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수 제니퍼 로페즈,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가수 지드래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그리고 허경영 민주공화당 전 총재.
“김정은에 팬텀 판 적 없어, 방탄차는 러시아 마피아가 많이 사용"
도저히 공통점이라곤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조합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있다. 영국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다. 전 세계 주요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가장 비싼 롤스로이스는 성공한 인사들에게도 ‘한 번쯤 타보고 싶은 차’로 꼽힌다. 워낙 비싸다 보니 졸부들에게는 성공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롤스로이스 영국 본사가 지난달 17일 미국 와이오밍주 옐로스톤국립공원 일대에서 시승 행사를 실시했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최초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컬리넌(Cullinan)’ 판매를 시작하면서다.
그간 SUV는 고급차 브랜드에서 큰 인기가 없었다. 고급차는 무조건 세단이라는 일종의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년 전부터 포르쉐(카이엔)·벤틀리(벤테이가)·마세라티(르반떼)에 이어 람보르기니(우루스)까지 줄줄이 SUV 모델을 선보였다. 롤스로이스는 페라리와 함께 마지막까지 SUV를 출시하지 않고 버텼던 브랜드였다.
SUV를 출시한 이유에 대해 틸로 딤러 롤스로이스 제품라인 엔지니어는 “기존 롤스로이스 구매 고객들이 현대적 SUV를 출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5년 간 컬리넌 개발에 동참했던 그는 “개발 목표는 ‘마법의 양탄자(magic carpet ride)’와 같은 승차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SUV가 주로 다니는 오프로드에서도 롤스로이스 특유의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록키산맥을 이루는 다양한 산길(티튼산·스노우킹산·그림자산)을 반나절 내내 달렸는데도 피곤함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곳곳에서 사냥꾼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험준한 지형이었지만 승차감은 롤스로이스 명성만큼이나 조용하고 아늑했다. 무겁고(2660㎏) 거대한(534.1*216.4*183.5cm) 차체가 스라소니처럼 날렵하게 산을 탔다.
정숙성도 훌륭했다. 소음을 차단하려는 롤스로이스의 시도는 강박에 가깝다. 엔진소음을 차단하려고 승객석과 엔진룸 사이를 이중금속으로 처리하고, 바닥 소음을 줄이려고 차체 바닥을 2배로 두껍게 만들었다. 심지어 문짝 4개에 총 100㎏이나 되는 흡음제를 집어넣고 6㎜ 두께의 이중유리를 사용했다. 승차감을 고려하다보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를 택했다. 펠릭스 킬버투스 롤스로이스 디자인총괄 디자이너는 “컬리넌은 세계에서 가장 조용하고 정숙한 SUV”라고 자부했다.
물론 가격도 그만큼 상승할 수밖에 없다. 롤스로이스는 사소한 장식 하나하나까지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데 모든 옵션을 전부 선택하지 않을 경우 컬리넌은 32만5000달러(3억6500만원)부터 시작한다. 일부 옵션을 적용한 한국 판매 가격은 4억6900만원부터다.
컬리넌 연비는 6.67L/㎞(유럽공인연비 기준). 바람 저항을 많이 받는 디자인에 승차감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개발한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오프로드 주행 성능도 기대 이상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2744m)과 맞먹는 높이(해발 2380m)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낭떠러지나 질퍽한 도로가 종종 등장했다. 아슬아슬한 구간을 빠져나갈 때마다 컬리넌는 안정적인 접지력을 선보였다. 오프로드 전용모드를 클릭하면 차량이 스스로 차체 높이·충격과 흔들림을 조절했다.
평소 스키장 고급코스로 사용하는 가파른 비탈길(스노우킹산 슬로프)도 주행했다. 12기통 엔진이 내뿜는 출력(563마력)·토크(86.7㎏·m) 덕분에 최대경사각 55도의 비탈을 사뿐하게 올라갔다. 내려올 땐 경사로 감속 제어 버튼을 활용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급경사 구간에서 운전자가 지정한 속도로 차량이 정속 주행한다. 운전자가 발을 조작하지 않고 오로지 눈과 손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
오프로드 주행 성능에 대해서 로드리 구드 롤스로이스 상품 스페셜리스트는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가 완주에 실패했던 아라비아반도 붉은사막 구간을 컬리넌은 통과했다”며 “주행성능은 어떠한 SUV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다만 오프로드 상에서 일부 기능이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컬리넌은 롤스로이스 특유의 코치도어(coach door·뒷문이 앞문과 마주보고 열리는 형태)를 적용했다. 버튼을 누르면 양문형 냉장고처럼 전동식으로 문이 개폐한다. 그런데 경사가 너무 가파른 곳에서는 이 버튼이 동작하지 않았다. 수십㎏이나 되는 문짝을 수동으로 밀어서 여닫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뒷좌석 안전띠의 경우 오프로드에서 차량이 크게 흔들리면 자동으로 단단하게 조여지는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일단 한번 세게 조여진 뒤에는 차량이 평평한 길로 접어들어도 풀리지 않았다. 때문에 뒷좌석에서 모니터나 에어컨디셔너를 조작하려고 할 때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손이 닿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롤스로이스는 한국에서 예정대로 정부 인증을 받을 경우 12월부터 한국 고객에게 컬리넌 인도를 시작한다.
◇김정은 팬텀 판 적 없어 = 한편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롤스로이스의 대형 세단 '팬텀 디아머드(Phantom the armoured)'를 몰고 나타나면서 시승 행사장에서 글로벌 기자단의 관심은 김 위원장의 차에 쏠렸다. 롤스로이스 본사 공식 답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차를 판매한 적이 없고 만약 주문이 들어와도 차를 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현지에서 만난 복수의 롤스로이스 관계자들은 “독일의 자동차 튜닝 전문 기업 ‘클라센(Klassen)’이 롤스로이스 팬텀 차량을 방탄 모델(디아머드)로 개조하는데, 이 차량을 주문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러시아 국적이며 일부는 러시아 마피아”라고 귀띔했다. 즉, 롤스로이스가 러시아 국적의 손님에게 판매했던 차량이 중고차 거래 형태로 북한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이다.
잭슨홀(미국)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