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수정 논설위원이 간다

“모래 캐서 같이 잘 살자” “서울 기습 길 터주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북한 땅 1.2 ㎞ 앞에 둔 한강하구 중립수역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개풍군 해창리 일대. 오른쪽 돌출부와 우리 해병대 초소와의 거리는 1.8㎞다. [변선구 기자]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한 개풍군 해창리 일대. 오른쪽 돌출부와 우리 해병대 초소와의 거리는 1.8㎞다. [변선구 기자]

하나로 만난 한강과 임진강에 북한 예성강물이 흘러드는 곳, 해수와 담수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빠른 유속을 만들어내는 이곳은 강화도(島)와 교동도 북쪽 한강하구 중립수역이다. 숱한 전흔을 역사에 담은 채 북한 땅을 지척에 두고 있다. 서쪽으로 북방한계선(NLL), 동쪽으로 육지의 군사분계선(MDL)을 두고 정전 협정(제1조 5항)상 ‘민간 선박의 자유 통행’이 허용된 수역이다. 하지만 65년 동안 이 수로를 지나는 선박은 없었다. 남북이 지척(최단거리 김포쪽 1.2㎞)에서 대치하는 ‘민감수역’이어서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 8개 항 가운데 마지막 조항을 ‘한강하구 공동이용’으로 담았다. 지난 5일 남북은 첫 배를 띄우고 이 수역에 대한 공동조사에 착수했다.

65년 만의 남북 공동조사 #섬 주민들 기대·우려 교차 #침투로 활용 우려있지만 #비핵화 다져간다면 해 볼만 #조석 차이 큰 모래톱 지형 #북주민 페트병 두르고 탈북 #일부 관광객, 해병대 검문에 #“세상 변했는데 왜 이러나”

전날 장한 빗줄기로 잠시 쾌청해진 하늘이 뿌옇게 변했다. 9일 강화도 고인돌체육관 인근 보리밥 식당 앞마당. “남북이 합의해서 모래도 팔고 얼마나 좋아. 여긴 질 좋은 모래가 지천이거든. 통일돼도 모래는 퍼내야 하고. 민족끼리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 잘 될 거야. 우리가 (북한에) 좀 주고 하면 도발 안 해. 연평도 때도 우리가 너무 박해서 그랬던 것 같아.” 대산리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70)씨 얘기다.

전망대를 찾은 월남참전자회 회원들. [변선구 기자]

전망대를 찾은 월남참전자회 회원들. [변선구 기자]

“아, 형님은 KBS·MBC 같은 친정부 방송만 봐서 그래. 모래 팔아 돈도 벌고, 여기 땅값도 오르지만 이게 문제가 아니야. 안보가 문제지. 모래는 우리끼리 파면 되지 왜 북한하고 같이 파느냐고. 쟤들 이때까지 한 짓 다 잊었어? 특수부대 20만 있다는데 한강으로 가는 길 터주고, 맘먹고 들어오면 어떡할 거냐고.” 교동도 주민 최라파엘(68) 씨가 받아친다. “아우님, 뭔 걱정이야. 여긴 사방팔방 레이더, 감시 렌즈로 다 봐. 걔들이 오면 파주로 오지 이쪽으론 안 와” “아니, 핵도 그냥 들고 있잖아요. 다들 너무 순진해. 한번 북한 가서 공산주의가 어떻다는 걸 맛을 봐야 정신 차릴 건가.” 한참을 맞서던 두 사람은 그래도 웃으며 헤어졌다.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부터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남측),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부터 황해남도 연산군 해남리까지(북측) 총연장 70㎞, 면적 약 280㎢. 남북이 공동 이용키로 합의한 수역이다. 5일 이후 우리 해양조사선 6척으로 남북 전문가들이 함께 다니며 해저와 조석(潮汐)을 조사하고 있다. 정부는 합의문에서 ‘골재 채취 및 관광, 생태 보전 등 다목적 사업을 추진하고, 공동으로 골재를 채취해 이용하거나 판매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고 내세웠다.

