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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사회안전망도 없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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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5일 대한안마사협회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서 헌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성 기자

4일 서울 시흥동에 사는 40대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 결정이 죽음을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재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투신 자살을 계기로 시각장애인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5일 서울 시각장애인학교 학생과 학부모 200여 명은 헌재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마포대교 난간에서는 장애인들이 11일째 고공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직업 자유'냐 '생존권 보호'냐=헌재 결정은 비장애인 안마업소 주인들이 2003년 10월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에서 비롯됐다. 시각장애인이 안마사를 독점하는 제도는 1915년부터 90여 년간 이어 온 제도다. 그러나 90년대 말 스포츠.경락 마사지 업소가 등장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두 무자격 업소지만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이런 업소가 10만여 곳으로 늘어났다. 대한안마사협회는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6804명이지만 무자격 안마사는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헌법 소원도 이번이 두 번째다. 2003년 6월 헌재는 같은 사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장애인 보호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애인의 안마사 자격 독점은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장애인만 안마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의 반발은 거세다. 생존권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정모(35.서울 강북구 미아동)씨는"시각장애인에게 가르치는 직업기술은 안마.침술.지압이 대부분"이라며 "직업 선택의 가능성은 닫아둔 채 직업 선택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하면 점자가 떠오르지만 점자를 해독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2.4%에 불과하다.

헌재 결정이 경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법률 개정 때까지 법 효력이 유지되는 결정을 했다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란 아쉬움이다.

◆ 대안은=보건복지부는 이달 중순까지 의료법 개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 안마사협회 대표 2명이 참여한다. 장애인들은 "적어도 위헌 결정 이전의 법에 준하는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할당제다. 안마사 자격증의 일정 부분을 장애인에게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안마사의 30%를 장애인에게 할당하고 있다. 보건소에 의무적으로 안마사를 두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안마사를 건강관리사로 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또 시각장애인이 안마사 외의 다른 직종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각장애인은 안마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고용에서 소외돼 왔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장애인들에게 주는 혜택 가운데 일부를 시각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의 매점이나 자판기 등의 운영권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다가 최근 전체 장애인으로 확대했다. 나운환 대구대 교수는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는 장애인에게도 보장돼야 한다"며 "다양한 직업 교육과 취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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