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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식 때 웃으려는 시도조차 그만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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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30면

미셸 오바마 자서전 『비커밍』 13일 전세계 출간 

비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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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장애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나는 충분히 훌륭한가” 자문하며 #하버드 졸업, 미 퍼스트레이디 올라 #지지율 항상 66% 수준 유지 #남편 버락 오바마보다 높지만 #“정치 안 한다” 확실히 선 그어 #유산의 아픔, 부부위기 상담 #퍼스트패밀리 사생활 공개 #부부 자서전 선인세 730억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가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아직 출간도 안 됐는데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도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54)의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이 그런 경우다. 31개 언어로 번역돼 지난 13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이미 9일부터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였다. 예약판매 덕분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책에 대해 “귓전에 미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문체가 생생하다.

책 제목 ‘비커밍’은 무슨 뜻일까. 비커밍은 형용사로는 ‘어울리는’이다. 명사로는 변화의 과정, 생성, ‘됨·되기·되어가기·되어나가기’이다. 한마디로 『비커밍』은 중하층 흑인 집안에서 태어난 소녀가 조선왕조식으로 표현한다면, ‘중전마마’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3부로 구성됐다. 내가 되기(becoming me), 우리가 되기(becoming us), 그 이상이 되기(becoming more)다. 어린 시절, 연애 시절, 퍼스트레이디 시절, 퍼스트레이디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시절에 대한 암시를 담았다.

핵심을 간추린다면 이런 내용이다. 미셸은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에서 자라났다. 시카고대가 있는 지역이다. 아버지는 다발성경화증(MS)이라는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시청 정수처리장 노동자였다. 전업주부이자 어떤 때는 부업을 해야 했던 어머니는 미장원에 가는 법이 없었다. 다 자식들을 위해서였다. 바캉스나 외식 같은 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오로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부모님 덕분에 프린스턴대에서 사회학 전공, 미국흑인학 부전공으로 문학사(1985),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무박사(1988) 학위를 받고 일류 법률 회사인 시들리 & 오스틴 변호사로 취업했다. 그곳에서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은 좀 이상하지만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하는 총명한 하버드로스쿨 동문을 만났다. 버락이 법률회사 인턴사원으로 온 것이다. 결국 미셸은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퍼스트레이디 중 한 명이 됐다. 남편 버락 오바마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66% 수준을 항상 유지했다.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아이들과 쌍줄넘기하는 모습. 미셸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등 이전 퍼스트레이디와 다른 신선한 모습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 백악관]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아이들과 쌍줄넘기하는 모습. 미셸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등 이전 퍼스트레이디와 다른 신선한 모습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사진 백악관]

『비커밍』을 몇 개 인용문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미셸은 “흑인은 백인보다 두 배 이상 노력해야 백인들 가는 길의 반이라도 갈 수 있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랐다.

어느 날 친척 아이가 “넌 왜 백인 여자애처럼 말하니”라고 미셸에게 물었다. 이 질문을 듣고 미셸은 ‘자신 인생의 숙제’를 직감했다.

미국 흑인과 백인은 피부색만큼이나 영어 문법이 다르다. 어려서부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었던 미셸은 ‘백인 문법’으로 말했던 것이다. 미셸은 다문화 갈등으로 분열된 미국을 탈인종(post-racial) 사회로 만드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미셸은 버락에게 다음 같은 질문을 받았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요” “키스해도 되나요” “나와 결혼해 줄래요” “여보 나 대통령 출마해도 되나요” 미셸은 모두 “예스”라고 대답했다.

“여보 내가 가고 있어.” 결혼 후 버락에게 끊임없이 들은 말이다. 거짓말이었다. 워낙 바쁜 남편에게 항상 듣는 말이지만 어떤 때는 정말 화가 났다. “여보 다 왔어”라고 했지만 버락은 종종 새벽에 들어왔다. 유산의 아픔이 있었고 딸 말리아·사샤는 인공수정으로 낳았다. 이 퍼스트커플에게도 심각한 위기가 있었다. 한동안 부부상담을 받았다.

물론 남편이 만에 하나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미셸은 확신했다. 하지만 출세보다는 가정이 더 소중했던 미셸이 출마를 ‘승인’한 이유는 남편은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는 ‘오판’ 때문이었다.

결국 ‘설마’가 현실이 됐지만,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출마선언 이후 미셸은 바늘방석이었다. “저는 어른이 된 뒤 처음으로 내 나라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고 말했다가 의도적인 ‘맥락 무시하기’를 감행한 반대파가 “비애국적”이라고 공격했다. 지지자는 미셸 때문에 잘못하면 버락이 대통령이 안 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미셸은 2016 민주당 전당대회장 연설에서 “그들이 질 낮게 갈 때, 우리는 질 높게 갑니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명언을 남겼다. 분노는 질이 낮다. 용서해야 질이 높다. 이를 충분히 알기에 미셸은 ‘분노한 흑인 여자’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용서한다.

예외가 있다. 미셸은 도널드 트럼프만 떠올리면 화가 난다. 남편을 사사건건 괴롭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버락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버락의 업적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한다. 대통령 이취임식을 회상하며 미셸은 “나는 웃으려는 시도조차 그만뒀다”고 말한다.

“나는 충분히 훌륭한가(Am I good enough)?” 미셸이 평생 스스로 묻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그럼요”라고 답할 것이다. “아니요. 당신이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데요”라고 답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미셸에게 공직에 출마하라고 괴롭힌다. 예컨대 일리노이 상원의원이나 주지사에 당선된다면,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다. 『비커밍』에서 미셸은 “정치 안 한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공식 직함도 연봉도 없는 퍼스트레이디이지만, 미셸은 훌륭히 제 역할을 해냈다. 국민에게 건강한 식단을 알리기 위해 백악관에 텃밭을 만들었고 아동 비만 퇴치 운동을 위해 식품 회사와 싸웠다. 또 퇴역군인과 가족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헌신했다.

사람은 대부분 한 성질 한다. 미셸은 열 살 때 자신을 괴롭히는 여자애에게 펀치를 날려 그 애를 제압했다. 세계는 미셸에게 한 방, 아니 여러 방을 기대한다.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은 백악관을 나온 후 자서전을 쓰는 게 하나의 통과의례다. 엄청난 선인세를 받는다. 오바마 부부는 730억원을 받았다. 버락의 자서전보다 먼저 나온 게 『비커밍』이다(미국 대통령 부부가 ‘검은돈’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퇴임 후 인세·강연료 수입으로 상당한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꿈 많은 소녀’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꿈이 있으면 90세 할머니도 소녀다). 예컨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영부인을 꿈꾸는 다문화 가정의 소녀 말이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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