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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서 서성이는 당신, 어느 레스토랑 찾는지 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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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 21면

 호텔리어J의 호텔에서 생긴 일 - 테이블 매너① 서양 레스토랑    

호텔 레스토랑에 슬리퍼를 신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객실용 슬리퍼는 더욱 그렇다. 샌들도 입장을 막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호텔 레스토랑에 슬리퍼를 신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객실용 슬리퍼는 더욱 그렇다. 샌들도 입장을 막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벌써 연말이다. 오랜 인연들과의 편한 자리든, 격식 차려야 하는 비즈니스 자리든 모임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특급호텔 연회팀과 식음팀도 부산해진다. 연말은 특급호텔 식음 부문의 최대 성수기다.

베테랑 호텔리어라면 호텔 로비에서 서성이는 고객이 어느 레스토랑을 찾는지 70% 이상 맞힐 수 있다. 가령 가족 고객은 뷔페 레스토랑이 아니면 중식당을 찾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을 동반한 가족은 정답 확률이 100%에 가깝다. 중식 레스토랑은 상견례 같은 어려운 자리에 맞는다. 음식이 낯설지 않고,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대화가 끊길 즈음 음식이 들어와 어색한 분위기를 깨 준다.

호텔 일식 레스토랑은 비즈니스 접대가 80% 이상이다. 특히 기업의 고위 임직원이 선호한다. 조용히 대화할 수 있고, 음식량도 부담이 되지 않아서다. 점잖은 중년 신사 대부분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일식당으로 들어간다.

서양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모임이 있으면, 누구든 살짝 긴장한다. 격식을 따져야 하는 자리가 대부분이어서겠지만, 머릿속으로 옷장부터 검색한다. 익숙하지 않은 서양식 테이블 매너도 부담이 된다. 서양 레스토랑에서 필요한 테이블 매너를 모았다. 어려운 자리에서 최소한 망신은 안 당하는, 나아가 ‘고급 레스토랑 좀 다녀본 사람’처럼 비칠 수 있는 호텔리어의 노하우라 할 수 있겠다.

 중식당은 상견례, 일식당은 비즈니스

원형 테이블에 앉으면 알아야 할 원칙이 있다. '좌빵우물'. 내 빵은 왼쪽에 있고, 내 물은 오른쪽에 있다. 잘못 집으면 큰 실례가 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원형 테이블에 앉으면 알아야 할 원칙이 있다. '좌빵우물'. 내 빵은 왼쪽에 있고, 내 물은 오른쪽에 있다. 잘못 집으면 큰 실례가 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국내 특급호텔의 서양 레스토랑이라면 크게 프렌치와 이탈리안이 있다. 요즘엔 캐주얼한 이탈리안이 대세지만, 격식이 엄격한 프렌치의 전통도 여전하다.

앞서 고객만 봐도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갈지 알 수 있다고 했는데,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는 고객에도 특징이 있다. 한껏 꾸민 커플이라면 주로 프렌치를 선택한다. 화려하다기보다는 격식을 갖춘 정장 차림이 많다. 프러포즈 같은 특별한 이벤트 장소로 제격이어서이다. 가격도 비싸지만, 음식과 서비스의 품격이 여느 레스토랑과 다르다. 프렌치 레스토랑은 정말 ‘한 번 큰맘 먹고’에 딱 맞는 장소다. 미리 요청하면 직원들이 깜짝 이벤트도 준비해준다.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은 최고의 요리를 최선의 서비스로 즐기는 과정을 이른다. 따라서 고객도 파인 다이닝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테이블에서도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

우선 복장. 남성의 경우 재킷을 챙기면 좋고, 반바지는 안 된다. 여성에게는 특별한 지침이 없다. 다만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은 실례다. 레스토랑에서 남성에게 재킷을 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여성 모두 신발은 제공하지 않는다. 슬리퍼? 절대 안 된다(조식 뷔페에 객실용 슬리퍼를 신고 입장하는 것도 실례다). 외국, 특히 유럽에는 여성의 샌들도 허용하지 않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의외로 많다.

서울 특급호텔 중에선 현재 서울신라호텔(콘티넨탈), 롯데호텔 서울(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테이블 34)가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경우 복장 제한이 엄격하지 않다. 그러나 복장을 갖추는 것은, 같은 시각 같이 식사를 하는 다른 고객에 대한 배려의 행동이다. 옷을 입을 때의 기본 매너 TPO(Time Place Occasion)는 결국 상식의 문제다. 미쉐린 2스타를 받았던 롯데호텔서울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남성 고객에게 식사 시간 동안 말끔한 정장을 제공한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일단 정지하자. 예약을 확인하고, 직원 안내에 따라 입장하자. 테이블에 도착하면 직원이 의자를 빼줄 때까지 기다리자. 직원이 맨 먼저 빼주는 의자가 상석이다. 모임의 주인공 또는 중요한 사람의 자리다. 내 앞의 의자를 빼줘도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면 양보해야 한다. 보통은 여성이 먼저 앉고 다음에 남성이 앉는다. 직원이 없을 때 남성이 여성을 위해 의자를 빼주는 건 당연한 행동이다.

