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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세계 첫 개발…공대 하나가 이스라엘 먹여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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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70년 전인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나라를 세우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보다 36년 앞선 1912년 유대인 이주자들이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교육을 위해 설립한 테크니온 공대(The 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가 그간 이뤄온 성과도 기적 그 자체입니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디지털 시리즈 #건국 70년 만에 1인당 GDP 4만2000달러 이스라엘의 비밀 #②[기술과 창업이 돈] #노벨상 수상자도 스타트업 강의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 20년간 #ICT·생명과학 1602개 창업 #800개 가동, 300개는 팔려 #기업 팔고 얻은 수입 31조원 #창업이 일군 일자리 10만 개 #재학생, 매년 12~15개 창업 #6년간 3400억원 투자 받아 #기술개발 400억원 수입 올려 #창업 DNA가 대학 문화 핵심

우리가 흔히 쓰는 것 중에서 이스라엘이 최초로 만든 것으로 방울 토마토와 함께 USB 플래시 드라이브가 꼽힌다. USB 메모리는 1999년 4월 이스라엘 벤처 기업인 M-시스템스가 특허 틍록을 했다. 1989년 이 회사를 설립하고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개발한 돕 모란은 테크니온 공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할 당시 창업을 결심했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우리가 흔히 쓰는 것 중에서 이스라엘이 최초로 만든 것으로 방울 토마토와 함께 USB 플래시 드라이브가 꼽힌다. USB 메모리는 1999년 4월 이스라엘 벤처 기업인 M-시스템스가 특허 틍록을 했다. 1989년 이 회사를 설립하고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개발한 돕 모란은 테크니온 공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할 당시 창업을 결심했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경제성장 엔진 맡은 테크니온 공대 

이스라엘 북부 항구도시 하이파의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은 테크니온 공대. 이 대학의 질 라이너 대외협력국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너 국장은 “테크니온 공대는 여러 대학 평가에서 '이스라엘은 물론 중동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받아온 자부심도 있지만, 그보다 이스라엘의 ‘경제성장 엔진’ 역할을 실질적으로 맡고 있다는 걸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성과이기에 한 대학이 가히 나라 경제성장의 엔진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일까. 테크니온 공대는 공학·자연과학·의학·농학 등 18개 학과에서 556명의 교수가 1만4538명의 학부와 대학원생을 가르치는, 그리 크지도 않은 대학이다. 다만 60개나 되는 연구 센터를 가동한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정도였다. 그런데 라이너 국장이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고는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창업한 필캠에 개발한 캡슐 내시경. 통상 복용하는 알약 크기이기 때문에 고통이나 불편 없이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기술이면서 정보통신 기술과 의학 기술의 대표적인 퓨전 또는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사진 필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창업한 필캠에 개발한 캡슐 내시경. 통상 복용하는 알약 크기이기 때문에 고통이나 불편 없이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기술이면서 정보통신 기술과 의학 기술의 대표적인 퓨전 또는 하이브리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사진 필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개발한 캡 슐 내시경의 구조. [사진 필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출신이 개발한 캡 슐 내시경의 구조. [사진 필캠]

나스닥 상장 이스라엘 기업 97개로 세계 3위

가장 먼저 미국의 첨단 벤처 중심의 주식 거래시장인 나스닥의 자료를 살펴봤다. 나스닥은 마이크로소프트·애플·아마존 등 세계적인 기술기업이 상장한 주식시장으로 요건만 맞으면 외국 기업도 얼마든지 상장할 수 있다. 2018년 11월 23일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3470개 업체 중 이스라엘 기업은 모두 97개로 미국(2919개)과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도서관 입구에 전시된 항공우주 기술 관련 과학예술 작품.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도서관 입구에 전시된 항공우주 기술 관련 과학예술 작품.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중국(165개) 다음의 세계 3위다. 첨단 기술 기업이 국제통화기금(IMF) 2018년 전망치로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4만2000달러인 이스라엘 경제의 견인차임을 알 수 있다.

테크니온 출신, 나스닥 이스라엘 기업 핵심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숫자는 영국(81개)·프랑스(13개)·독일(10개)을 비롯한 서유럽 경제 대국보다 많다. 주목할 점은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이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의 3분의 2에서 창업자·공동창업자·최고경영자(CEO)·최고기술책임자(CTO)를 비롯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라이너 국장은 “나스닥 자료는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들이 기술 중심의 창업에 몰두해왔음을 잘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들은 혁신의 DNA를 이식받아 대학 문을 나선다’라는 말이 있다”며 “공무원이나 사무직보다 기술 개발과 창업을 통한 성취를 더욱 선호하는 혁신 문화가 이들을 지배한다”라고 소개했다. 가장 큰 배경은 이 대학을 지배하는 열정적인 창업 문화다. 수많은 선배와 교수들이 기술 개발과 스타트업을 성공한 테크니온 공대에 다니다 보면 정부나 기업에 취직해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일은 창업에 비하면 따분한 일이라고 여기게 되기 쉽다. 그래서 전공인 과학기술 공부에 더욱 몰두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해 남들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창의적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r기술 개발과 창업 DNA를 설명하는 개념도. 재학 중 다양한 분야에 대한 흥미,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 대한 영감, 과학기술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심도있는 학습이 스타트업 창업과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r기술 개발과 창업 DNA를 설명하는 개념도. 재학 중 다양한 분야에 대한 흥미,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에 대한 영감, 과학기술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심도있는 학습이 스타트업 창업과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20년간 1602개 기업 창업해 31조 이상 벌어 

졸업한 선배들의 창업 열기와 성공담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대학에 다니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테크니온 공대 자료에 따르면 이 대학 졸업생이 1995~2014년 20년 동안 창업한 기업은 1602개에 이른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53%, 생명과학 분야가 2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800개 이상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300개 이상은 대기업이나 해외 기업에 팔렸는데. 기업을 넘기고 받은 대가가 260억 달러에 이른다. 한 대학의 졸업생이 창업을 통해 20년간 31조7525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를 부유하게 한 셈이다.

