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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눈 맞추기도 겁나” 잔혹 마약왕 재판에 세계가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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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한 증인은 “그가 자신과 악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다른 갱단 ‘넘버 2’를 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두 명의 배심원은 “이번 판결에 연루되는 게 두렵다”면서 재판 직전 사의를 밝혔습니다. 이들이 벌벌 떠는 공포의 존재는, 현재 미국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재판 받고 있는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입니다. ‘키 작은’이라는 뜻의 별명 ‘엘 차포(El Chapo)’로 더 잘 알려진 구스만은 마약 밀매, 돈세탁, 살인교사, 불법 무기소지 등 17건의 혐의로 기소돼 뉴욕 맨해튼의 연방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첫 번째 탈옥 이후 2014년 2월 다시 체포됐을 때의 '엘 차포' 구스만. [AP=연합뉴스]

첫 번째 탈옥 이후 2014년 2월 다시 체포됐을 때의 '엘 차포' 구스만. [AP=연합뉴스]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냉혹하고 위험하며 공포스러운 자”(미국 연방정부), 2009년부터 3년 연속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파워맨 100인 등극, 추정 자산 150억 달러(약 15조7700억원)에 이르는 거부(巨富)…. 무엇보다 두 차례나 ‘세기의 탈옥’에 성공했고, 한번 찍히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 악랄한 보복 수법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3∼4개월 간 이어질 재판에서 배심원단·판사·증인은 물론 일반 시민의 안전까지 확보하는 게 요즘 뉴욕 경찰의 최대 고민이랍니다. 엘 차포가 법정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탈옥 시도를 하거나 반대로 암살 당할 위협도 배제할 수 없고요. 그래서 그가 호송되는 날엔 3.2km 동선을 따라 주변 빌딩 옥상에 경찰 저격병들이 배치되고 하늘에선 헬기가 경계 비행을 한다고 하네요.

#빨래통에 숨어, 땅굴 파서 연속 탈옥

‘엘 차포’ 구스만이 체포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1989년부터 시날로아 카르텔(멕시코 서북부 시날로아 주를 근거지로 한 마약 조직)을 이끌어온 구스만은 93년 과테말라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처음 붙잡힙니다. 20년형을 받고 멕시코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2001년 빨래통 속에 숨어 탈옥했습니다. 수감 중엔 간수를 매수해서 휴대전화, 전자레인지, 술은 물론이고 매춘부와 비아그라까지 공수시켜 호화 독방 생활을 했다지요.

뉴욕에서 진행 중인 '엘 차포' 구스만의 재판 도중 증거물로 제시된 다이아몬드 권총. 엘 차포가 평소 소지했다는 이 권총은 부속품이 금으로 장식됐고 손잡이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시가 약 3억2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AP=연합뉴스]

뉴욕에서 진행 중인 '엘 차포' 구스만의 재판 도중 증거물로 제시된 다이아몬드 권총. 엘 차포가 평소 소지했다는 이 권총은 부속품이 금으로 장식됐고 손잡이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시가 약 3억2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AP=연합뉴스]

다시 악명을 떨치며 어둠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중 2014년 2월 다시 체포됩니다. 하지만 불과 1년 6개월 만인 2015년 7월 또 다시 탈옥합니다. 이번엔 감옥에서 1.5km 떨어진 건물로부터 자신의 독방 샤워실 바닥까지 땅굴을 파게 해서 빠져나갔습니다. 구스만은 이를 위해 부하들을 독일에 보내 3개월간 땅굴 파는 기술을 배우게 했다네요. 그리고 자신은 교도관을 매수해 독방에서 GPS를 작동시켜 땅굴 파는 과정을 감독했다고 합니다.

