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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1000배로 … 류현진 내년 연봉 203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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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LA 다저스 류현진이 지난달 5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USA TODAY=연합뉴스]

LA 다저스 류현진이 지난달 5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USA TODAY=연합뉴스]

“보고를 받을 때마다 놀랐지. 직접 그 녀석을 보곤 더 놀랐어. 선발투수로 써야겠다고 결심했지.”

FA 대신 다저스 퀄리파잉 오퍼 수용 #빅리그 전체 투수 중 23위 해당 #2006년 데뷔 시절 연봉 2000만원 #건강 증명하면 1년 뒤 FA 대박 가능

2006년 봄, 김인식 당시 한화 이글스 감독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을 이끄느라 하와이에 차려진 한화 캠프를 떠나 있었다. 김 감독은 한화 코치들로부터 유선으로 보고를 받았는데 화제는 단연 ‘그 녀석’, 류현진(31·LA 다저스)이었다.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 지명을 받고 2006년 한화에 입단한 류현진을 김 감독은 정규시즌 시작과 함께 선발진에 포함했다.

데뷔전이었던 4월 12일 잠실 LG전에서 류현진은 7과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으며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고졸 선수가 데뷔전 승리를 거둔 건 KBO리그 역사상 처음이었다. 류현진은 그해 18승6패 평균자책점 2.23, 탈삼진 204개를 기록하며 투수 3관왕에 올랐다. 신인왕은 물론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힌 그의 당시 연봉은 2000만원. 먹성 좋은 류현진이 식비로 쓰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류현진은 2012년 한화를 떠날 때까지 98승(52패)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당시 한화 전력이 워낙 약했던 탓에 류현진은 타격과 수비, 불펜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다. 20대 초·중반을 힘겹게 보낸 류현진의 별명은 ‘소년 가장’이었다.

2013년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류현진은 6년(2013~18년) 총액 3600만 달러(약 407억원·환율은 현재 기준)를 받는 조건으로 LA 다저스와 계약했다. 2015년 왼 어깨 수술을 받았고, 팔꿈치·사타구니 부상도 입었지만, 그는 빅리그 6년 동안 40승28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했다. 올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에게 다저스는 퀄리파잉 오퍼(QO·원 소속구단이 FA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연봉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을 주는 조건으로 1년 계약을 맺는 제도)를 했다.

고민 끝에 류현진은 다저스의 QO를 받아들이기로 13일 결정했다. 이로써 류현진은 1년 더 다저스에서 뛰게 됐다. 내년 연봉은 1790만 달러(약 203억6000만원). 2006년 2000만원이었던 연봉이 13년 만에 1000배 이상 뛰었다. 연봉 179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 중 51위, 투수 중 23위다. 선발투수로만 따지면 20위에 해당한다. 내년 연봉으로 류현진은 그가 좋아하는 5달러짜리 인앤아웃 햄버거 358만 개를 살 수 있다. 먹을 수만 있다면 9초당 1개, 하루 1만 개의 햄버거를 살 수 있다. 소년 가장은 청년 재벌이 됐다.

류현진 연도별 연봉

류현진 연도별 연봉

류현진의 다른 선택지는 QO를 받지 않고 FA 시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이번 오프시즌에서 QO를 받은 빅리거 7명 중 류현진을 제외한 6명이 이를 거절했다. 1790만 달러의 연봉은 꽤 높은 편이지만 FA 선언 후 다년 계약을 따내는 게 안정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류현진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12일까지 두 가지 옵션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FA 계약을 하는 게 유리하지만, 류현진은 1년 뒤 시장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류현진이 2019년을 낙관한다고 볼 수 있다. 올 시즌 류현진은 7승3패 평균자책점 1.97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디비전시리즈 1차전을 시작으로 월드시리즈 2차전 등판까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도 잘 던졌다.

그러나 시장에서 우려하는 건 류현진의 ‘내구성’이다. 2015년 수술받은 왼 어깨 부상에 대한 우려가 걷힐 무렵 사타구니 부상으로 3개월을 쉬었다. 규정 이닝의 절반인 82와 3분의 1이닝만 던진 류현진에게 3년 이상의 계약을 선뜻 제시할 구단은 많지 않다. 현지 언론은 텍사스·시애틀 등이 류현진을 영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예상 연봉은 1000만 달러(약 113억원) 수준이었다. 결국 류현진은 자신의 건강을 증명한 뒤 진짜 대박을 터뜨리는 길을 선택했다.

소년 가장 시절부터 류현진은 온갖 걱정을 물리쳤다. 고교 시절 왼 팔꿈치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프로 구단들은 그를 지명하길 꺼렸다. 투수층이 얇은 한화 소속이 아니었다면 류현진이 1군에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 수도 있다. 다저스 입단 당시 현지 언론은 류현진이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담배를 피우고, 햄버거를 좋아하는 식습관까지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류현진은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내조 잘하는 아내를 맞이해 햄버거 먹을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는 여전히 등판을 앞두고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다. 성공률 20% 미만이라는 어깨 수술을 한 뒤에도 류현진은 컷패스트볼과 커브를 장착해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화 시절 류현진의 선배이자 코치였던 정민철 해설위원은 “미국에서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도 류현진은 항상 자기 방식을 택했다. 투수로서 재능이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용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QO를 받아들인 걸 ‘FA 재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류현진이 재수를 택한 건 그만큼 준비가 됐고,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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