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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8000개 유선회로 들어간 아현지사…이런곳 전국에 56개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kt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 앞 공동구 화재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20181125

kt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 앞 공동구 화재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20181125

“이래서 ‘내란음모 사건’ 때 혜화전화국 운운했었나….”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KT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전화·인터넷부터 카드 결제까지 먹통이 되는 ‘통신대란’이 발생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이다. 2013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당시 KT 혜화지사가 주요 파괴 시설로 정해졌던 것을 빗댔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이번 사태로 통신 설비가 얼마나 중요하지 대다수 국민이 알게 됐다.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난 화재는 왜 어떻게 이런 큰 혼란을 일으켰을까.
 2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큰 이유는 KT아현지사의 역할 때문이다. KT 통신망에선 혜화지사와 구로지사가 가장 중요한 거점이다. 우리 몸으로 치자면 동맥에 해당하는 역할을 한다. 아현지사는 혜화·구로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서대문구·중구·마포구 일대로 연결되는 16만8000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220세트가 설치된 ‘집중 국사’다. KT 관계자는 “혜화와 구로라는 메인 지사와 모세혈관처럼 개별 지역으로 퍼져나간 기지국 통신망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며 “거쳐가는 회선이 많은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한 곳이지만,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대비는 충분치 않았다. 통신망이 훼손됐더라도 다른 망을 거쳐 우회할 수 있게 2중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미비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현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KT에만 전국에 56개가 있는데, 이중 29곳만 백업이 돼 있어 나머지 지사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통신지사들은 국가가 지정한 등급에 따라 총 a,b,c,d 4개 등급으로 나뉘고 이중 a,b,c 등급까지는 백업을 한다. d 등급은 의무적으로 백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현지사는 d등급이었다.
 특히 법인망 같은 경우 법인 측에서 비용 문제를 이유로 2중화를 거부하는 경우도 일부 있어 피해를 키웠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2중화를 권하지만, 법인 측에서 비용 부담을 꺼리면 2중화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현지사를 거쳐 가는 통신망을 이용한 회사 중에도 그런 법인들이 일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은행은 지난 24일 오후, KT아현지사 화재로 일부 인터넷 뱅킹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한 인터넷은행은 지난 24일 오후, KT아현지사 화재로 일부 인터넷 뱅킹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허술한 소방법 규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소방법에 따르면 지하구의 길이가 500m 이상이고 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지하구’에는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방지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반면 KT의 통신지하구는 수도·전기·가스 없이 통신회로와 케이블만 설치된 단일지하구였다. 길이도 150m로 연소방지시설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통신 관로의 경우 합선에 따른 누전 우려, 겨울에 얼어 터지는 문제 등으로 인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도 피해를 키운 이유다.

 화재 발생 당시 KT 아현지사 상주 직원이 2명밖에 없어 즉각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도 피해를 키웠다. 소화기는 소량만 비치돼 있었다. 송영호 대전과학기술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만일 KT가 화재 장소에 자동화재 탐지설비를 센서 수신 감지가 좋은 불꽃 감지기 등으로 설치했다면 화재를 초기에 진압해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순경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은 “현행법상 규모에 따라 소방 설비를 설치하도록 하는데, 시설 규모와 함께 설비 중요성 부분도 고려해서 하도록 규정이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창규 KT 회장은 25일 사과하며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의 모든 통신시설에 대해 안전점검을 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오성목 KT 네트워크부문장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트래픽을 다른 이동통신사 망에 넘기는 등 타사 망을 공유하는 방법 등을 정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KT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인터넷 회선은 97%, 무선은 63% 복구됐다고 밝혔다. 박민제·김다영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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