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왜 우린 화끈한 ‘블프’가 없나

중앙일보

입력 2018.11.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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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팀 차장

장정훈 산업팀 차장

이번 주말 미국에서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블프)에 벌써부터 국내 직구족이 열광하고 있다. 직구 사이트엔 TV나 태블릿PC, 유아용품 등을 찾는 직구족의 정보전이 한창이다. 남의 나라 쇼핑 잔치에 우리 소비자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건 역시 반값 혹은 그 이상의 70~80% 할인을 내건 파격적인 세일 가격 때문이다.

국내서도 이달 초부터 온라인 쇼핑몰이 나서 블프나 중국 광군제에 맞서 대대적인 할인전을 펼쳤다. 소비시장에서 전통적인 비수기였던 11월에 온라인몰이 선전해 사그라들던 소비의 불씨를 살린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남의 나라 잔칫상에는 70~80% 세일이 넘쳐나는데 우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만한 파격가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달 초 쇼핑에 나섰던 소비자 중엔 미국의 블프가 다가오자 괜스레 먼저 지갑을 열어 호갱이 된 건 아닌지 후회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블프 같은 화끈한 세일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통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유통학회장인 박주영 숭실대 교수는 “미국에서 블프를 주도하는 건 아직까진 온라인몰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라며 “이들은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니까 연말이면 원가 정도로 재고를 떨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창고에 쌓인 재고를 처분해야 물류비도 아끼고 새해의 신상품 판매 준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백화점의 직매입 비중은 전체 상품의 70~80%에 달한다.

반면 국내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직매입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연말이 되도록 안 팔려 재고가 쌓여도 제조업체의 부담일 뿐 입점업체한테 입점 수수료만 받으면 그만이다.

이달 초 선전한 온라인몰은 쉽게 얘기하자면 중개상일 뿐이다. 할인전 기간엔 할인 폭만큼을 온라인몰과 제조업체가 마진을 반반씩 줄이는 식으로 행사를 치렀다. 그만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내 백화점과 쇼핑몰이 이렇게 쉬운 장사만 고집하는 사이 해외 직구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높은 직매입 비중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미리 시장의 흐름을 읽고, 상품을 기획해 뛰어난 마케팅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백화점이나 쇼핑몰도 본업인 유통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본인들은 부동산 임대업이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비자도 연말 한때라도 맘껏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장정훈 산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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