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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특별기획] “비대위는 미덥지 못하고···당엔 리더다운 리더 없어”

중앙일보

입력

당권·대권 후보 언급조차 꺼리지만 황교안 전 총리 ‘최다’ 언급 눈길  
올드보이 재부상은 별 도움 안 돼… 김정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존재

한국당 초선의원들에게 ‘보수야당’의 행로를 묻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열리니 자유한국당 비상 의원총회. 5시간여 진행된 의총은 아무런 소득 없이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인 채 냉랭하게 마무리됐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열리니 자유한국당 비상 의원총회. 5시간여 진행된 의총은 아무런 소득 없이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인 채 냉랭하게 마무리됐다.

34%. 2016년 9월 2주차 한국갤럽이 조사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11월 15일 발표한 11월 2주차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22.8%다.

자유한국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치러진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세 번을 연거푸 패배했다. 암흑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자 구원투수 ‘김병준(비상대책위원장)’을 투입했으나 국민들은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초선들은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혁신을 이끌었다. 민주당의 세대교체를 주도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과 보수정당 소장파였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자유한국당 112명 의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초선들(42명)이 집단 움직임을 보인 사례는 드물다. 한 정치전문가는 “탄핵 국면이나 당 위기 상황에서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실종됐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초선의원들이 9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협위원장직을 자진해서 내려놓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재창당 수준의 당 혁신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순례·김규환·성일종· 김성태·이은권·김성원· 문진국 의원. /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일부 초선의원들이 9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협위원장직을 자진해서 내려놓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재창당 수준의 당 혁신 촉구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순례·김규환·성일종· 김성태·이은권·김성원· 문진국 의원. /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야당 초선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올 9월, 초선 의원 14명은 당 혁신 차원에서 당협위원장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10월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태호 전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 등 보수 진영 잠룡을 초청해 이들의 생각을 듣는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혁신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월간중앙은 송년호를 맞아 당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42명 초선의 의견을 물었다. ▷한국당의 위기와 원인 ▷한국당과 보수의 미래 ▷정국 현안 등 크게 3개 화두에 관한 각자의 입장이다. 11월 1일부터 같은 달 15일까지 익명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초선 42명 가운데 21명의 답변을 취합했다. 50%의 응답률이었다. 절반의 답변이었지만 그 안에서 이들의 정치현실 인식을 비롯해 그간 표출하지 않았던 고뇌와 향후 전망을 읽을 수 있었다.

1. 한국당의 현재와 미래 | 위기의 가장 큰 원인 ‘리더 부재’(47.6%)

한국당 초선들은 현재 당이 처한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리더 부재’를 꼽았다. 응답한 21명 가운데 10명(47.6%)이 해당 보기를 선택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책’을 원인으로 지목한 의원은 8명(38.1%), ‘개혁 시기 실기’를 선택한 의원은 3명(14.3%)이다.

위기 속에 당을 이끌 구원투수 부재가 가장 높게 나왔지만 A 의원은 “전직 대통령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했고 수습과정에서 리더의 부재로 시기를 놓치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반면 복당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의견도 있다. B 의원은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사람들과 세력들이 반성은 커녕 다시 당에 돌아와 오히려 당권을 장악하고 개선장군처럼 활동하고 있는 부분이 보수 세력의 통합과 국민적 지지를 받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내의 뿌리 깊은 갈등을 드러낸 대목이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활동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잘한다’(9명, 42.8%)는 평가가 가장 많았지만 ‘판단 유보’ 8명, ‘잘못하고 있다’ 3명, ‘매우 잘못하고 있다’ 1명으로 부정적 답변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를 긍정 평가한 이유로는 ‘무난하게 당을 운영하고 있다’ ‘안정감 있고 이슈를 선점하며 아젠다도 제시하고 있다’ ‘소통능력’ ‘품위와 내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등을 꼽았다.

