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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돌로 탑을 쌓고 길을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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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 08면

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11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날씨가 훌쩍 추워졌습니다. 월동 준비는 잘하고들 계신지요. S매거진 마지막호를 맞아 그동안 연재를 통해 지면을 빛내준 필자 열두 분에게 ‘마지막’이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글들로 독자 여러분과 여운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S매거진 필자 12명이 쓰는 '마지막'에 대하여

1. 길

이름하여 모정탑(母情塔)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쌓은 데서 얻은
이름입니다.
무려 3000개가 넘습니다.
정선 노추산 북쪽 자락에서
차순금이란 여인이 홀로 쌓았습니다.
자그마치 26년간 돌 하나하나씩 쌓은 게
탑이 되고 길이 되었습니다.
돌탑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슬하 4남매 중 둘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에게 우환이 이어 겹쳤습니다.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의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겁니다.
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염원이었습니다.
자식을 위한 마음이
탑이 되고 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26년을 쌓다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 어머니가 놓은 돌탑 길은
우리의 마음으로 난 길이 되었습니다.

권혁재_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를 연재했다.

2. "이제 멋진 항해가 시작되겠군"

11월의 호수공원을 달린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아침 공기는 차갑다. 바람이 불어오자 갑자기 나뭇잎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대로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자신의 무덤으로 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나는 지금 노랗고 빨간, 보랏빛에 자주빛깔에 고동색을 띤 나뭇잎들이 이불처럼 깔려있는 묘지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 낙엽들은 나에게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가르쳐준다. 화려하게 대지를 물들였다가 미련 없이 떨어져 우아하게 바람에 날리다 사뿐히 땅 위로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기꺼이 새로운 세대의 자양분이 되어준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부신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 옆을 지나가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 『백치』의 주인공 미쉬낀 공작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라고 했다. 신이 선물한 붉은 노을을 바라보라고 했다. 풀잎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바라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그 눈을 바라보라고 했다.

마주보며 달려오는 사람은 이어폰을 꽂고 있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와 ‘가을 편지’를 흥얼거려본다. 그러다 문득 존 바에즈가 부르는 ‘삶에 감사하며(Gracias a la vida)’가 듣고 싶어진다.

오늘도 나는 삶이 보내준 초대장을 받고서 눈을 떴다. 가을이 겨울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장면은 기억해두어야 할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다. 모든 나뭇잎들은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가장 선명한 빛깔을 띤다. 가을의 빛깔이 그토록 찬란하면서도 처연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내 인생의 정점은 지나간 것 같다.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 뿌듯함보다는 내가 저지른 숱한 실수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쩔 것인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이제 다 끝나간다. 마지막은 늘 아쉽고 허전하다. 인생의 비밀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있다. 다 살아봐야 비로소 “내가 왜 살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폭발적인 스피드보다는 늦더라도 내가 목표한 지점까지 최선을 다해 완주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온몸에서 김이 솔솔 올라온다. 날이 추울수록 달리고 나면 더 상쾌해진다. 오늘 내가 달리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은 바람이 불어오듯 그렇게 또 지나갈 것이다. 소로는 눈을 감기 직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멋진 항해가 시작되겠군(Now comes good sailing).”

박정태_칼럼니스트.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를 연재했다.

3. 인연

내가 발레를 그만두고 처음 국립발레단과 촬영을 하면서
수석무용수 김지영, 이동훈을 찍은 사진이다.
처음 만날 때 우리는 국립발레단의 선후배였지만,
두 번째 인연은 사진가와 무용수로 만나게 된 것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동훈이는 국립발레단을 떠났다.
모스크바 콩쿨에 동반 출전했을 때
룸메이트로 동고동락하다
상을 받은 동훈이를 축하해준 기억이 아련하다.
주역무용수 명콤비로 활약했던 지영 누나와 동훈이의
파드되는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우리의 세 번째 인연은 또 언제, 어디로 이어지게 될지
모른다.
인연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린다.

박귀섭_포토그래퍼 BAKI. ‘Body Inspiration’을 연재했다.

4. 늙음과 소멸을 받아들이다 

대중가요 음반 중 가장 ‘11월스러운’ 것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않고 ‘양희은 1991’을 꼽겠다. ‘11월 그 저녁에’라는 아주 쓸쓸한 노래도 수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몇 년 전 아이유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가을 아침’ 같은 밝고 평안한 노래도 포함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음반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모든 것이 소멸되어가는 11월의 쓸쓸함이다.