모래·자갈 규모가 13조원 어치라는 추정도 나왔다. 대북 유엔제재 위반 논란이 일자, 정부는 ‘일단은 기초 조사’라고 해명한다. 해양수산부는 “국제 규격에 맞는 해도를 만들어 민간 어선들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남북한은 ‘통행 하루 전 통보’ ‘상대측 경계선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 군사적 보장장치도 마련했다. 12월 말까지 조사를 끝내고 내년 4월부터 배가 다니도록 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전망대 왼쪽의 거대한 모래톱. [변선구 기자]

전망대 왼쪽의 거대한 모래톱. [변선구 기자]

중립수역과 북한이 한눈에 들어오는 강화평화전망대로 가는 길. 48번 국도 오른편으로 북한 송악산이 길 굽이대로 보였다 말았다가 했다. 오후 2시쯤 물길이 교대하면서 개펄과 모래톱이 눈앞에 가득 찼다. 물살은 빨랐다. 걸어서도 북한 땅에 닿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이곳은 북한 주민의 탈북 루트다. 지난해 2명 등 최근 6년 동안 매년 1명씩 넘어왔다고 한다. 남쪽에서 떠내려간 페트병 여러 개를 몸에 감고 온단다. 전망대의 김경애(53) 문화해설사는 “물 시간대를 따라 탈북할까 봐 북한 당국이 거주민을 순환시킨다”고 설명했다.

중립수역을 포함, 남북이 이번 합의에서 완충지대로 설정한 서해는 북한군과 공작원 침투 루트이기도 하다. ‘주사파의 대부’로 불린 김영환 씨(1999년 전향)도 이 통로로 북한에 잠입했다. 김씨는 91년 5월 16일 밤 12시 강화도 남서쪽 건평리 야산에서 북한 공작원과 1차 접선한 뒤, 갯벌 250m를 걸어가 북한 반잠수정(북 호송원 4명 동승)을 타고 황해도 해주로 갔다. 김씨는 해주-평양을 거쳐 묘향산에서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다. 북한군은 60·70년대 땐 수영 장비나 고무보트를, 90년대 이후엔 간첩선과 반잠수정을 이용해 하일리, 교동도 등으로 침투했다. 이와 관련, 군 일각에선 이번 공동조사를 두고 전쟁이 나면 가장 중요한 게 지도인데 그 정보를 북한에 주는 셈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6·25 때 미군은 우리 군에 지도가 없어 일본이 제작한 지도로 전쟁을 치렀다. 미국이 ‘장진호’ 전투를 일본명 ‘초신(Chosin)’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유다.

이 수역에 해병대 2사단 고무보트가 뜬 일도 있다. 96년 8월 집중 호우 때 북한의 수소가 떠내려오다 유도에 올라 5개월간 지냈는데 동사 위기에 처하자 해병대가 북측 양해와 유엔사 허가를 얻어 구출했다. 이 소를 ‘평화의 소’로 이름 붙이고 제주도의 암소와 짝을 맺어줘 화제를 모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소가 인근 지역 주민이 잃어버린 소였고, 일이 너무 커져 말을 꺼낼 수 없었다는 얘기도 한 주민이 들려줬다.

지광식(左), 황내하(右)

지광식(左), 황내하(右)

전망대 앞 개풍군 해창리 돌출부와 우리 초소의 길이는 1.8㎞, 공기가 좋은 날엔 18㎞ 떨어진 개성공단 통신탑까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김경애 해설사는 전망대 바로 앞이 남북공동 조사 B구간이라고 설명했다.

