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버려진 지하 벙커가 황금빛 향연 펼쳐지는 문화예술 공간 탈바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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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제주 성산읍에 문을 연 ‘빛의 벙커’에 방문하면 생동감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를 볼 수 있다. 개관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지난 16일 제주 성산읍에 문을 연 ‘빛의 벙커’에 방문하면 생동감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를 볼 수 있다. 개관작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지난 16일 프랑스에서만 볼 수 있던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국내에 문을 열었다. 장소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지하 벙커’다. 그간 흙과 나무에 덮여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폐허 공간이 색·영상·음악이 가득한 문화예술 공간 ‘빛의 벙커’로 탈바꿈했다. ‘빛의 벙커’의 첫 전시 테마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 공식 개관 하루 전인 15일 열린 미디어 행사를 찾아 ‘빛의 벙커:클림트’를 미리 살펴봤다.

제주 상륙한 미디어아트 전시관

‘빛의 벙커’ 전시장의 입구 모습.

‘빛의 벙커’ 전시장의 입구 모습.

제주 성산 ‘커피박물관’ 안에 위치한 ‘빛의 벙커’는 1990년대 국가 기간통신망을 운용하기 위해 설치된 지하 벙커였다. 통신의 발달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10여 년간 방치됐던 공간이다. 이곳은 지난해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공간을 찾던 프랑스의 예술 전시 공간 서비스 기업 ‘컬처스페이스’와 국내 문화기술 기업 ‘티모넷’에 낙점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이곳에선 ‘컬처스페이스’가 개발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기술 ‘아미엑스(AMIEX)’로 만든 콘텐트가 상시 전시될 예정이다. 고성능 비디오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수십에서 수백 개 설치해 영상과 음악으로 완벽하게 시청각을 몰입시키는 방식의 전시다. ‘아미엑스’ 전시는 주로 산업 발전으로 낙후돼 발길이 끊긴 곳에서 도시재생 목적으로 활용해왔다. 지금까지 프랑스의 레보드프로방스(빛의 채석장)와 파리 11구(빛의 아틀리에) 지역 단 두 곳에서만 볼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주인공이 된 ‘빛의 벙커’ 입구는 비밀의 문처럼 보여 다소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높이 5.5m의 벽, 약 3000㎡ 규모의 바닥을 캔버스 삼아 화려한 선과 색이 때론 평화롭게, 때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춰 요동친다. 물감이 퍼져 나가듯 꽃이 피었다 지고 서로 엉켜 있는 여인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등의 방식으로 쉴 새 없이 클림트의 황금빛 작품이 소개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명화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든다. 완전히 몰입해 감상하다 보면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도 만날 수 있다.

40분가량 클림트 작품 750여 점을 감상하면 바로 10분 길이의 두 번째 전시가 시작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주인공이다. 클림트의 사상을 현대에 계승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전시는 40분의 ‘롱 무비’와 10분의 ‘숏 무비’를 합친 50분 코스로 반복된다. 한번 입장하면 원하는 만큼 머물며 구경할 수 있어 천천히 여러 번 관람할 수 있다.

‘빛의 벙커:클림트’는 내년 10월 27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후 ‘롱 무비’는 피카소·고갱 등 유명 예술가를 중심으로 1년마다, ‘숏 무비’는 제주 출신의 우리나라 예술가 위주로 4개월마다 새롭게 소개할 예정이다.

제주=신윤애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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