이 음반 중 가장 유명한 노래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핵심은, 사랑이 아니라 늙어가는 쓸쓸함이다. 사랑한 사람과 헤어져서 쓸쓸한 게 아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열정적인 사랑이 가능하던 나이가 끝났다는 쓸쓸함 말이다. S매거진 마지막 호에 글을 쓰면서 이 음반이 떠오른 것도, 이런 인쇄매체 매거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양희은이 이 음반을 낼 때 나이가 마흔이었다. 시쳇말로 ‘빼박’ 중년이 되는 나이다. 그는 마흔에 젊음이 끝나버린 쓸쓸함으로 음반 전체를 꽉 채웠건만, 정작 40대 중반이 되며 부른 노래는 훨씬 분위기가 밝아진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었다. 다시 노년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에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당신만 있어 준다면’ 같은 지레 노년의 쓸쓸함을 노래했지만, 정작 60대 후반에는 후배 가수들과 작업하며 다시 차분하게 밝은 노래를 부른다. 늙음과 소멸을 받아들이니 가능한 일일 게다.
그래서 이 11월에 가장 좋은 노래는, 모든 아름다운 존재들도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생각하는 하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이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1994, 김현성 작사작곡)  

겨울이 왔으니 나무와 풀꽃들은 이제 죽음 같은 겨울을 맞을 것이다. 화려했건 소박했건 간에 그들 모두가 비바람과 땡볕의 여름과 모진 겨울을 수없이 견디며 여러 번 환생한 굳센 존재임을 생각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끝이 있다는 게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영미_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이영미의 7080 노래방’을 연재했다.

5. 마지막 인간 

요즘 아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고 있다. 하루는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맥베스를 다시 읽으며 깨달은 것은 맥베스가 ‘마지막 인간’이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다면 뭐 맥베스 이후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고 무슨 짐승이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우린 미치고 말 거야.”

다행히 『맥베스』는 남편도 읽었다. 아내가 한 대사는 맥베스 부인이 한 말이다. 물론 남편의 말 역시 거기서 일부 빌려온 거고.

“알겠다. 맥베스에게는 자식이 없었지. 던컨 왕이나 뱅쿠오와 달리. 자식이 없으니 맥베스는 마지막 인간이 된 거야. 만일 그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그래도 던컨 왕을 살해했을까? 뱅쿠오를 죽이고, 맥더프의 아내와 아들을 죽였을까?” “재미있네. 게으른 생각이긴 하지만. 생각의 단검을 좀더 따라가 봐요.” “생각의 단검이라…가만, 단검이 나오는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잠깐만….”

남편은 보르헤스의 단편 ‘끝’을 찾아 마지막 부분을 아내에게 읽어준다.

“그가 피범벅이 된 단도를 풀숲에 닦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마을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정의구현의 과제를 마친 그는 이제 아무도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해 그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 그 어느 곳도 갈 데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맥베스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야. 사람을 죽인 자가 서 있는 곳은 그곳이 끝이고 마지막이지. 저 자애로운 던컨 왕을 죽인 그 순간부터 맥베스는 끝에, 마지막에 섰어.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사람이며, 그 어느 안락한 침대 위에서도 결코 잠들 수 없는 사람이 된 거야. 마음속에 온통 전갈들이 우글거리니까.”

아내도 웃었다. “훨씬 좋은데요. 원래 내가 했던 생각보다 더 그럴듯한 것 같네. 내 생각은 이래요. 편지를 읽은 맥베스 부인이 맥베스를 맞으며 하는 말 기억하지? ‘당신의 편지가 나를 아무것도 모르던 현재에서 깨워 / 단번에 미래를 느끼게 했습니다.’

세 마녀의 예언을 듣고 맥베스는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잖아. 부인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현재에서 단번에 미래를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런데 미래를 아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모르는 것인데 그것을 알고 지금 이 순간 느낀다면 역설적으로 미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미래가 사라진 현재는 맥베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 삶에 의미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하잘것없는 것뿐이죠. 마지막 인간, 맥베스의 비극은 거기 있는 것 아닐까?”

며칠 후 퇴근한 남편을 맞으며 아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 당신의 얼굴이 나를 아무것도 모르던 현재에서 깨워 단번에 미래를 느끼게 하네.”

“무슨 말이야?”

