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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직격 인터뷰

“젠트리피케이션 막으려 임대료 개입? 부부싸움 끼는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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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골목길 자본론’의 모종린 연세대 교수

연세대 동문 앞 골목길에 선 모종린 교수. 한때 핫플레이스였던 이 골목길도 요즘은 쇠락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모 교수는 골목상권에서 소상공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연세대 동문 앞 골목길에 선 모종린 교수. 한때 핫플레이스였던 이 골목길도 요즘은 쇠락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모 교수는 골목상권에서 소상공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최승식 기자]

전통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져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서울의 명소 삼청동이 위기다. 지난 몇 년 새 천편일률적인 대형 카페나 음식점, 화장품 매장 등이 난립해 개성이 바래더니 최근에는 빈 상가가 급격히 늘면서 상권 쇠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청동이 뜨자 임대료가 치솟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거 들어오면서 개성을 잃어 결국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악순환이다. 그 과정에서 높은 임대료를 이기지 못한 원주민들이 지역을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도 심각하다. <11월 12일 B1면 ‘삼청동 그 많던 사람 어디로 … 골목상권의 비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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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사례는 최근 개성적인 골목상권으로 떠오른 경리단길, 연남동, 서촌, 익선동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촌 궁중족발폭행사건’처럼 극단적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골목길 자본론』으로 알려진 골목상권 전문가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14일 만났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건물주를 악마화하는 방식은 문제라는 지적부터 했다. 또 삼청동 골목상권은 백종원식 골목상권인 근린상권과는 다르며, 관광산업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청동 위기 지역색 상실 때문 #화장품 매장 못 막은 게 요인 #임대료 개입으로는 한계 있어 #시민자산화 등 방법 찾아내야 #2000년대 부상 강북 골목상권 #지역 소상공인이 부활의 주역 #도쿄, 베이징에 맞서 경쟁하는 #관광산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국사회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했는데.
“삼청동은 아주 안타까운 사례다. 하지만 임대료에만 주목하는 것, ‘기승전-건물주 타도’는 해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 어느 도시나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유사 이래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한 사례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정의 차원으로만 접근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유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 정부 규제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친화적인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이 숙제다. 상권 전체의 장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제도나 공공투자가 필요하다. 흔히 건물주를 갑으로 보지만 누가 강자고 약자인지도 모호하다. 임대료는 누가 손님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다. 임대료가 비싸다는 건 건물이 사람을 끌어온다는 뜻이고, 임대료가 싸다는 건 브랜드가 사람을 끌어온다는 말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끌어온다고 하지만 건물주가 기획해 가게를 입점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당장 쟁점은 임대료 아닌가.
“삼청동 경우 적정 임대료는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공동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도쿄, 베이징 등과 비교해야 한다. 또 임대료보다 매출액 대비 임대료가 중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가장 허망한 건 소문만 무성할 뿐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청동이 망했다면 세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매출이 떨어지고, 인건비가 오르고, 임대료가 올라서다. 임대료에만 집중하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임대료에 개입하는 것은 부부싸움에 개입하는 것과 같다. 최저임금처럼 제3자인 정부가 강요한 가격도 아니고, 한쪽이 막대한 시장지배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양쪽이 합의한 가격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막는 방법은.
“우선 규제와 보호. 최근 영업권 10년 보장 등을 담은 개정 임대차보호법이 통과돼 선진국 수준이 됐다. 도시계획을 통한 용도제한도 있다. 가령 서촌 한옥마을은 가게 단위 규모를 규제해 프랜차이즈가 못 들어오게 하고 있다.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안에 포함된 것처럼 임차인이 건물을 매입하도록 유도하거나(시민자산화), 시가 앵커시설(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시설)을 사서 싸게 임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건축에 투자해 싸게 공급하는 공공투자다. 무엇보다 정부는 특색있는 공공사업을 선도해 지역의 개성을 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한국적 특수성은.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시작했다. 1970년대 강남을 개발할 때 강북 중심권을 버렸다. 2000년대 들어 홍대, 삼청동 등 강북 골목이 재부상했는데 문제는 70~90년대 강북 중심지역의 임대료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는 것이다. 평당 2만~3만원 수준이었다. 이게 정상화되면서 가격이 올라 강남권을 추격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비슷한 일본을 보더라도 도쿄 상가의 평당 평균 임대료가 50만원, 홍대가 25만원이다. 그렇게 보면 더 오르는 게 정상이다. 서울은 세계 10대 도시 중 하나다. 다른 도시들의 중심부 상가 임대료에 상응해야 정상이다. 속도가 너무 빠르고 부작용도 많지만, 임대료가 90년대 수준으로 떨어져야 골목상권이 회복된다는 주장은 반역사적이다.”
