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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탄핵 놓고 판사들 격론 … 1표에 갈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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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상 초유의 동료 법관에 대한 탄핵 검토를 결의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 결정을 놓고 법조계 안팎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을 위시한 ‘사법부 내 신주류’가 구(舊)주류와의 주도권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수도권 지법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의뢰를 놓고 갈팡질팡했던 김 대법원장으로 인해 다소 결속력이 약해졌던 ‘범주류’가 구주류 축출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다시 결속한 양상”이라고 평했다.

법관회의 105명 표결, 찬53 반43 #찬성 1표만 줄어도 과반 안 돼 부결 #“몰아가듯 진행” 일부 반발 퇴장 #최기상 의장은 ‘우리법’ 회장 출신

105명이 참석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내놓은 법관 탄핵 검토 결의안은 찬성 53표, 반대 43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찬성표가 한 표만 부족해도 과반에 미달했다.

이번 회의에서 강경파 판사들은 “탄핵소추 절차를 촉구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국민을 설득할 진정성을 저버리는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일부 판사들은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국회 권한이기 때문에 사법부가 특정 의견을 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론을 폈다고 한다. 찬반 토론이 끝나고 표결에 들어가자 법관 대표 3~4명은 “회의를 (탄핵 쪽으로) 몰아가듯 진행하고 있다”고 항의하며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중도 퇴장한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번 회의에 참석한 대표 법관들이 다소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법관대표회의 대표들은 각급 법원에 소속된 법관 투표로 선출됐기 때문에 소장 강경파 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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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부터 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맡은 최기상(49·사법연수원 25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부의장인 최한돈(53·연수원 28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이날 회의에서 ‘동료 법관 탄핵 검토’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법관은 최한돈 부장판사였다. 이에 대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법관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면 이런 중립적이지 않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법관 대표가 가결한 결의안에는 탄핵 검토 대상에 오를 판사의 실명이 직접 거론되진 않았다. 현재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현직 대법관 등 법관 6명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 모양새다. 2009년 당시 야권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신영철 전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지만 72시간 이내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폐기됐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현재 299석) 3분의 1 이상의 발의(100석 이상)와 재적의원 과반수(150석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날 더불어민주당(129석)과 바른미래당(30석), 민주평화당(14석)과 정의당(5석)은 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을 환영하는 취지의 공식 논평을 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법원 스스로의 반성과 함께 사법개혁을 바라는 소장 판사들의 제안이 반영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네 정당의 의석 수를 합하면(178석) 탄핵소추안 의결이 가능하다. 다만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법관 탄핵소추안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에 자유한국당(112석)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법관대표회의는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단정하는 합리적 논거가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했다”며 “대법원장 자문기구가 국회의 권한인 탄핵에 관여하는 자체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민·정진호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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