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도 많고 말도 많은 곳 중 빠지면 서러운 곳이 '방송가'다. 하늘 찌를듯한 인기도 말 한마디로 고꾸라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중은 뜨겁고도 냉정하다. 가수 겸 예능인 김종민은 그런 측면에서 재평가받아도 좋을 인물이다. 데뷔 후 19년간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행동은 '바보' 같지만 한 발자국도 허튼 걸음이 없다.
김종민을 22일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라운드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7월 히스토리 채널의 웹예능 ‘뇌피셜’을 맡으며 첫 단독 MC로 데뷔했다. 출연자 1명과 김종민이 특정 주제를 놓고 무작정 토론하는 프로그램으로, 유튜브·네이버TV로 볼 수 있다. 같은 코요태 멤버 신지가 출연해 ‘술은 친구인가 원수인가’를 토론한 편은 조회 수 218만회가 넘었다. 단 10개 에피소드로 총 조회 수 1000만 뷰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지난 15일 시즌 2를 시작했다. 이날 하얀 와이셔츠에 남색 스웨터조끼, 체크무늬 바지에 검정구두를 신고 나온 그는 "뇌피셜 분들이 똑똑해 보이게 모든 걸 메이킹 해주셨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뇌피셜’로 첫 단독 MC를 맡게 됐는데
- 처음 저에게 제안이 왔을 때 왜 이분들이 왜 나를 선택했을까 생각했다(웃음). 저랑 전혀 맞지 않고 이상한 소리만 하다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또 첫 MC라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MC는 말을 조리 있게 해서 부드럽게 진행해야 하는데 실제 해보니 너무 딱딱한 거다. 그런데 편집된 걸 보고 ‘마술사구나’ 생각했다.
- 어떤 토론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
- 첫 회 가수 '제시'와 외계인이 있느냐를 두고 토론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네가 봤느냐'고 막무가내로 반대했는데 너무 없어 보였다(웃음). 말을 많이 쓰다 보니 오히려 지능이 퇴화한 것 같다. 있는 단어를 다 써서 남는 게 없는 것 같다(웃음). 그래도 진행하거나 상황을 정리하는 MC 능력은 조금 는 것 같다.
- 19년간 ‘무사고’다. 비결이 뭔가
- 사실 겁이 많고 아픈 것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괜히 잘못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스스로 조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말을 못하는데 왜 말실수를 하지 않느냐’고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아는 단어 자체가 많이 없어서 돌려쓰다 보니 말실수 할 수가 없다(웃음).
김종민은 현재 JTBC ‘인간지능:가장 완벽한 AI’, 히스토리 ‘뇌피셜’, TV조선 '연애의 맛', KBS ‘1박2일’ 등 방송에서 활약하며 ‘예능 치트키’로 불리고 있다. 백업 전문 안무팀 프렌즈에 입단해 1996년부터 엄정화, 구피 등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김종민은, 2000년 혼성그룹 ‘코요테’ 멤버로 공식 데뷔했다. 이후 큰 부침 없이 가수와 예능인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해왔다. 골든디스크 본상 5년 연속 수상, SBS 가요대전 본상 3년 연속 수상 등과 함께 2011년·2016년 KBS 연예대상 수상 등 그의 특이한 수상 이력은 김종민이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가수 출신으로 지상파 연예 대상을 두 번 받은 인물은 '아빠 어디가'(2011)와 '나는 가수다'(2013)를 통해 두 차례 MBC 연예대상을 공동수상한 윤민수와 김종민 둘 뿐이다.
- 왜 대중이 오랫동안 좋아해 주는 것 같나
-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웃음), 또 그렇게 싫지도 않은 무난함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연예인은 대중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연예인에게 대중은 조심스러워야 하는 존재다. 질타를 받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선생님’ 같다는 생각을 하고, 또 반대로 대중이 가렵거나 답답해하는 곳이 있을 때는 제가 대신 시원하게 해드려야 하는, 그런 밀당 관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 배우고 싶은 롤모델이 있나
- 유재석 형이다. 사적인 부분을 보면 존경스럽다. 집에 하는 거나 이 일에 대한 마인드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저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 외에 마인드나 호탕함은 호동 형을, 재밌는 건 수근 형이나 준호 형. 주변에 배우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다.
- 원래는 가수인데 모르는 이도 있다. 거부감은 없나
- 그런 거 전혀 없다. 너무 좋다(웃음). 갑자기 노래하면 ‘저 친구 노래 좀 하는데?’라며 조금만 잘해도 너무 좋아해 주셔서 오히려 더욱 좋다. '바보 취급이 나쁘지 않으냐'는 말씀도 하시는데 저는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 해주는 게 좋다. 기분 나쁠 수가 없다. 만약 그게 기분 나쁘다면 방송 자체를 안 해야 한다.
어벙해 보이지만 김종민은 나름 19년 경력의 베테랑 연예인이다. 지난 18일 그가 JTBC '인간지능'에서 걸그룹 아이즈원에게 해준 조언은 전성기와 슬럼프, 그리고 슬럼프 극복을 경험하지 못한 이는 할 수 없는 연륜이 묻어났다. 그는 "맨 처음 예능했을 때 힘들었냐"는 아이즈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힘든 정도가 아니었다. '가수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되지?'란 생각까지 했었다. (근데 예능도 척척 잘했지 않나) 잘한 것만 본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러분들 못하는 걸 잘 모른다. 열심히 하려고 하면 시청자분들은 나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줬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줄 수밖에 없다. 못한다고 사람들이 다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못해도 된다."
- 아이즈원에게 그런 조언을 해준 이유는
- 신인이다 보니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더라. 애교도 해야 되고 신인이니 잘해야 된다, 이겨내야 한다 생각하더라. 저도 그런 부분 때문에 혼난 적도 많고 슬럼프도 겪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중은 지금 잘해주시는 걸 더 기억해주시고, 지금 현재를 봐주시더라.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최선을 다하되못하는 거로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 같다.
-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말해달라
- 우선 저에게 코요태는 굉장히 특별한 존재다. 혼성그룹 중 유일하게 남은 골동품 같은 그룹이지 않나(웃음). 내년 데뷔 20주년이라 예전 노래를 리메이크해 스페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공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해보고 싶다. 창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창피한 걸 겪어야 잘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더라. 가수지만 노래 좀 못해도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거지 내가 못하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활동하고 싶다. 그래서 못 한다고 주눅 들어 있는 분들한테 ‘이런 사람도 있다’는, 희망이 되는 다른 길을 보여드리고 싶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