“지금 당신 70대로 보여.”

아내의 말을 듣자 남편은 마치 자신이 ‘마지막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상득_듀오 이사. ‘남편은 모른다’ ‘인생은 즐거워’ ‘행복어사전’을 연재했다.

6. 끝은 없다. 다만 변화가 있을 뿐

인도계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64)의 작품은 1981년에 처음에 발표되었을 때는 ‘천 개의 이름들’이라는 제목이었다가, 2012년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전시를 할 때는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라는 오묘한 제목으로 바꿔서 출품되었다. 작품의 형태도 조금 달라졌다. 즉, 이 작품은 형태도 제목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인도의 삼주신(三主神) 중 하나인 유지의 신 비슈누는 ‘천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이 작품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존재다. 비슈누가 세상을 구원하러 올 때의 모습도 이 작품의 모습처럼 다양했다. 부처는 그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알려졌다.
유지의 신 비슈누가 세상을 유지하는 방법은 참으로 놀라웠다. 비슈누는 파괴와 생성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비슈누의 파괴는 새로운 생성의 기초를 만들기 위함이다. 아니쉬 카푸어의 이 작품은 나에게는 ‘이별’에 대한 면역체계를 만들어주었다. ‘천 개의 이름’은 나에게 속삭인다. ‘끝은 없다. 다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라고.

가볍고 흥미 위주의 글들이 난립하는 가운데도 여러 진지한 저자들의 묵직한 글들을 볼 수 있었던 S매거진과의 이별의 아쉬움은 너무 크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정치 현안과 돈 문제에 목울대를 세우며 서로에게 거친 말을 해대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예컨대 ‘갑질’에 대한 고발은 있지만, 평등에 대한 깊은 사고와 논의는 없다.

문화예술만이 좀 더 나은 공동체로의 발전을 위한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장이기에, 그동안 중앙SUNDAY S매거진이 11년간 느리지만 천천히 쌓아온 공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아쉬움 속에서 역시나 예술만이 나의 위로다. 1981년에는 ‘천 개의 이름’, 그러나 2012년에는 ‘붉은 색의 은밀한 부분을 반영하기’로 다시 찾아왔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의 색을 떠올린다. 눈부시게 선명한 순수한 안료의 색이다. 그래, 다시 찾아올 약속의 색은 그렇게 선명하고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진숙_미술평론가.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접속! 미술과 문학’을 연재했다.

7. 이상적인 마감 

마지막 마감만큼은 이상적으로 하고 싶었다. ‘이상적’인 마감이란 무엇인가. 주제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고, 일단 초안을 써놓고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다듬고 다듬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으로 꽉찬 글을 마감일인 월요일 에디터의 퇴근 시간 전까지 전송하는 것이다.

그러나 월요일 저녁 해는 이미 저물었는데 메모나 초고는커녕 내 머릿속은 ‘마지막이니만큼 눈물 핑 돌게 만들 멋진 문장을 써야 한다’는 거대한 목표로 짓눌려지기만 했다. 슬슬 그동안의 마감 버릇들이 하나씩 기어 나온다. 아직 하룻밤이 남았어. 밤을 새다보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일단 저녁밥부터 먹고 시작하자.

하필 마감 때면 직장 일이 바빠지고 잊었던 저녁 약속이 튀어나오고 그래서 못 가서 미안하다는 전화를 해야 한다. 평소엔 날 외면만 하는 고양이가 놀아달라고 키보드 위로 뛰어 오른다. 게다가 최근 시도한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무리였는지 잠이 쏟아진다. 아아 아직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이렇게 지친 상태로는 도저히 멋진 글이 나올리 없어. 몇 시간만 자고 머리를 맑게 한 뒤 다시 해보자. 유명한 작가들처럼 꿈속에서 영감을 얻을지 몰라. 그러나 불을 끄고 난 뒤 몇 번의 알람을 끄고 몇 번을 갈등 속에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했던가. 꿈속에서 영감은커녕 글자들이 둥둥 구름처럼 혹은 유령처럼 떠돌기만 한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좀비같은 얼굴로 어쨌든 일어난다. 벌써 동이 훤하게 텄다. 이제 마감 모드 2단계로 전환을 할 때다. 에디터가 출근해서 전화를 하면 ‘자꾸 독촉하시면 더 안 써져요. 제가 언제 빵꾸낸 적 있었나요’라고 뻔뻔함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밀 준비도 돼있다. “진짜 마지막까지는 마지막이 아니야.”

