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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비문 죽이기’ 논란, 덩달아 커지는 리더십 비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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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당이 요청한다고 다 국정조사 해 주면 우리 당 대권 주자는커녕 우리 당 국회의원도 남을 사람이 없을 거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공공부문 채용 비리 국정조사가 사실상 ‘박원순 청문회’가 될 거란 우려를 대변한 것이다. 탄핵 때 원내대표를 지낸 우 의원은 민주당 ‘범주류’로 평소 당의 단합을 중시해왔다. 그런데도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국조 합의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2.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에 대해 당내 반발이 크지 않다. 의원총회를 했는데 발언하는 사람도 없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간담회에 앞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도 “자세히 들어보니, (국정조사를 해도) 문제 될 게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두 장면 모두 지난 23일 벌어졌다. 한쪽에선 불만이 있다고, 또 다른 한쪽에선 불만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우상호 의원은 과거 지도부였고 이 대표는 현재 지도부라는 점 정도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 걸까.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과 이시종 충북지사,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9차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왼쪽부터)과 이시종 충북지사,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9차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자기 정치를 심하게 하다가 낭패 본 (이재명) 경기 지사를 잘 돌아보라. 이렇게 하면 다음 차례는 박 시장이 될 것이다.”

비록 같은 당은 아니지만,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한 말에 그 힌트가 담겨 있다. 그는 박 시장이 지난 17일 한국노총 집회에 참석해 “노조 활동하는 것도 편한, 좋은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 훈수를 뒀다. 때마침 여권은 탄력 근로제 확대를 놓고 노동계와 각을 세우는 중이다.

이재명 지사나 박 시장 모두 차기로 거론되는 ‘비문(非文) 잠룡’이다. 공교롭게도 이른바 ‘혜경궁 김씨’ 논란으로 이 지사가 경찰로부터 치도곤을 당하는 와중에 박 시장도 국회 국정조사의 칼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지난 3월 ‘미투(#MeToo)’ 파동으로 중도 사퇴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까지 포함하면 비문 진영에서 유력한 차세대 주자로 꼽히던 이들 모두가 치명상을 입는 모양새다.

지난달 12일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왼쪽 두번째)와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등이 경남선수단의 입장을 환영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2일 전북 익산시 익산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왼쪽 두번째)와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등이 경남선수단의 입장을 환영하고 있다. [뉴스1]

특히, 당내에 국조 합의에 반발하는 이들이 많은 건 이 지사와 달리 박 시장이 수사를 받는 처지도 아니라서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이 최근 ‘여의도ㆍ용산 개발 마스터 플랜’을 발표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엇박자를 내거나, 탄력 근로제 확대 방안을 저지하려는 노동계 집회에서 연대 발언을 하는 등 독자 행보를 강화한 것과 관련돼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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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비문 주자가 주춤하는 사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등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당내에선 “문 대통령과 가까운 친문잠룡들에게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동시에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친문 색채가 옅은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 대표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친문 패권주의가 발호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나 홍영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당내반발이 작고, 국조를 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무마에 나섰지만, 되려 친문으로 분류되는 강병원 원내대변인도 “당의 유력한 정치적 자산인 박 시장을 (야당이)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 당내에 강하게 있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유심히 듣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유심히 듣고 있다. [뉴스1]

이 지사에 대해서도 당 지도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수도권의 중진의원은 “진실 여부보다 당이 이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때”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23일 기자간담회를 하기 직전까지도 이 대표 주변에서는 이 지사 관련한 언급을 ‘해야 한다’ ‘할 필요가 없다’ 등의 의견이 엇갈렸다”고 귀띔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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