‘판단 유보’를 선택한 이유로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전원책 변호사를 데리고 오는 것에 실망했다. 현실정치를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당 같은 큰 조직을 다룰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의원도 있었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한 A 의원은 “비대위 체제 이후 보수 재건에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제도와 정책 중심의 혁신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드루킹과 방송장악, 서울교통공사 등 현 집권세력의 문제를 확인하고도 강력한 대야투쟁을 견인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내는 등 야당으로서의 존재감 상실했다”며 “십고초려해 모셔왔다는 조강 특위 위원을 스스로 경질시켜 당내 혁신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초선 의원들의 박한 평가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비대위를 뜨내기로 보는 것”이라며 “전당대회에서 뽑힌 권력이 판을 새로 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김병준식(式) 혁신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 선출된 권력이 아닌 김 위원장은 힘이 없다”고 분석했다.

2. 보수의 미래 | 당권·대권 주자로 황교안 ‘최다’ 언급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우파 대통합을 위한 1차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진태 의원, 심재철 의원, 조경태 의원, 유기준 의원. / 사진:연합뉴스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우파 대통합을 위한 1차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진태 의원, 심재철 의원, 조경태 의원, 유기준 의원. / 사진:연합뉴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2월 전당대회’ 개최를 쐐기 박으면서 당권 경쟁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김우석 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오는 12월 있을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할 후보가 정해지면 당권에 도전할 사람들이 명확하게 구분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새 원내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당권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차기 한국당 대표는 도전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40~50대 젊은 인물들이 출마해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롭게 선출된 젊은 수장에게는 당 개혁을 맡기고 이후 예상되는 정계 개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초선들에게 ‘누가 차기 한국당 대표로 적임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는 무응답이 13명(61%)으로 가장 많았다. 지지 인물이 없거나 아직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응답자 8명 가운데 당권 주자의 이름을 거론한 의원은 4명에 그쳤다. 이들이 지목한 인물은 황교안(3명) 전 총리와 김진태(1명) 의원이었다. 황 전 총리를 당 대표 후보로 뽑아야 한다는 이유로는 ‘사심 없이 국가 발전만 생각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서 최고 적임자’ ‘능력과 권력 의지’ 등을 꼽았다. 김 의원은 언급한 의원은 ‘대표로서의 경험과 경륜, 인지도와 대중성을 가졌고 오랜 공직과 의정활동을 통해 도덕성과 리더십을 이미 검증 받아왔다’며 ‘보수 가치 등 선명성 강조를 위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지하는 당 대표 후보의 이름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밝힌 의원은 4명. 이들은 ‘특정인을 거명하기 어렵다. 훌륭한 당 자원이 모두 차기 대표 경선에 참여하기 바란다’ ‘누가 출마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에서는 없다’ ‘언급되고 있지 않은 참신한 인물이 나서야 한다’ 등의 이유를 밝혔다.

월간중앙은 보수 진영을 이끌 차기 대권 주자 3인에 대한 입장을 직접적으로 물었다. 이에 대해 응답한 의원은 5명에 그쳤고 1인 혹은 2인을 거론한 의원도 있었다. 이 질문에서 황 전 총리는 4번,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2번, 원희룡 제주지사, 김세연 의원, 김진태 의원은 각각 1번씩 언급됐다. ‘황교안, 오세훈’을 거론한 의원은 ‘한국당의 가치, 철학과 가장 가깝고, 보수진영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분들로 최적’이라고 밝혔고, ‘황교안, 김진태, 오세훈’을 꼽은 의원은 ‘대선주자로서 경험과 경륜, 그리고 인지도와 대중성을 가졌고, 오랜 공직과 의정활동을 통해 도덕성과 리더십을 이미 검증받았다’고 평가했다.

‘유승민’을 선택한 한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 발언처럼 소신 있게 정치하는 인물이 대선 주자로 적합하다고 본다. 단 보수대통합이 전제 조건’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다음 총선 예상 의석수… 최소 100석

월간중앙은 “현재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들어가면서 외교안보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각종 경제 지표는 빨간불이 들어오는 등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에 난기류가 형성되는 상황이다.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2020년 21대 총선에서 한국당은 몇 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는가”라고 차기 총선 결과를 질문했다.