어느덧 진짜 마지막 마감시간이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키보드 위에서는 손가락이 작두 타는 무당처럼 춤을 춘다. 무슨 말이 두드려지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문장, 메모, 초고, 퇴고 그런 말은 내 사전엔 없다. 다.다.다.다. 어쨌든 칸이 채워졌다. 전송. 휴우….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엔돌핀이 온몸으로 스르륵 번져나가며 나른해진다. ‘마감 중독’. 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부른다.

어쨌든 이번에도 실패다. 나는 마지막까지 성공적인 마감을 하지 못했다. 에디터에게는 “그럼요. 제가 그래도 S매거진의 ‘창간 필자’인데요. 마지막 마무리 호에 한 줄 써야죠”라고 큰소리 칠 때만 해도 정말 감동적인 글을 쓰려고 했는데. 10년 넘게 이 지면에 글을 써오면서 늘 ‘다음 마감에는 잘…’하고 다짐을 해왔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제 그 다짐을 실천할 다음 마감이 없다. 진짜 마지막 마감에 남기고 싶었던 눈물 핑돌게 하는 문장은 이번에도 쓰지 못했다. 아쉬움에 혼자 진짜 눈물 한방울 흘릴 것 같다.

이윤정_대중문화칼럼니스트. ‘내맘대로 리스트’ ‘공감 대백과 사전’을 연재했다.

8. 별이었음을

가을의 끝자락
모두 다 가고 난 자리
비로소 네가 별이었음을 안다
밤이나 낮이나 빛나는 별
남은 나뭇잎 하나
마저 진다고 서러워하지 마라
거자필반 때가 되면 반드시 온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니

조용철_사진작가. ‘조용철의 마음 풍경’을 연재했다.

9. "시유 어게인"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마지막’을 만났다. 책의 끝쪽, 음악회의 피날레, 연극의 엔딩, 그리고 문화인의 죽음이다. 지난 4일 타계한 영화배우 신성일(1937~2018)은 스타다운 마무리로 많은 이의 마음을 적셨다. “돈, 권력, 사랑 중 역시 으뜸은 사랑”이라는 말은 그의 팔십 평생을 집약한 한마디였다. 100세 시대라지만 역시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인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세상과 이별하는 이들을 보면 유대인들의 건배사가 떠오른다. ‘페눌티모(Penultimo)’다. 히브리어로 ‘마지막 바로 전의 한 잔’이란 뜻이다. 마지막 잔은 죽을 때 마시는 것이라는 암시를 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보다 더 폐부를 찌른다.

최근에 만났던 인상적인 ‘마지막’은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대목이었다. 대한제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로맨스 시대극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분)는 “이건 나의 히스토리이자 러브 스토리”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미국 국적을 지니고 고국에 와 연인 고애신(김태리 분)을 포함한 의병들의 만주행을 돕다가 생을 마감하는 그는 근대 한국의 한 얼굴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런 한마디로 끝난다. “독립된 조국에서 시유 어게인(See you again)!”

한국에서 처음 시도됐던 일요일 신문 ‘중앙SUNDAY’는 함께 발행한 문화·스타일 잡지 S매거진으로 남다른 품격을 유지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집안을 문화의 향기로 채우던 이 독특한 신문잡지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문화 잔치를 벌여 이 나라를 문화 강산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기자와 필자, 편집자와 디자이너, 사진가와 미술가의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 한국 언론사에 큰 방점을 찍고 사라지는 S매거진에게 한 잔을 권한다. “페눌티모!” 그래도 아쉬워서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말로 인사를 보탠다. “시유 어게인!”

정재숙_문화재청장. 중앙SUNDAY S매거진 초대 문화에디터.

10.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The Show Must Go On) -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운명은 사람에게 인내할 용기를 주었다" (Fate gave to man the courage of endurance)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김재훈_일러스트레이터. ‘김재훈의 디자인 캐리커처’ ‘문화 캐리커처 VS’를 연재했다.

