면 홈페이지 주소의 숫자를 하나 올려 다시 운영한다(즉 ‘H****12.com’ 차단시→‘H****13.com’ 식이다.)

불법 해적 사이트 운영자들이 이처럼 손쉽게 복제·대체 사이트를 만드는 반면 심의 및 차단에는 2개월이나 소요되고 있다. 웹툰 업계에서는 문체부 산하 한국저작권보호원과 방심위가 2중으로 심의를 하는 중복 심의 구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심의한 사안을 방심위에서 또다시 심의해 시간이 지체된다는 주장이다.

2개월이나 걸리는 해적 사이트 심의, 대체 왜?!

현행 불법복제물 접속차단 절차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현행 불법복제물 접속차단 절차 [자료=문화체육관광부]

이 주장이 사실일까. 행정 부처인 문체부·한국저작권보호원과 독립민간기구인 방심위는 기구의 성격도, 권한도 다르다. 현 저작권법상 불법 사이트의 차단 권한은 방심위에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해적 사이트의 불법성 여부를 심의해 문체부에 알리면, 문체부가 이를 방심위에 "차단해달라"고 요청하고, 방심위는 ‘정말 차단해야 할 정도’인지 판단한다. 행정 부처의 무분별한 차단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실제 행정 부처의 차단 요청 건수 중 30%가 방심위 심의 과정에서 걸러지고 있다.

심의 과정 중에는 한국저작권보호원 심의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용수 방심위 법질서보호팀장의 얘기다. "불법 해적 사이트를 차단하는 데 8주가 걸리는데 방심위에서는 1주 정도 심의한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7주가 걸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성인물이나 도박물 등은 보는 즉시 불법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웹툰 해적 사이트는 저작권자에게 도용된 게 맞는지 확인을 거쳐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정보(게시물)의 저작권자에게 확인을 거치는 게 맞는데 수시로 게시물도 바뀌고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보(게시물)의 70% 정도가 확인되면 차단해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 홈페이지 운영 목적 등 다른 사안도 고려된다."

저작권법 개정안, '표현 자유 위축' 두고 의견 분분

웹툰 시장 점유율 1위의 네이버 웹툰 [사진 홈페이지]

웹툰 시장 점유율 1위의 네이버 웹툰 [사진 홈페이지]

웹툰 작가들이 이날 방심위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김정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말한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은 한국저작권보호원에 해적 사이트 차단 권한을 주는 내용이 골자다. 방심위 측은 이 개정안이 "행정 부처가 일방적으로 특정 사이트를 심의·차단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위축 등 논란이 일 수 있는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웹툰 업계 생각은 다르다. 한국웹툰산업협회 김순영 사무처장은 "웹툰 해적사이트 심의는 권리자 동의 없이 저작물을 도용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기계적 심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논란이 적다"고 말했다.

방심위 "대체 사이트 처리 기간, 3~4일로 줄이겠다"

웹툰 작가들의 항의에 이날 방심위는일부 보완책을 내놨다. ▶권리자가 권리관계를 입증해 신고하는 경우 ▶기존 불법 해적 사이트의 대체 사이트인 경우는 기존처럼 한국저작권보호원과 문체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고를 접수해 7일 이내 심의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는 관련 전담 인력을 약 2배 수준(현재 5명)으로 늘려 처리 기간을 3~4일까지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방심위 관계자는 “향후에도 심의 기간 단축 방안 마련을 위해 문체부, 한국저작권보호원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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