이 질문에 응답한 의원은 10명. 이 가운데 ‘100석 이상’을 예상하는 의원은 2명, ‘100석 이상~120석 이하’를 예상한 의원은 4명이었다. ‘140석’을 언급한 의원도 1명 있었다.

‘100석 이상’을 전망한 이유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남북, 북미관계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 ‘현재 당 기로 유지시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탈층을 흡수할 유인이 없다’ 등을 들었다.

‘100석 이상~120석 이하’을 예측한 이유로는 ‘대안 인물 혹은 세력 부재한 상황’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천을 한다면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등이 나왔다.

직접 숫자를 언급하지 않고 총선 승리를 예상한 의원은 3명이다. 이들은 ‘현재 모습으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보수대통합을 통해 문재인 정권과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형성된다면 능히 이길 것’ ‘당이 환골탈태한다면 충분히 승산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권이 현재 기조를 유지한다면 승리할 것’ 등의 의견을 나타냈다.

혁신이 전제된 의원들의 전망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작동을 원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실망감이 커진다고 한국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반사이익이 자유한국당에 돌아갈지는 미지수”이라고 분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현재 하락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국당으로 옮겨 갔나. 한국당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관망하는 중도 진영의 지지층만 확장이 된 상황이다. 이 역시 지지 철회가 아닌 지지 유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보수 통합을 하더라도 대안 세력으로서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100석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3. 올드보이 귀환이냐, 퇴장이냐 | “친박·비박, 나서지 말아야”

자유한국당의 분열은 2016년 12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공식화됐다.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와 결사 반대한 친박계는 이날을 기점으로 루비콘 강을 건넜다. 김무성 전 대표를 위시한 비박계 일부가 한국당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감정의 골은 깊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 계파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커지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11월 9일 “탄핵이 불가피했다. 지금까지 밝히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밝히자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말라. 적어도 덩칫값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느냐”라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이에 더해 11월 13일에는, 심재철·유기준·정우택·조경태·김진태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자유한국당 우파재건회의’라는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사퇴와 복당파 출마 자제론을 언급했다.

월간중앙은 초선의원들에게 ‘최근 친박계 중진들의 발언과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물었다. 결과는 ‘자중해야 한다’는 답변이 38%(8명)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가 23.8%(5명), ‘상관없다’와 ‘판단유보’가 각각 4명으로 19.1%를 얻었다. 친박계의 재부상에 대한 부정 응답(자중해야 한다,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이 61.8%(13명)로 집계됐으며 ‘환영한다’는 답변은 없었다.

부정적인 응답을 한 A 의원은 “현 시점에서 친박이라 자처했던 분들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인 제공자들”라고 꼬집었고 B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을 함께 운영했던 사람들로써는 당이 살아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상관없다’고 응답한 C 의원은 “개인의 정치적 활동으로 무관하다. 현 비대위 체제에 대한 적절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판단 유보’를 선택한 D 의원은 “대통합을 위한 것이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중립적으로 판단했다.

월간중앙은 당을 이끌었던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의 재등장 여부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그 결과, ‘지금처럼 2선에 있어야 한다’는 답변이 47.6%(10명), ‘필요하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가 43%(9명)로 나타났다. ‘다시 전면에 나서야 한다’와 ‘판단 유보’는 각각 1명(4.7%)으로 나왔다.

‘지금처럼 2선에 있어야 한다’고 답변한 A 의원은 “당의 몰락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분들이므로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B 의원은 “이들의 언행이 국민들에게 호감을 못 얻지 못했다. 다시 나선다고 해도 그 선을 넘을 수 있겠나.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직을 내려놓은 사람이 다시 나선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올드보이의 귀환에 반대 목소리가 큰 결과에 대해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을 보여주는 증거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초선의원들로부터 이 같은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2선 후퇴보다 오히려 정계 은퇴를 원하는 목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이어 “올드보이들의 재부상은 당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구적이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정당 지지율이 좋게 나오지 않으면 차기 총선은 백전백패가 될 확률이 높다. 다만 반대 의견을 드러내 놓고 주장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4. 문 정부의 대북 정책 | “안보 능력은 여전히 한국당 우위”

지난 7월, 한국당의 소방수로 등장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달 뒤인 8월, 6·13 지방선거 등 잇따른 선거 패배의 원인을 진단·평가하기 위해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문제를 바로 알고 처방전을 내리겠다는 의도였다.

