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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고, 함께 공부 … 24시간 돌아가는 중국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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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기원 외관. 중국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대결을 펼치는 곳이다. [정아람 기자]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기원 외관. 중국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대결을 펼치는 곳이다. [정아람 기자]

중국 바둑의 기세가 무섭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뒤쫓고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 무대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바둑의 중심부는 중국기원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기원을 찾아 현장을 살펴봤다.

세계 최강 중국기원 탐방기 #국가대표 선수촌 닮은 시설 갖춰 #바둑 외에도 체스·장기 등 총괄 #항저우 분원에는 국가대표 2팀

중국 베이징시(北京市) 중심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차를 타고 15분쯤, 베이징시 둥청구(東城區) 천단동로(天壇東路) 80번지에 중국기원이 있다. 회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6층짜리 건물 외벽에는 ‘중국기원(中國棋院)’이라는 한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다. 그 옆에는 ‘조박초제(赵朴初题)’라는 한자도 함께 적혀 있는데, 중국의 서예가 조박초가 이 글자들을 썼다는 의미다.

중국기원 외사부에서 근무하는 리우루이민(刘瑞敏)의 도움을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입구 오른쪽에 바둑과 체스, 장기 등 보드게임 다섯 개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벽에 걸려 있었다. 바둑뿐 아니라 다른 보드게임 상징물이 함께 있는 이유를 묻자 리우루이민은 “중국기원은 바둑뿐 아니라 중국의 보드게임들을 총괄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둑만 관리하는 한국기원과는 다른 점이다.

상징물 맞은편으로 진의(陳毅) 전 부주석 흉상을 볼 수 있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중국기원의 모태인 기예원(棋藝院)을 창설, 중국 바둑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널따랗고 쾌적한 대국장이 나왔다. 리우루이민은 “선수들이 예선시합 등 바둑을 두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어림잡아 한국기원 대국장의 두 배 정도 되는 규모다.

중국기원 2층에 위치한 대국장. 선수들이 예선시합 등을 치르는 곳이다. 정아람 기자

중국기원 2층에 위치한 대국장. 선수들이 예선시합 등을 치르는 곳이다. 정아람 기자

한 층 더 올라가자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니 ‘중국바둑팀 훈련실’이 나왔다. 그곳에선 커제, 퉈자시, 판윈뤄, 퉁멍청, 펑리야오 등 중국 최고수들이 바둑을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라고는 해도, 바둑판을 둘러싸고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모습이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했다. 중국기원 근처에 살고 있다는 커제 9단은 “이따금 훈련실에 와서 자유롭게 바둑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바둑 국가대표팀 훈련실에서 중국 최고수들이 모여 바둑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공동 연구가 진행됐다. [사진 K바둑]

중국 바둑 국가대표팀 훈련실에서 중국 최고수들이 모여 바둑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공동 연구가 진행됐다. [사진 K바둑]

훈련실 벽에는 바둑팀 리그전 결과로 보이는 성적표와 훈련 내규 등이 붙어있었다. 내규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기보국(以棋报国), 진중책임(珍重责任), 숭상기품(崇尚棋品), 단결치승(团结致胜)’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둑으로 나라에 보은하고, 책임을 중히 여기고, 바둑의 기품을 숭상하며, 단결하여 승리한다는 뜻이다. 목진석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바둑을 통해 애국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고,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좋은 성적으로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식이 깊게 자리잡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함께 바둑을 연구하고 있는 중국 선수들. 왼쪽부터 쉬자양, 통멍청, 판윈뤄, 리웨이칭. [사진 K바둑]

함께 바둑을 연구하고 있는 중국 선수들. 왼쪽부터 쉬자양, 통멍청, 판윈뤄, 리웨이칭. [사진 K바둑]

중국기원 안에는 훈련실과 대국장 외에도 선수들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숙사와 구내식당, 샤워실 등이 구비돼 있었다. 박정상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코치는 “중국은 바둑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이와 달리 한국기원은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어린 선수 중에는 기원에 나오기 위해 매일 왕복 3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차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코치진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중국기원 1층에 위치한 구내식당. 선수들과 기원 관계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정아람 기자

중국기원 1층에 위치한 구내식당. 선수들과 기원 관계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정아람 기자

중국은 베이징 말고도 항저우(杭州)에 기원을 하나 더 두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기원이 총본산이라면, 항저우에 있는 기원은 분원 개념이다. 베이징 기원에서는 국가대표 1팀이, 이보다 실력이 약한 2팀은 항저우 기원에서 훈련한다. 조인선 한국 바둑 국가대표 유소년팀 코치는 “항저우 기원 역시 내부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선수들이 바둑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특히 어린 나이에는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한국은 조건이 좋지 않아 출발부터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은 전부터 영재들을 위한 교류전을 펼쳐왔는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절대적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목진석 감독은 “한·중 영재들을 비교하면 우리가 수적으로나 실력으로나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소수라도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지원 등 현실적인 조건을 놓고 비교해볼 때 차이가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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