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설

혼돈의 사법부 사태, 재판 통한 실체 규명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8.11.2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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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병대 전 대법관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전직 대법관이 검찰청 포토라인 위에 선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는 “가슴 아프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버팀목이 돼야 할 전직 최고위 법관이 ‘재판 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현실에 국민도 가슴이 아프다.

박 전 대법관은 30여 년의 법관 생활 중에서 3분의 1가량을 법원행정처에서 보냈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법원행정처장이었다. 그에 대한 수사는 예견된 것이었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마찬가지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그의 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될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이 조사받고 있던 때 판사 114명이 모여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었다. 소장 판사들이 주도하는 이 회의에서 재판 개입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현직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가 표결 끝에 통과됐다. 국회에서 의원 3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판사 탄핵소추안이 상정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정치’가 개입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의미다. 탄핵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로 사건이 넘어간다.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재판과 헌재 탄핵심판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재판’ 사태는 혼돈을 가중시킬 수 있다.

수사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고, 검찰은 되도록 올해 안에 관련자 기소까지 마친다고 한다. 그 뒤에는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다. 그 누구도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이 사태를 오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임종헌 전 차장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에서 이미 ‘사법 농단’ 의혹에 개인적 판단을 밝힌 판사는 배제하는 게 옳다. 피고인도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를 밟으며 냉정하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이 혼돈을 수습하는 바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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