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미국에서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블프)에 벌써부터 국내 직구족이 열광하고 있다. 직구 사이트엔 TV나 태블릿PC, 유아용품 등을 찾는 직구족의 정보전이 한창이다. 남의 나라 쇼핑 잔치에 우리 소비자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건 역시 반값 혹은 그 이상의 70~80% 할인을 내건 파격적인 세일 가격 때문이다.
국내서도 이달 초부터 온라인 쇼핑몰이 나서 블프나 중국 광군제에 맞서 대대적인 할인전을 펼쳤다. 소비시장에서 전통적인 비수기였던 11월에 온라인몰이 선전해 사그라들던 소비의 불씨를 살린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남의 나라 잔칫상에는 70~80% 세일이 넘쳐나는데 우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만한 파격가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달 초 쇼핑에 나섰던 소비자 중엔 미국의 블프가 다가오자 괜스레 먼저 지갑을 열어 호갱이 된 건 아닌지 후회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블프 같은 화끈한 세일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통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유통학회장인 박주영 숭실대 교수는 “미국에서 블프를 주도하는 건 아직까진 온라인몰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라며 “이들은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니까 연말이면 원가 정도로 재고를 떨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창고에 쌓인 재고를 처분해야 물류비도 아끼고 새해의 신상품 판매 준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백화점의 직매입 비중은 전체 상품의 70~80%에 달한다.
반면 국내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직매입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연말이 되도록 안 팔려 재고가 쌓여도 제조업체의 부담일 뿐 입점업체한테 입점 수수료만 받으면 그만이다.
이달 초 선전한 온라인몰은 쉽게 얘기하자면 중개상일 뿐이다. 할인전 기간엔 할인 폭만큼을 온라인몰과 제조업체가 마진을 반반씩 줄이는 식으로 행사를 치렀다. 그만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내 백화점과 쇼핑몰이 이렇게 쉬운 장사만 고집하는 사이 해외 직구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높은 직매입 비중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미리 시장의 흐름을 읽고, 상품을 기획해 뛰어난 마케팅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백화점이나 쇼핑몰도 본업인 유통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본인들은 부동산 임대업이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비자도 연말 한때라도 맘껏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장정훈 산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