10월 30일, 보고서가 공개됐다. 연구소는 유권자의 최근 정치성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인 칸타퍼플릭에 의뢰해, 올해 9월 7~18일까지 전국 성인 1500명으로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연구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 지지를 철회한 집단에 주목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지만 2017년 홍준표 후보 외의 다른 후보들을 지지한 집단을 ‘이탈자’로 규정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일관되게 한국당 후보를 지지한 집단은 ‘지지자’, 두 번 다 한국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집단은 ‘반대자’로 정의했다. 지지자는 24.6%, 반대자는 41.6%였고 이탈자는 34.6%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탈자를 ‘중도’ 성향으로 보았다.

9월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김무성 의원 등 참석한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9월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김무성 의원 등 참석한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 결과, 이탈자 가운데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한국당을 이탈한 사람 중 43.88%가 ‘국방, 안보 현안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을 민주당으로 꼽은 것이다. 한국당은 29.52%에 그쳤다.

이에 대해 김우석 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은 “한국당은 이 설문조사 결과에 착안해야 한다”며 “현재 한국당 지지율은 20%대 초반이다. 해당 여론결과에서 한국당 이탈자 가운데 29.52%의 수치가 나왔다는 점은 국방, 안보에 관한 한국당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월간중앙은 초선들에게 해당 조사 결과와 함께 ‘국방, 안보 현안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을 물었다. 결과는 응답한 초선 21명 모두 자유한국당을 꼽았다. 그 이유로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위능력을 향상시킬 핵심 정당은 자유한국당뿐이다 ▷국방과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실험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의 성급한 추진보다는 보수적이고 신중한 제도마련이 필요하다 ▷당내외 보수진영에 국방 안보 관련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풀이 다수 존재한다 등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의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보수 진영의 대북 정책 전환을 주문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보수 유권자의 분열과 방황을 봉합하려면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존한 낡은 대북 안보 프레임을 버리고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북 정책을 포용해야 된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진단에 초선의원 21명은 ▷동의한다 76.2%(16명) ▷동의하지 않는다 4.8% (1명) ▷판단 유보 19% (4명)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으로의 전환’에 가장 많은 의원이 동의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적지 않은 온도차가 느껴졌다. A 의원은 “대북 정책 전환에 동의하지만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닌 국가 생존을 보장하는 ‘안보’는 중요하다”며 “북핵폐기가 수반되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B 의원은 “북한의 가시적 변화 없이 무조건적으로 선(先)지원하는 분위기로 가는 현 정부식 대북정책은 세계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렵고 곤란하다”며 “대북제재는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약속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C 의원은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면서 “과도한 감성팔이로 국민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D 의원은 “맹목적인 문재인 정권의 방식이라면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현실적인 대화와 협력의 노력은 하되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과 북한의 실체를 꿰뚫어봐야 한다”는 온건한 반응도 있었다.

월간중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 발언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는지도 물어보았다. 그 결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가 52.4%(11명), ‘신뢰하지 않는다’는 47.6%(10명)으로 집계됐다. 긍정 답변(강하게 신뢰한다, 어느 정도 신뢰한다)은 나오지 않았다.

김 위원장 비핵화 약속을 불신하는 이유로는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다. ‘비핵화 실질적 진전’과 ‘대북제재’ 완화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과거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신뢰할 수 없다 ▷현재까지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어떠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뢰를 이야기하기는 시기상조다 ▷김정은은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길을 함부로 가면 안 된다 ▷김정은이 내세울 수 있는 힘은 핵뿐이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를 우선적으로 요구할 것이고 정권 생존을 위해 핵무기 소량(10기 이내)을 보유하려 할 것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유연한 대북정책에는 동의하지만 김 위원장을 믿지 않는다는 결과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며 “북한의 행태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지만 평화 국면이 상당히 빠르게 흘러가면서 뒷짐을 지고 있다간 표를 끌어 모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5. 한국당 초선이 가야 할 길 | “적극적 정풍운동, 초선의 미래에 유리”