이스라엘 북부 항구도시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 공대. 캠퍼스는 공원처럼, 도서관 입구는 갤러리처럼 꾸민 것이 인상적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북부 항구도시 하이파에 있는 테크니온 공대. 캠퍼스는 공원처럼, 도서관 입구는 갤러리처럼 꾸민 것이 인상적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삼킨 캡슐에서 내시경 카메라가 작동

대표적인 기업을 살펴보면 입이 더욱 벌어진다.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한 아질젝트(Azilect), 척추환자를 위한 보조 로봇 기술을 개발한 마조르(Mazor), 수술이나 절개 없는 진단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는 인사이테크(Insightec), 새로운 메모리 스틱을 개발한 디스크온키(Disk-on-key), 캡슐만한 카메라를 삼켜 대장경 검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개척한 필그램(PillCam), 마비 환자를 서거나 걷게 해주는 로봇기술을 개발 중인 리워크(Rewalk), 뇌종양 치료법을 개발 중인 노보큐어(Novocure), 생체 동작을 감지해 기기를 작동시키는 법을 개발 중인 인비전 바이오메트릭스(Invision Biometrics),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고안한 플러스 500(Plus 500), 웹 기반 지불 서비스를 개발하는 구스토(Gusto) 등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한결같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기업이다. 상상력을 기술로 현실화해 비즈니스로 연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가 연구개발을 제휴하고 있는 글로벌 기술 업체의 로고.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테크니온 연구개발의 지향점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가 연구개발을 제휴하고 있는 글로벌 기술 업체의 로고.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테크니온 연구개발의 지향점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창업 기업에서 일자리 10만 개 만들어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이 창업을 통해 만든 일자리도 10만 개를 넘는다. 이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프로그램’을 걍의하는 다나 셰퍼 박사는 “테크니온은 한 마디로 ‘창업 중심 대학’”이라고 소개했다.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들이 창업을 통해 이스라엘 경제를 이끌어 1인당 GDP 4만 2000달러의 부유한 나라를 일구는 원동력이 돼온 셈이다. 대학 하나가 기술과 창업으로 국민을 먹여 살려왔다고나 할까.

재학생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만 3400억원 

다나 박사는 “심지어 테크니온 공대에선 재학생들의 창업 열기도 뜨겁다”라며 “현재도 매년 12~15개 기업을 창업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자연과학·공학·의학·농학 중 어떤 것을 전공하든지 시장이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며 "학교는 창업에 적성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과 스타트업 관리법을 가르치면서 미래를 지원한다"라고 소개했다.
이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기술이나 사업모델을 보유한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의 신뢰도 두텁다. 재학생들이 받은 투자만도 2010~2015년에 모두 3억 달러에 이르렀다. 기술을 넘기거나 기술료를 받아 올린 수입도 3500만 달러에 이른다. 재학생 스타트업이 6년 동안 3400억원의 투자를 받고 4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다나 박사는 ”창업한 기업의 절반이 특허를 1개 이상의 보유하고 있다"라며 "기술은 테크니온 출신이 운용하는 스타트업 성공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 수상식장에 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단 셰흐트만 교수. 그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셰흐트만 교수는 1987년부터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며 기술 개발과 창업을 장려한 창업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문과 창업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2011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 수상식장에 선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단 셰흐트만 교수. 그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셰흐트만 교수는 1987년부터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며 기술 개발과 창업을 장려한 창업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문과 창업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노벨상 수상자도 창업 가르쳐 

심지어 노벨상을 받은 교수도 학생들을 상대로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다. 테크니온 공대는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모두 화학 분야로 2004년 수상자인 아브람 헤르슈코와 아론 시카노버, 2011년에 수상한 단 세흐트만과 아리에 와르셸이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근무하는 와르셸 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테크니온 공대 교수다. 1948년 건국 이래 이스라엘이 받은 12개의 노벨상 중 과학 분야는 모두 화학상인데 그 6개 가운데 4개를 이 대학에서 받았다. 그 외에는 평화상 3명, 경제학상 2명, 문학상 1명이 있다.
2011년 금속의 준결정 상태를 최초로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단 셰흐트만 교수는 테크니온 공대 출신으로 모교와 미국 아이오와 대학 재료공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그는 이미 30년 전에 스타트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선각자 중의 한 명이다. 1987년 이 대학에 ‘기술적 기업가 정신’이란 이름의 14주 과정을 개발해 학생들에게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창업’의 정신과 개념, 전략을 가르쳐왔다. 셰흐트만 교수는 노벨상을 받는 학자와 현장에서 기업을 일구는 스타트업 창업가의 길이 평행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현장에서 공동체와 국민이 잘살도록 뛰는 것이 과학기술자의 본분임을 잘 알려준다. 과학기술과 산업은 동전의 양면이며 이를 연결하는 산학협력은 국부의 원천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도서관 입구에 전시된 과학기술 관련 예술 작품. 연구 중 찍은 금속 결정, 생물 조직 확대 사진 등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도서관 입구에 전시된 과학기술 관련 예술 작품. 연구 중 찍은 금속 결정, 생물 조직 확대 사진 등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기자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려면 테크니온 공대를 보면 된다. 현지 출장에서 받은 강력한 인상이다.

하이파(이스라엘)=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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