편안한 모임이면 자리에 앉는 순서가 중요하지 않겠지만, 비즈니스 모임이면 사정이 다르다. 겨우 마련한 기회가 사소한 실수로 날아갈 수도 있다. 상석은 보통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자리이거나, 맨 안쪽이다. 룸이라면 문에 가까운 쪽이 말석이다.

의자에 앉은 여성이 하는 첫 번째 행동은 가방을 놓을 자리를 찾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가방을 내려놓는 작은 의자가 있다. 작은 의자가 없으면 정답은 여성의 등 뒤다. 의자 모서리에 걸어두는 건 서빙하는 직원이 불편할 수 있다.

 메뉴 맨 위 아래 음식이 대표 요리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한쪽(4시 20분 방향)에 모아두면 한 코스가 끝났다는 표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한쪽(4시 20분 방향)에 모아두면 한 코스가 끝났다는 표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이제 자리에 앉았다. 각자에게 사전과 같은 메뉴가 전달된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같은 뜻이어도 프렌치와 이탈리안은 표기가 다른 것이 많다. 수프가 나오는 첫 순서를 프렌치에서는 앙트레(entree)라고 하고 이탈리안에서는 프리미(primi)라고 한다.

메뉴에서 보통 맨 위나 맨 아래에 있는 음식이 대표 메뉴인 경우가 많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자신이 있거나,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메뉴다. 메뉴에 적힌 이름만으로 음식이 짐작되지 않으면, 음식의 재료와 조리 과정을 묻자. 주재료만 알아도 실패는 피할 수 있다. 송로버섯처럼 비싸거나 희귀한 재료를 고르면 적어도 ‘손해 봤다’는 기분은 안 든다.

주문할 때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큰 건, 역시 세트 메뉴다. 셰프가 제 전문 분야와 식재료 상황, 그리고 고객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한 메뉴이어서다. 호스트가 아닌데 비즈니스 자리에서 제일 비싼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시쳇말로 ‘갑질’에 해당한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중에는 원형 테이블도 많다. 사각형 테이블이면 의자 앞에 놓인 접시와 식기, 그리고 빵과 물이 누구 것인지 쉽게 구분이 되는데 여러 명이 둘러앉는 원형 테이블에서는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 ‘좌빵우물’은 기본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앉는 자리라면 차라리 외우자. 내 빵은 왼쪽에 있고, 내 물은 오른쪽에 있다. 다시 말해 오른쪽의 빵을 집거나 왼쪽 물잔에 손을 대는 행동은, 다른 사람의 설렁탕에 내 숟가락을 넣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다시 테이블을 보자. 냅킨 아래에 큰 접시가 놓여 있다. 쇼 플레이트(Show Plate) 또는 차저(Charger)라고 하는데, 이 접시에는 음식을 담는 게 아니다. 일종의 서비스 접시로 쇼 플레이트 위에 코스 요리의 접시가 올려진다. 빵도 안 된다. 보통 빵 접시가 따로 나오지만, 접시가 없으면 빵의 자리는 바구니다. 바구니에서 빵을 집어 먹을 만큼 뜯어낸 다음 나머지 빵은 바구니에 놓는 게 맞다.

쇼 플레이트 양쪽으로 포크와 나이프가 서너 개씩 나란히 놓여 있다. 파인 다이닝의 경우 식기·잔·포크·나이트 등 테이블 웨어가 17개나 놓여 있기도 하다. 어느 걸 먼저 집어야 할까. 정답은 바깥쪽부터. 코스가 진행될 때마다 바깥쪽의 포크와 나이프도 동반 퇴장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접시를 치우면서 같이 치운다.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한쪽(4시 20분 방향)에 모아두면 한 코스가 끝났다는 표시다.

요즘엔 잘 안 쓰는 표현이긴 한데, 레스토랑의 서빙 직원을 웨이터(Waiter)라고 불렀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웨이터는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 주문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정히 모르겠으면 질문을 하시라. 너무 까다롭게 굴지만 않으면 된다. 베테랑 웨이터라면 반갑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사실 저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파인 다이닝은 앞서 적었듯이 최고의 요리는 물론이고 최선의 서비스도 경험하는 일이다. (‘테이블 매너’ 다음 편은 ‘와인 주문 요령과 스시 바’)

호텔리어J talktohotelierJ@gmail.com
 특급호텔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호텔리어. 호텔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일화를 쏠쏠한 정보와 함께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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