“당의 체질 변화를 위해서는 젊고 유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신진인사를 위한 공간을 대폭 마련해, 역삼각형의 비정상적 연령구조를 마름모꼴 연령구조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공천과정에서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2003년 9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나온 당시 원희룡 의원의 발언이다.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원 의원을 포함 남경필·오세훈 등 소장파들은 ‘60대 용퇴론’을 꺼내들며 인적청산론을 내세웠다. 당시 정풍운동은 당 쇄신이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유명한 사례다. ‘60대 용퇴론’은 ‘5·6공 사퇴론’까지 번지면서 세대교체의 불을 지폈다. 그 결과, 당시 최병렬 대표는 사퇴하고 영남권 3선 의원 20명 중 14명이 물갈이되는 등 중진 60여 명이 교체됐다. 인적쇄신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도 한나라당은 121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정풍운동의 시작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종필 의원이 여당인 공화당 총재직에 오르자, 당시 박찬종·오유방 의원 등 소장파 의원 10여 명은 ‘부패 정치인 퇴출’ 명목으로 실세였던 이후락·김진만 의원 등의 퇴출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2003년 1월 25일 한나라당 미래연대 소속 김용학·원희룡 의원(왼쪽부터)과 회원들이 여의도 당사에서 지도부 사퇴와 관련한 합숙토론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03년 1월 25일 한나라당 미래연대 소속 김용학·원희룡 의원(왼쪽부터)과 회원들이 여의도 당사에서 지도부 사퇴와 관련한 합숙토론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고비마다 수렁에서 보수를 끌어낸 건 초·재선이 앞장선 정풍운동이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는 “이번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은 초선 의원이 절반에 달한다는 사실은 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당의 진로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정치생명도 보장할 수 없어 현안에 대해 언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어떻게 익명을 보장할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다”고 응답을 거절했다. 이에 대해 차 교수는 “지금 한국당 초선을 포함한 소장파는 당의 중심이 되려 하기보다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당이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초선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설문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초선들도 지금의 위기를 당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국회 입성 과정에서의 배경은 차치하고 당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포럼도 개최하고 대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자주 갖는 등 당 밖의 인사들과 활발하게 접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적극적인 움직임은 한국당과 보수를 일으키는 일이자 초선들의 미래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종훈 평론가의 지적은 과거 사례에서 증명된다. 2000년 결성된 한나라당 쇄신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가 단적이다. 당시 미래연대는 ‘남·원·정’으로 불린 남경필·원희룡·정병국 당시 의원을 비롯해 오세훈·김부겸·김영춘·김성식·정두언·심재철·황영철·조해진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16대 국회 이후 배지를 단 사람만 20여 명에 달했다.

정풍운동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정치인들의 향후 행보는 흥미롭다. 당시 오세훈 의원은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고 지금은 차기 한국당 대표 후보이자 보수 대권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원희룡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제주지사에 당선됐고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무소속인 원 지사는 보수 야당으로부터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미래연대의 주축이었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현재 여권 잠룡으로 분류된다. 미래연대에 참여했던 소장파들이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점은 초선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한국당 초선의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한다. 이종훈 평론가는 “민주당 초선들은 정치투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운동권 출신이 많은 터라 전투력이 아직 남아있다. 실력에 비해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기술도 발달했고 자기 정치하는 능력도 일정부분 갖추고 있다”며 “관료, 기업인, 전문가 집단 출신이 많은 한국당 초선의 경우 민주당 초선처럼 달려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교했다. 그는 “위기에 처할수록 강한 전투력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스탠스라면 다음 공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차재원 교수는 “외부에서 뉴 리더를 영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정당 내부에서 인물이 성장해야 한다. 능력이 된다고 판단하는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당 쇄신에 뛰어들어 당을 흔들어야 한다”며 “당을 변화하고 혁신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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