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브라이트 “트럼프는 미국 최초 반민주주의 대통령”

중앙선데이

입력 2018.11.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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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10면

미국 각료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백화원 영빈관에 있는 회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각료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2000년 10월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백화원 영빈관에 있는 회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권위주의·독재·파시즘의 차이는 뭘까. 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다. 독재의 완곡어법(euphemism)이 권위주의고, 독재의 과장법이 파시즘인 경우가 많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파시즘』 출간 인터뷰
난민도 장관 되는 미국 자랑스러워
헨리 키신저도 나도 이민자 출신

2000년 평양서 만난 김정일
“우리는 미국과 거래하고 싶은데
미국이 언제나 의심 갖고 반응”

통일 바라는 한국인 열망 이해
파쇼정권과 이웃 쉬운 일 아니다

올브라이트파시즘

올브라이트파시즘

무솔리니·히틀러의 파시즘, ‘군부 파시즘’ 등…. 파시즘은 역사책 속에나 나오는 말 같다. 그런데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1997~2001)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80)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파시즘을 역사의 창고에서 끄집어냈다. 『파시즘: A Warning』(사진)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무엇을 경고하려는 것일까. 파시즘은 극단적인 전체주의의 일종이다. 자유주의의 부정, 통치자에 대한 절대복종, 폭력성·일당독재·국수주의·군국주의·반공 등이 특징이다.

『파시즘』에서 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나라, 파시즘이라는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싹이 보이는 나라로 러시아·베네수엘라·터키·폴란드·헝가리를 꼽았다. 20세기 파시즘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공포와 분노와 혼란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21세기의 세계 각국 유권자도 공포·분노·혼란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다. 파시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특이하게도 올브라이트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현재로선 세계 유일의 파시즘 국가라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중앙집권화된 권력, 인권 탄압, 강압에 의존하는 통치, 강제수용소 등 올브라이트가 이해하는 파시즘 최악의 특질이 북한에서 모두 발견되기 때문이다. 『파시즘』에는 북한이 59번, 김정일이 18번, 김정은이 8번 나온다.

올브라이트는 “트럼프는 파시스트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그를 “미국 근대사 최초의 반민주주의적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올브라이트는 트럼프의 다음과 같은 성향을 걱정한다. 민주적 절차에 대한 무시, 언론 공격, 이민자 혐오 부추기기, 미국제일주의, 세계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찬양’하는 성향 등.

2000년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약 12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미국과 거래를 바란다. 나는 전에도 남한을 통해 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지만, 미국은 애인한테 차인 적이 있는 여자애처럼 언제나 의심을 가지고 반응했다.”

올브라이트는 난민 출신이다. 체코 출신인 그는 1948년 11월 11일 미국에 도착했다. 그의 가문에서 26명이나 나치스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희생됐다. 9일 올브라이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올브라이트는 지난해 6월 3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이 ’세계 광장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올브라이트는 지난해 6월 3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이 ’세계 광장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책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북한에는 반대파라든가 반대파에 대한 지지라는 게 전혀 없다. 북한의 문제 중 하나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의 원칙(majority rule)이 있지만, 동시에 소수파의 권리(minority rights)도 있다. 북한에는 소수파의 권리라는 게 없다. 북한에서는 김정은과 같은 친족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제거된다.”
히틀러를 향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은 실패했다. 남북·북미 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현 상황을 히틀러와 비교하지 않겠다. 나는 외교가 무력사용보다 좋다고 믿는다.”
파시즘보다는 권위주의나 독재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파시즘은 갑자기 등장하는 게 아니다.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는 ‘닭의 깃털을 한 개씩 뽑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과연 파시즘을 걱정해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치사에서 한 에피소드에 불과할까.
"나는 2016년 대선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크게 우려한다. 최근 중간선거 결과에 나는 크게 고무됐다. 특히 많은 여성이 당선됐다. 민주주의의 탄력성(resilience)을 믿는다. 하지만 『파시즘』을 쓴 이유는 미국인들이 경고음을 듣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뭔가 보이면 뭔가 말하라(If you see something, say something)’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뭔가 하라(do something)’를 추가하겠다.”
중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는 중산층이 형성되면 민주화된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한국 사례와 딱 들어맞는다. 한국에는 군사정부가 있었지만, 중산층이 형성된 한국은 세계에서 주도적인 민주국가가 됐다. 시진핑(習近平)이 스스로를 ‘종신 지도자(leader for life)’로 만든 것은 우려할 일이지만, 한국 사례를 보면 중국 민주주의의 미래도 희망적이다.”
트럼프의 미국제일주의에 역기능이 있더라도, 세계화의 시대에도 ‘건강한’ 민족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간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것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여러 면에서 세계화의 수혜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게 만든다. 애국심은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내 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내 나라에는 어떤 국가 이익이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민족주의나 과도한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그런데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은 민족주의를 악용한다. 그들은 ‘우리나라는 희생자다. 우리나라는 공격받고 있다. 우리는 외국인을 우리나라에서 추방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는 평판이 나쁜 말, 민족주의는 좋은 말이 됐다. 나는 그 반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의 부제는 ‘경고’다. 경고하고는 있지만, 당신은 세계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가.
"사실 내가 낙관주의자인지 비관주의자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가 ‘걱정을 많이 하는 낙관주의자(an optimist who worries a lot)’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조지타운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는 것과 미국 국무장관으로 일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힘든가.
"(웃음) 여러 면에서 가르치는 것과 공직은 함께 간다. 나는 1980년대에 가르쳤다. 국제체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쳤다. 교직 경험 덕분에 국무장관직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국무장관직을 거친 덕에 나는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실제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학생들에게 내 체험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직도 공직도 모두 어렵다. 학생들에게 어떤 시각을 강요하지 않고 최대한 정직하게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 학생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과 교직은 둘 다 도전적인 일, 기분 좋은 일, 올바른 일이다.”
당신 유대인인가.
"내 종교적 배경은 복잡하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지만, 결혼할 때 성공회로 개종했다. 나중에 나는 우리 집안이 유대인 집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함구했다. 미국 지도자들은 출신 배경이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무엇에 앞서 ‘미국인’이다. 나는 체코에서 태어난 난민 출신이라는 게 매우 자랑스럽다. 11일은 내가 미국에 온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난민이 국무장관이 될 수 있는 나라다. 헨리 키신저도 이민자 출신이다. 미국이 그런 나라라는 것을 미국인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타국 출신 사람을 ‘덜 환영하는’ 나라가 되는 것 같아 상심이 크다.”
파시즘은 혼란을 먹고 자란다. 인공지능(AI)은 일자리 사정에 큰 혼란을 몰고 와 세계의 기존 파시즘 트렌드를 악화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다.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기술은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 놀라운 일을 한다. 동시에 기술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경향도 있다. 기술은 프로파간다를 보다 쉽게 만든다. 또 우리는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의 효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술 로드맵에 대한 규칙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당신의 수월성과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
"나는 노력한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독서를 많이 하고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한다.”
『파시즘』은 난민·이민자였던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연상시킨다.
"위대한 사상가인 아렌트와 비교해 줘서 고맙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한국인을 존경한다.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비무장지대에도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대에 처음 만나 햇볕정책과 관련해 연락을 유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나는 통일 한국이라는 한국인의 열망을 잘 이해한다. 2000년 나는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서 서울로 갔다. 상공에서 바라본 북한은 어둠이었다. 남쪽으로 넘어가자 사방에 빛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다. 파쇼 정권의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한국 독자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면 좋겠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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