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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외래종 일본잎갈나무…산사태 위험에 농작물 피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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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찾은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햇빛이 숲 바닥까지 닿지 않아 키 작은 식물들은 보기 어렵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지난달 25일 찾은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햇빛이 숲 바닥까지 닿지 않아 키 작은 식물들은 보기 어렵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태백산국립공원 제당골 입구.
30m 안팎의 큰 키를 자랑하며 하늘로 길게 뻗은 일본잎갈나무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나무는 1~2m 간격으로 빽빽했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차가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숲 바닥에서 다른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행한 김병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부 과장은 “숲 아래엔 다른 수종이 살지 못해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는 국립공원에 일본잎갈나무 인공조림지가 많은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은 병충해나 산불에도 취약하다.

김 과장은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고 탄광 갱목용 목재로도 좋아 1960~70년대에는 일본잎갈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설명했다.

6개 국립공원에 여의도 28배 면적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큰 키가 주변의 키 작은 단풍나무 숲과 뚜렷이 구별된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큰 키가 주변의 키 작은 단풍나무 숲과 뚜렷이 구별된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영월군 만항재 고갯길에 이르는 인근 도로변 곳곳에서도 일본잎갈나무 인공조림지를 볼 수 있었다.
해발 1000m 지점에서 내려다보니 일본잎갈나무 숲은 단풍이 물든 주변 숲과는 뚜렷이 구별됐다.

지난해 한국환경생태학회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 태백산국립공원을 비롯해 가야산·소백산·월악산·지리산·치악산 등 6개 국립공원에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28배가 넘는 일본잎갈나무 숲(82.6㎢)이 분포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태백산국립공원은 전체 70㎢ 중 8.2㎢(11.7%)로, 6개 공원 중 일본잎갈나무 숲 비율이 가장 높았다.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분포 상황 [자료 한국환경생태학회]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분포 상황 [자료 한국환경생태학회]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강풍 불면 한꺼번에 쓰러지기도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군데군데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띈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 숲. 군데군데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띈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일본잎갈나무는 안전 문제까지 발생한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라지만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혀있지 않는 특성 때문에 강한 바람에 쓰러지는 경우가 잦다.
나무를 너무 촘촘히 심은 탓에 하나가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여러 그루가 쓰러지기도 한다.

태백시 소도동 어평재 휴게소 인근에 사는 권오련(85·여) 씨는 “집 위쪽과 옆쪽에 일본잎갈나무가 많이 심겨 있었는데 몇 년 전 태풍에 수십 그루가 쓰러졌다”며 “한동안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나무에 쓰러진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숲.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나무에 쓰러진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숲. [사진 한국환경생태학회]

농작물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상당수다. 태백시 소도동에서 16만5000㎡의 배추 농사를 짓는 정종우(52) 씨는 “배추밭 주변에 일본잎갈나무가 많은데 바람이 부는 날이면 떨어진 잎이 배춧속으로 들어가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며 "올해만 2만3100㎡가 피해를 봐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잎갈나무를 벌목하는 데 대해 반론도 없지 않다.
환경생태학회 보고서는 "외래종이기는 해도 오랜 기간 특정 지역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일본잎갈나무를 베어내는 과정에서 자칫 산사태 등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산림청에서는 목재 생산과 활용 측면에서 일본잎갈나무를 일괄적으로 벌목하기를 원했던 반면 환경부는 작은 나무들이 천천히 자랄 수 있도록 군데군데 베어내는 솎아베기를 원하는 등 관리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도 있었다.

19일부터 태백산에서 벌목 작업 시작 

지난 19일 환경부와 산림청이 태백산국립공원 일본잎갈나무 솎아베기 예비사업을 시작됐다. 작업자가 벌목 대상으로 표시된 나무를 전기톱으로 벌목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난 19일 환경부와 산림청이 태백산국립공원 일본잎갈나무 솎아베기 예비사업을 시작됐다. 작업자가 벌목 대상으로 표시된 나무를 전기톱으로 벌목하고 있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채은 환경부 자연공원과장은 "환경부와 산림청가 최근 협의체를 구성했고, 지난 19일부터 태백산국립공원에서 일본잎갈나무 관리 예비사업을 시작했다"며 "연말까지 태백산 19만㎡에서 일본잎갈나무 1394그루를 솎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비사업에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도 참여한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벌목한 곳에 식물이 어떻게 옮겨와서 자라는지 등을 모니터링한 다음 지침을 만들 계획이다.
시범 사업을 거쳐 태백산 다른 지역, 다른 국립공원까지 벌목을 점차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벌목 작업이 언제 완료될 지는 알 수 없다.

조우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는 "일본잎갈나무 숲이 자연적인 숲으로 바꾸려면 베어낼 나무를 골라내는 것, 베어낸 나무는 옮기는 방법 등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작업을 꼼꼼하게 감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백산=박진호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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