11. 회자정리 거자필반 

나는 신문 중독이다. 어릴 적 아침에 일어나보면 아버지께서는 진작에 일어나 마루에 앉아서 신문을 정독하고 계셨다. 그렇게 쉽게 일찍 일어나시는 것도 대단하고 매일 열심히 신문을 읽으시는 것도 뭔가 멋져 보였다. 그렇게 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신문 중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벌써 수십 년이다. 그 사이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내가 그 아버지의 모습으로 매일 아침에 신문을 펼쳐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신기할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일요일에 신문이 나오지 않았다. 신문 중독자는 할 수 없이 토요일 신문을 다시 주어 들어 읽곤 했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처음으로 짜낸 버진 올리브 오일이 가장 상큼하듯이 갓 만들어진 ‘신선한’ 신문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중앙SUNDAY가 발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창간 독자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중앙SUNDAY를 펼쳐들면 아침이 달콤했다. 거북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사건과 사고 소식의 잡탕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음미하면서 하나씩 곱씹어볼 수 있는 깊이 있는 기사들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발군은 S매거진이었다. 향긋한 문화 기사, 씹을수록 고소한 칼럼들은 마치 나를 위해 잘 차려진 한 상의 미식 코스요리 같았다. 덕분에 일요일을 맞는 즐거움이 더욱 컸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바로 그!! S매거진에 필자로 참여하게 되었고 내 인생에 음식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까지 내걸게 되었으니, 이런 감사한 인연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얼마 전부터 중앙SUNDAY가 토요일에 배달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럼 이제 일요일에는 뭘 읽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름 꾀를 낸 것은 본지는 토요일에 읽고 S매거진은 아껴두었다가 일요일에 읽는 것이다.

그런데 멋진 표지만 봐도 향기가 솔솔 풍기는 것이 마치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2교시 끝나면 바로 도시락 뚜껑을 열곤 하던 고등학교 때처럼 그냥 표지를 열어버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들려온 비보, S매거진이 폐간을 한단다.

“나는 어떡하라고….”

오랫동안 사귀어왔던 친구를 잃는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가 힘들어진다던데, 이제 또 어디서 이런 친구를 만날까 싶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부처님 말씀도 있으니,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릴 뿐이다. 그때가 되면 버선발로 나가 맞을 것이다.

주영욱_베스트레블 대표.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을 연재했다.

12. 저녁 노을이 새벽 노을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해 앞에 선 여인’(1818~1820)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해 앞에 선 여인’(1818~1820)

창간호가 새벽 노을이라면 마지막호는 저녁 노을이다. 새벽 노을이 아름다우냐 저녁 노을이 아름다우냐를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새벽보다 저녁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저녁 노을이 지면 그 뒤로는 빛을 못 보기 때문이다. 소멸하는 아름다움은 생성하는 아름다움보다 인간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뜨는 해보다 지는 해의 아름다움이다. 희극보다 비극이 인간에게 성숙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비극에는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인간을 정화하는 능력이다. 야심과 야망이 비극을 통해 정화된다.

2014년 가을부터 6개월여간 중앙SUNDAY S매거진에 매주 ‘지의 최전선’을 연재하지 않았더라면 주요한 세 가지를 못했을 것이다. 하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예언이다. 신종 병균인 이머징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면 제2의 에볼라 사태가 발발할 것이라는 지면에서의 예언이 6개월 뒤 현실화됐다.

두 번째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이 갖는 의미를 지적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사온 반건조 항공모함을 당시 중국은 처음엔 고철이라고 했다가 연습용이라고 말을 바꿨는데, 얼마 전 ‘중국의 해양굴기 박차’ 기사를 통해 지난 4월 남중국해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에 나선 사실이 확인됐다.

세 번째는 해양파와 대륙파의 대결 구도를 ‘지정학’의 관점에서 보고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의 충돌을 분석했는데, 최근의 미중 무역전쟁은 이같은 씨(Sea)파와 랜드(Land)파의 대결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매체가 사라지는 것은 전선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순수 예술부터 대중 예술, 패션 같은 라이프스타일까지 매호 모든 지면에서 그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앞으로의 모습을 예언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게 됐다.

S매거진은 마지막호까지 오는 동안 한 시대를 반영했고 어떤 매체도 못했던 목소리를 담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잡지 자체가 타임 캡슐이다. 나온 것은 없애지 못한다. 과월호는 그때 우리가 뭘 했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증언해줄 것이다. 10년 혹은 20년 뒤 어느 날 문득 타임 캡슐을 꺼내보는 날,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과 추억들을 기억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이어령_(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 ‘이어령의 知의 최전선’을 연재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사진작가 박귀섭(Baki)·사진작가 조용철·일러스트레이터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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