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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운동권 출신 정권의 ‘현장’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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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광기
김광기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현장’은 1980년대 운동권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한 단어였다. 그들은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사회변혁의 답을 구하고 실천하려 했다.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던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현장에서 답 찾던 운동권, 정권 잡으니 현장 외면 #2기 경제팀 “누구든 만나고 어디든 가겠다” 주목

그렇게 그들은 치열하게 살았고, 급기야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대거 차지해 국정을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 운동권 정권의 탄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은 지금 사회적 약자들을 잘살게 만들겠다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경제 현장에선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약자를 돕겠다는 선의를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정책의 과속과 경직성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제발 현장에 와서 일자리가 왜 안 생기는지 직접 보라”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 정부의 실세들은 왜 현장을 외면하는 것일까. 그들을 만나보면 현장의 아우성을 가진 자들의 저항 내지 엄살이라고 치부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를 거론하며 기업과 관료들의 경제 위기론에 속아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통탄한다. “현장에 가봐야 들을 소리는 뻔하다. 위기론은 반복됐지만 지나보면 별일 아니었다”고 한다.

과거에 자신들이 현장을 중시하는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의 현장과는 분명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지금의 고통은 어디까지나 가진 자들의 몫이며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계속 나빠지는 일자리 상황을 보면서 ‘뭔가 꼬이고 있다’는 인식을 정권의 한켠에서 하기 시작했다. 현장의 아우성 속에는 약자들의 소리도 많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듯하다.

2기 경제팀이 현장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로 풀이된다. 김수현 실장은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든 만나고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도 “가급적이면 매주 기업인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희망을 걸어도 되는 것일까. 말 잔치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이지만,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한번 지켜보자. 의지가 중요하다.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가 다 챙길 필요는 없다. 경제 부처의 공무원 조직과 국책연구기관들을 적극 가동하면 어렵지 않다.

달라지는 정책을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계속 이름 붙어도 상관없다. 규제 철폐든, 혁신역량 지원이든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도록 돕는 정책이면 뭐든 패키지로 해야 한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국회의 협조다. 2기 경제팀이 홍남기 부총리 ‘원톱’이라고 청와대는 강변했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 원톱으로 보는 게 맞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어야 정책이 유연해지고 시장의 심리도 변할 수 있다. 특히 노동시장 개혁이 그렇다.

문 대통령은 김수현 정책실장을 신임하고 그의 말이라면 경청한다고 한다. 김 실장은 현장과 소통을 강조하면서 “결과를 대통령께 가감 없이 전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운동권 안에서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유연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당도 점차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개월 탄력근무제와 원격의료, 광주형 일자리 등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모두 민주노총이 반발하는 사안이다.

2기 경제팀 앞에는 지금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들고 있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10.9% 또 오르고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 시행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가중될 게 뻔하다.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폐업과 감원 도미노가 우려된다. 중국의 부채 위기와 미국의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경제도 지뢰밭이다.

2기 경제팀은 구조개혁에 나설 여유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휩쓸릴지 모른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큰 시련이 닥칠 것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정책 조합을 준비해야 한다. 그럴수록 필요한 게 바로 현장과의 소통이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