10년간 강화 일대 문화해설사로 일했다는 김씨는 “이 수역에 배가 다니는 날이 오길 소망했는데 그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크루즈가 뜨고 한강까지 이어지는 관광과 문화 교류의 길로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화도 서쪽 교동도 민간인 통제선 북쪽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지난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한쪽 논은 일반 농지, 오른쪽은 민통선구역 논인 경우도 많다. 거주민들은 출입증을 차량에 붙이고 다닌다. 해병대 병사들이 신분증 검사를 꼼꼼히 했다. 검문소에서 만난 한 주민은 최근 일부 관광객들이 검문 병사에게 “세상이 바뀌었는데 왜 검문을 하느냐”며 실랑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교동도 면사무소 인근 대룡시장을 찾았다. 피란민들이 형성한 오래된 시장이다. “남북 간에 이렇게 군사적 충돌 없이 평화롭게 살아야지. 우리같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왕래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거지. 북한 배랑 섞이는 거는 걱정 안 해. 정세가 많이 달라졌잖아. 이번엔 잘 될 것 같아.” 6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한 지광식(79)씨 얘기다.

“1952년 3월 부모님과 7남매가 모두 피란 왔다. 어머니가 마당에 묻어 둔 놋그릇을 가지러 누나·여동생과 함께 집에 갔다가 영 못 나왔어.” 교동도 앞 연백군 해성면이 고향이라는 황내하(77)씨의 생각은 달랐다. “이 동네가 개발되고 가족들 왕래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한두 번 속는 게 아니잖아. 그동안 잘 해주고 핵밖에 더 돌아왔나. 북한이 마음먹고 특수부대 풀면 그냥 당해. 총 들고 싸울 사람 없어. 해병대는 용감해서 싸우겠지만 육군은 머리만 땅에 박고 있을 거야. 기강이 죄 빠졌잖아.”

귀경길 강화읍 북단 연미정을 지날 때 초소에서 구호와 군가소리가 들렸다. 해병 2사단은 사단 전면 해안선 81㎞, 강화·교동도 등 전체 해안선 255㎞를 지킨다. 해병대 관계자는 남북 긴장 완화 상황에 대해 “우리의 영토와 국민 목숨을 침해하는 것은 적”임을 병사들에게 주지시키고 있고, 대비태세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9·19 군사합의서가 나온 뒤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등은 “북한이 서해 완충 지역을 통해 기습해 올 경우 김포반도를 거쳐 서울을 일거에 포위할 수 있다”며 “특히 평야 지대에서 축차(逐次)방어진지 구축은 어렵기 때문에 저지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해병대 전 예비역 장성은 “향후 남북 어선이 함께 조업하면서 해병대원들의 피로도가 커질 수 있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국방부 고위직과 야전 사령관을 지낸 한 인사를 만났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에서 우려는 없는지.
“노무현 정부도 그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북한과 대화 국면 시 최우선 의제로 주목했던 게 한강하구 공동개발, DMZ 내 유해 공동발굴이었다. 물론 북한이 핵을 완성하기 전이었다. 골재 채취, 상류 수해 방지 등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
북한이 거부한 이유는.
“말은 안 했지만, 남북 주민이 섞이면서 생기는 체제 불안을 우려한 것 같다. 이번엔 북한이 현 정부를 신뢰하는 데다가 자체 재건에 쓸 골재와 현금 확보를 위해 받은 것 같다. 향후 군사적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우리는 열영상장비(TOD) 같은 무인감시체계 등을 확충해야 한다. 북쪽도 개펄이 있고, 강 가까운 쪽엔 중무장 무기가 없어, 대비는 우리가 더 탄탄한 편이다. 단, 북한이 전면전을 상정한다면 한강 하구는 기습경로로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한·미 연합 감시 자산으로 북한의 전면전 준비 징후를 식별할 수 있다. 따라서 전면전을 우려해 한강하구 공동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침투 통로 활용 등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데, 대전제는 북한이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해 나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해나가는 것이다.”
남북은 재래식 군비통제로 들어섰는데.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미래 핵만 언급하고, 현재와 과거의 핵에 대해선 침묵한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우리보다 열세다. 이참에 핵은 핵대로 보유하면서 핵 협상을 구실로 우리의 재래식 전력을 약화하려는 군사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 이번 합의로 우리가 압도적 우위인 정보정찰자산의 능력을 제한했다. 인도, 파키스탄은 둘 다 핵을 가진 나라다. 둘 사이 분쟁은 재래식 무기로 진행되고 있다.”

김수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