구스만은 두 번째 탈옥 6개월 만인 2016년 1월 시날로아 주의 한 가옥에 숨어 있다가 멕시코 특수부대와 교전 끝에 검거됐습니다. 신출귀몰한 그의 행방을 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단서는 2015년 10월 은밀하게 진행된 영화배우 숀 펜과 구스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구스만이 숀 펜을 만난 건 자신의 전기(傳記)영화 제작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영화화되길 바랐던 구스만은 자신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멕시코 여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를 접촉했습니다. 카스티요가 숀 펜을 연결해준 덕에 6개월째 도주 중이던 구스만은 두랑고의 산악 지역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 만남은 멕시코 수사당국에 꼬리가 밟혔고 이로부터 3개월 만에 구스만은 생포됐습니다.

과연 숀 펜과 구스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인터뷰를 진행한 숀 펜은 “엘 차포는 미국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정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며 그가 영화화 계획에 들떠있는 듯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구스만은 또 ‘세계적으로 높은 수위에 이른 마약 중독에 책임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그건 잘못된 말이다. 내가 있지도 않았을 때부터 이미 높았다. 마약 중독은 어떻게 해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마약 거래 때문이란 말은 거짓말이다”라고 답했답니다.

이런 내용의 인터뷰 전문은 구스만이 체포된 다음날인 2016년 1월 9일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을 영화배우 숀 펜이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 구스만이 2016년 1월 8일 체포된 다음날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연합뉴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을 영화배우 숀 펜이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 구스만이 2016년 1월 8일 체포된 다음날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연합뉴스]

#15세 때부터 마약팔이 #알 카포네 이은 ‘공공의 적 1호’

그런데 왜 멕시코 마약상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까요? 구스만은 미 연방정부를 비롯해 인터폴까지 수배령을 내린 ‘세기의 탈주범’이었습니다. 그가 워낙 탈옥에 능하니까 멕시코가 미국 측에 신병을 인도하는 방식으로 사법 처리를 넘긴 겁니다. 게다가 미국은 구스만 조직의 최대 고객이라 ‘지분’도 있습니다.

구스만은 2014년 체포 때까지 어느 밀매상보다 미국에 많은 마약을 수출한 걸로 추정됩니다. 코카인만 500t 분량이라는데요. 여느 마약조직처럼 주요 생산지인 콜롬비아와 최대 수요국인 미국을 연결하는 식이었습니다. 2000달러를 주고 산 코카인 1㎏이 멕시코로 건너오면 1만 달러가 되고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 3만~10만 달러로 가격이 뛴다고 합니다. 구스만은 육로가 막히면 조종사를 고용해 하늘 길을 뚫었고, 지질학자·건축가를 동원해 터널을 뚫었습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습니다.

미국 시카고 범죄위원회는 그를 가리켜 ‘공공의 적 1호’로 불렀습니다. 이런 별칭을 받은 이는 1930년대 악명 높았던 갱단 두목 알 카포네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합니다. 구스만이 이끈 시날로아 카르텔은 LA·시카고 등 미 전역은 물론 유럽·호주까지 뻗쳤습니다.

2017년 1월 멕시코 당국에 의해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이 뉴욕 공항에 내려 이동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1월 멕시코 당국에 의해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마약왕 '엘 차포' 구스만이 뉴욕 공항에 내려 이동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구스만은 1954년(혹은 1957년) 멕시코 시날로아주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부터 생계를 위해 마리화나·양귀비를 재배하고 팔다가 삼촌을 통해 마약 조직에 입문합니다. 타고난 잔인함과 냉혹함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멕시코 서부 일대를 주름잡는 ‘시날로아 카르텔’의 보스로 성장했습니다.

