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밤하늘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북위 30도 이상에서는 1년 내내 떠있는 오각형 모양의 별자리, '케페우스자리'에 얽힌 사연이죠.
케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에티오피아(Aethiopia)의 왕입니다. 허영심 많은 아내 카시오페이아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은 인물이죠. 딸 자랑이 심했던 카시오페이아는 “물의 신 네레우스의 딸 50명을 합친 것보다 내 딸 안드로메다의 미모가 더 뛰어나다”고 해,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고 맙니다. 포세이돈이 괴물 고래를 보내 에티오피아를 초토화 직전까지 몰고 가자, 케페우스는 딸을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괴물의 먹이가 될 뻔 했던 안드로메다는 메두사를 퇴치하고 귀환하던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구출되고 그의 아내가 됩니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결국 카시오페이아는 거꾸로 매달려 별자리가 되고 계속해서 북극을 맴도는 처지가 됐죠. 지금도 북쪽 밤하늘에는 카시오페이아와 그의 남편 케페우스 왕ㆍ딸 안드로메다ㆍ사위인 페르세우스 그리고 괴물 고래가 별자리가 돼 함께 빛나고 있습니다.
케페우스가 숨긴 별들의 요람...'무거운 별'은 은하 진화의 비밀 풀 수 있을까
그런데 케페우스자리가 간직한 것은 전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은 13일, 2013년 자체 개발한 다목적 적외선 영상관측시스템(MIRISㆍMulti-purpose Infrared Imaging System)으로 케페우스 영역에 숨겨진 별 생성의 요람을 새롭게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우주의 나이로는 청년기에 해당하는 1000만년 살 이하의 젊은 별(항성) 66개가 케페우스 영역에 살고 있는 것이 최초로 관측됐죠.
별이 태어나는 곳을 찾아낸 것은 그 자체로 신비감을 주지만, 과학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구를 진행한 김일중 천문연 우주천문그룹 선임연구원은 “이 발견이 은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발견한 별들은 질량이 태양의 15배 이상으로 매우 큰 ‘무거운 별(Massive Star)’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죠.
무거운 별은 그 질량만큼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은하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신성 폭발이죠. 무거운 별은 태양이 100억년 동안 방출할 에너지를 한꺼번에 뿜어내며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초신성(Supernova)이 되는 것이죠. 별의 중심핵은 수축해 아주 작은 중성자별이 되거나 블랙홀이 됩니다. 무거운 별은 이 과정에서 평생 몸속에 쌓아왔던 산소ㆍ규소ㆍ철과 같은 원소들을 다시 우주로 내놓게 되죠. 김일중 연구원은 “무거운 별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은하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을 관찰하면 그간 우리 은하가 화학적ㆍ형태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지구 상공 600㎞에서 우주 보는 우리의 눈 MIRIS...세계최초 우리 은하 정밀지도 제작
이번 케페우스의 비밀을 밝힌 데는 2013년 11월 과학기술위성 3호에 실려 발사된 MIRIS 망원경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간 지상에서 은하를 관측했던 아이작 뉴턴 지상망원경은 볼 수 없었던 영역을 들여다보게 된 겁니다. 천문연은 이를 이용해, 케페우스 속 무거운 별을 관측하는 데서 나아가 세계 최초로 별이 내뿜는 수소 스펙트럼인 ‘파셴알파’를 이용, 우리 은하의 정밀 지도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정웅섭 천문연 박사는 “그간 뉴턴 망원경은 수소스펙트럼 중에서도 파장이 상대적으로 짧은 ‘H 알파’를 관측에 이용했지만, 이는 우주 공간 속 여러 물질들에 의해 파장이 흡수되거나 산란하는 ‘성간 소광’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MIRIS는 파장이 보다 긴 ‘파셴알파’를 지상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 관측해 보다 정밀한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나이가 젊은 별들은 ‘전리수소영역’이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밀도가 낮은 구름 속에서 형성되는데 여기서 나오는 수소스펙트럼을 관측에 이용한 겁니다.
MIRIS는 자신과 비슷한 높이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 더 넓은 부분을 관측할 수 있어 은하 전체를 관측하는 데 용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구진은 향후 이 같은 은하면 전체로 확장해 더 많은 전리수소 영역을 찾아낼 계획입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천문학분야 국제 권위지인 ‘천체물리학 저널 증보(Astrophysical Journal Supplement Series)’에 지난달 5일 게재됐습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