골목상권이라는 말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백종원씨가 얘기하는 골목상권은 주민들에게 서비스하기 위한 가게들이 모인 ‘근린상권’이다. 반면 삼청동 등 내가 얘기하는 골목상권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리상권’이다. 서울에는 2호선 안에 홍대 중심의 서북권, 삼청동 중심의 다운타운권, 이태원 등지의 남산권, 성수동권까지 4개의 대표 거리상권이 있다. 이 4대 골목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산업이다. 도쿄, 홍콩, 싱가포르와 경쟁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임대료로 갈 수밖에 없고 그에 상응하는 매출액이 따라줘야 한다. 90년대처럼 공동화된 상황으로 돌아가자 한다면 관광산업은 포기해야 한다.”
강북 골목상권 부상은 어떻게 가능했나.
“거리문화의 재발견,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맞물렸다. 전국적으로 골목상권이 형성되는 곳은 한옥마을, 일제시대 근대 건축물, 70년대 부촌(단독주택)이다. 이 세 조합으로 신도시(현대도시)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일본, 미국, 우리나라 모두 교외나 신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다 다운타운으로 이동한다. 전 세계가 신도시에서 문화와 역사, 감성이 있는 원도심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오래된 것들을 유지하고, 걷기 좋고 삶의 질이 높으며, 개성 있는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원도심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삼청동 얘기를 해보자. 삼청동은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닐까.
“망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뿐 언제든 되살아난다. 삼청동만큼 품격있는 거리가 없다. 청와대, 경복궁, 아름다운 전경과 한옥, 갤러리….  삼청동의 비극은 그런 곳에 중국인 관광객을 노린 화장품 업계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화장품 매장 입점이 단기적으로는 관광객을 끌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삼청동이 화장품 파는 곳은 아니지 않나. 삼청동에 맞는 문화예술 기반, 한옥 기반 공방 공예,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많이 들어갔어야 했다. 지금 삼청동에는 ‘앵커가게’가 없는데 규모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앵커시설로 만들어 문화예술 성격을 강화하면 혁신적인 가게들이 따라올 거라고 본다.”
서울에 많은 골목상권, 거리가 떴지만 다 비슷비슷하다.
“서울에 크게는 15개, 작게는 30개의 골목상권이 있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는 곳은 이태원, 홍대 둘 뿐이다. 거기만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압구정동은 명품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옆에 명품가 가로수길이 생기니 손님을 뺏겼다. 반면 홍대와 이태원은 주민문화를 상품화했다. 이태원은 외국인, 홍대는 저항·젊은 인디문화·사회공동체 운동이다. 여기 사는 이런 사람들을 복제해 2만~3만 명 모아 놓지 않는 이상 이태원, 홍대를 따라잡을 수 없다. 주민문화 기반, 지역특색 기반 골목상권은 이 둘 뿐이다. 아쉬운 건 삼청동이다. 삼청동은 한옥 기반인데 한옥이 생활화되지 못하고 그저 건축물로 남았다.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주민생활과 소비가 따라줬으면 관련 가게가 들어왔을 것이다. 전통 공방 공예 전문점이 꽉 차고 삼청동 주민들이 그런 것을 소비했으면 무너지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골목상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기업 생태계, 지역발전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년간 지역발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꼽자면, 제주도의 부상과 강북의 부활이다. 공공기관을 이전해서 된 것도 아니고, 대기업 공장 유치해서 된 것도 아니다. 그 주역은 소상공인이다. 소상공인들이 자생적으로 지역문화, 특색을 살려 개척해 강남 수준으로 발전시킨 거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홍대를 보면 핫플레이스 단계가 지나니 산업이 들어가더라. 창업가들이 홍대의 독립문화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커피브랜드, 북카페, 독립서점, 연예기획사, 스트릿패션과 화장품 등 엄청난 브랜드와 기업들이 여기서 나오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획일화)보다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낫다는 주장도 했다.
“듀플리케이션은 예를 들면 강북이 전부 뉴타운으로 덮이는 것을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래된 마을이 남지만 땅값이 오르는 것이다. (도시 성장 과정에서) 듀플리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둘 다 막을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획일화는 막기 때문이다. 만약 전국적으로 원도심을 뉴타운으로 만들자는 것도 주민 합의만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그 말은 관광·문화·창조산업을 포기하고 제조업으로만 살자는 얘기와 같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꿈꾸느냐는 물질주의 사회냐 탈물질주의 사회냐, 제조업이냐 창조산업이냐, 일사불란하고 규율이 강한 삶이냐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이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와 연결돼 있다.”

모종린은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대 조교수,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국제정치경제, 세계화 등을 연구하면서 사람과 돈이 모이는 전 세계 매력적인 도시의 비밀에 주목하게 됐다. 서울시 미래서울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골목길 자본론』 『라이프스타일 도시』 등이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

※이 기사에는 김혜원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