#미국행 캐러밴이 서쪽 길을 택한 까닭  

그런데 구스만이 요즘 외신에 자주 오르내리는 미국-멕시코 접경지역 캐러밴(대규모 이민행렬) 사태와 관련되는 것 아시나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캐러밴을 “침략자”라고 부르면서 수천명의 병력을 배치해 국경 경계를 강화하고 있지요. 사실 이들은 주로 온두라스·과테말라 등에서 범죄와 빈곤을 못 이겨 수천 리 행군을 마다 않고 미국으로 향하는 일종의 ‘난민’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도달하는 접경도시는 주로 멕시코 서부 해안의 티후아나입니다. 지도상 지름길만 보면 좀 더 동쪽의 리오 그란데 계곡을 이용할 법도 한데 말이죠. 최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이는 캐러밴이 호랑이 대신 여우를 택하는 식의 고육지책이라고 합니다. 멕시코 서쪽은 엘 차포의 시날로아 카르텔이, 동쪽은 제타스 카르텔이 지배하는데 “차라리 엘 차포가 낫다”는 거죠.

시날로아와 치열하게 세력 싸움을 벌여온 제타스는 마약 거래에서 밀리자 대체 돈벌이 수단으로 유괴·암살·강탈 등을 벌였습니다. 관할구역을 통과하는 이들이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납치·고문·살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인권 당국에 따르면 2007년 이래 1300개 이상의 집단 무덤이 해당 지역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헤아릴 없는 숫자의 중남미 이민자들이 걸프해안에서 사라졌습니다. 캐러밴이 이런 죽음의 경로를 회피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미국 이민을 꿈꾸며 멕시코를 가로질러 북쪽 접경지대로 향하고 있는 캐러밴. 온두라스·과테말라 등에서 범죄와 빈곤을 못 이겨 탈출하는 일종의 ‘난민’으로 범죄조직으로부터 약탈을 피하기 위해 수천명이 함께 움직인다. [AFP=연합뉴스]

미국 이민을 꿈꾸며 멕시코를 가로질러 북쪽 접경지대로 향하고 있는 캐러밴. 온두라스·과테말라 등에서 범죄와 빈곤을 못 이겨 탈출하는 일종의 ‘난민’으로 범죄조직으로부터 약탈을 피하기 위해 수천명이 함께 움직인다. [AFP=연합뉴스]

물론 시날로아도 잔악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집단이지만 적어도 이들은 돈 없는 이민자 행렬을 ‘삥’ 뜯을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부패 경찰이나 정부 관리보다 지역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돼 멕시코 서부에선 그를 ‘의적’으로 추종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옛말, 천하를 호령하던 엘 차포가 잡히자 이젠 잡다한 범죄조직들이 경쟁적으로 세력을 확장 중이랍니다. 이 때문에 살인·범죄율이 더 높아졌다고도 하고요. 이런 마약조직 소탕은 다음달 취임하는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당선인의 최대과제입니다. 과연 니에토 대통령은 제2, 제3의 엘 차포를 근절할 수 있을까요.

“불쌍한 멕시코, 신에게선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다.”  

- 프로피리오 디아스 전 멕시코 대통령, 멕시코가 마약상의 근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운명을 개탄하며.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후후월드

세계를 떨게 한 마약왕 엘 차포

두번 탈옥한 세기의 마약범, 구스만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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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멕시코 마약왕 구스만의 별명 '엘 차포'가 뜻하는 것은?

정답 : 4번 키 작은( 호아킨 구스만은 168cm로 '키 작은'이라는 뜻의 '엘 차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

Q2 : 도주 중이던 엘 차포 구스만을 은밀히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한 배우는?

정답 : 1번 숀 펜( 구스만은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려는 욕심으로 숀 펜을 만나 인터뷰했다가 꼬리가 밟혀 체포됐습니다. )

Q3 : 다음 중 엘 차포가 탈옥할 때 활용한 수단이 아닌 것은?

정답 : 3번 드론( 엘 차포는 수감 동안 교도관을 매수해 두번이나 세기의 탈옥을 했지만 드론 사용 기록은 없습니다. )

Q4 : 멕시코 접경도시를 통해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민 행렬을 이르는 말은?

정답 : 1번 캐러밴( 범죄와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진입하려는 중미 국가 이주민 행렬을 '캐러밴'이라고 부릅니다. )

문제 중 문제 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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